○ 말씀전문
[룻기 4장 13~17절]
13 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14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15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니라
16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17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 설교요약
김형석 교수님의 [100년을 살아보니] 라는 회고록에는 인생행복론에 대해 나와 있습니다. 거기서 행복에 대한 2가지 조건을 제시하고 있는데, 하나는 고난과 어려움이고, 하나는 사랑하며 섬기며 살아가는 삶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며 섬기며 살아가는 것이 행복의 조건인 것은 쉬 이해가 되지만, 고난과 어려움이 행복의 조건이라는 데는 쉬 납득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100세를 훌쩍 넘기신 교수님은, 생각보다 우리가 잘 먹고 잘 살 때는 행복감을 느끼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힘들고 가난 했을 때 서로 돕고 사랑하며 챙겨주었던 그 때가 훨씬 행복한 때였음을 기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설명을 듣고 나니 공감이 가는 말씀이었습니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숨이 막힐 듯 하고, 그로 인해 우리의 가치관까지 흔들리는 시기입니다. 삶이 불행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런 고난의 시기에 우리가 행복한 삶을 위해 어떤 삶을 추구하며 살아야 할지 본문을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무엇을 나침판을 삼아 살아갈 지 레마의 말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럼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 위한 신앙의 원리는...
1. 겉모습이 아닌 삶이 매력적인 것이 되어야 합니다.
룻기의 룻과 나오미의 삶은 참으로 암담하기 그지 없는 삶이요 처지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며느리인 룻이 시어머니인 나오미를 버리지 않고, 천한 종들이나 하는 이삭줍기를 하면서 나오미를 봉양합니다. 암울한 상황에서 이런 룻의 시어머니에 대한 섬김은 예사로운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그런 룻과 나오미의 처지를 보고, 자기의 돈과 시간을 들여가며 그들을 돌보고 기업무를 자의 책임까지 헌신하는 보아스의 삶 역시 예사로운 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보아스 같은 사람을 보기를 원하시고 기뻐하십니다. 특히 이 말씀의 시대적 배경은 사사기였습니다. 사사기 시대는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던 시대였습니다. 그런 시대에 하나님은 보아스를 보고 "이런 시대에 세상에 이런 사람이 다있네" 하셨을 것입니다.
2주 전 인터넷 뉴스를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울진 산불이 한창이었을 때, 한 중국집이 산불을 진압하러 온 소방관들과 봉사자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했다는 뉴스였습니다. 어떤 중국집인지 궁금해서 여기저기 찾아보았더니 "청목신신짬뽕" 이라는 중국집이었습니다. 그 소식이 전해지자 여기저기서 주문이 밀려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울진지역에 사는 사람 뿐만이 아니라 전국 방방 곳곳에서 주문이 들어와, 자신은 멀어서 가서 먹을 수 없으니 다른 사람들에게 먹게 하라는 주문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돈줄' 주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주인이 이들을 모아 500만원을 기부를 했다는 뉴스였습니다. 그 뉴스를 보고는 그 사람이 크리스찬이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사람도 그 사람이지만 먹지도 않으면서 주문을 한 사람들도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세상이 보기 원하는 사람이 바로 이런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세상에 이런 사람이 다있네" 싶었습니다. 아마도 하나님도 그렇게 보셨을 것입니다.
[초대교회에 길을 묻다]라는 책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초대교회의 확신은 외부인들에게 매력적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때의 예배는 모인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통해 세상에 나아가 하나님의 일을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흥미를 유발하는 사람으로 훈련 받는 것이었습니다. 외부인들에게 매력적이어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예배의 모습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 자신이었습니다. 초대교회는 현대교회가 그러하듯이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예배를 드렸기 때문이 아니라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이 사람들에게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성장하였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모두가 힘든 시기입니다. 다들 자기 먹고 살기에 바쁩니다. 그래서 없는 사람들은 더 힘듭니다. 이런 힘든 시기에 하나님이 보길 원하시는 사람은 "이런 힘든 시기에도 이런 사람이 있구나" 하는 매력 넘치는 사람입니다. 진정한 매력은 겉모습이 아니라 이런 때 드러나는 사람입니다. 그런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을 듬뿍 받는 사람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2. 생존이 아닌 사명을 위한 삶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는 생존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사명을 깨닫고 그 사명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룻기 1장과 2장에서의 나오미와 룻은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의식주를 해결하는 문제, 대를 이을 자손을 낳는 문제가 그들의 걱정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3장부터는 보아스와 함께 사명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4장 16절을 보면,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문장의 함축적인 의미를 이해하려면 당시의 시대가 어떤 시대였는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이 룻기가 씌어진 시대는 사시기 시대입니다. 사사기 시대가 어떤 시대였는지 사사기 말미인 21장 25절을 보겠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각자가 자기 소견대로 살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런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나오미가 아이를 품에 품고 그 아이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잘 양육했다는 함축적 의미를 나타내고자 한 것입니다. 이 나오미의 양육으로 제대로 된 가정이 서서, 오벳, 이세, 다윗 이라는 걸출한 인재를 나오게 했습니다.
지금이 사사기 시대와 유사한 시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모두가 자기 소견이 옳다며 자기 소견대로 하는 시대입니다. 자기가 지지하지 않는 정당과 그 정당 사람, 나아가 그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까지 미워하고 SNS를 통해 공격합니다. 비난합니다. 20대 대통령 선거를 치르면서 더욱 더 심해졌습니다. 이런 어렵고 무질서한 시기 일수록 우리는 자녀들을 잘 돌보고 양육해야 합니다. 자녀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바로 서도록 품에 품고 양육해야 합니다. 우리는 시대가 어려울수록 외부에서 답을 찾으려고 합니다. 무리수를 두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오미가 그랬듯, 어려운 때 일수록 내적 강건함에 집중해야 합니다. 가정에서는 자녀양육에 집중하고, 직장에서는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도록 집중해야 합니다. 생존을 넘어서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 사명에 집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길게 보는 행복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3. 세상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원리로 살아야 합니다.
룻기 4장 21~22절을 마태복음 1장 3~6절과 비교해 보도록 하겠겠습니다. 먼저 룻기 4장입니다.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다음은 마태복음 1장입니다.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같은 족보를 얘기하고 있지만, 마태복음에는 유다의 며느리 다말과, 기생 라합, 이방여인 룻의 이름이 들어가 있습니다. 며느리를 통해 낳은 자식, 기생을 통해 낳은 자식, 이방인을 통해 낳은 자식들이 포함된 족보에서 다윗이 태어났고 예수님이 나오셨습니다. 어찌 보면 부끄러운 족보입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그 부끄러운 사실을 그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이 바라보는 원리와 하나님 나라의 원리는 다르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세상의 원리에서 보면 부끄럽고 숨기고 싶은 일일지라도, 하나님 나라의 원리는 똑똑하지 않더라도, 머리 좋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김동호 목사님이 쓴 [하나님 나라를 사는 방식] 이라는 책에서는 "운전을 하려면 운전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운전하는 법을 모르면 운전을 할 수 없고, 법을 모르고 운전을 하면 위험 할 수도 있다. 세상식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식대로 산다. 땅에서도 천국 스타일로 살 수 있는 하나님의 식과 법을 배우라. 길을 알면 멀리도 갈 수 있지만, 길을 모르면 갈 수 없다. 하나님의 법과 식과 길을 모르면 인생과 세상을 잘 살 수 없다"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나 세상의 식, 세상의 법, 세상의 원리를 배우려고만 합니다. 그래서 똑똑한 척, 잘 난 척, 아는 척 하며 삽니다. 세상의 식과 원리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식과 원리를 알려는 노력을 경주해야 합니다.
고등학교를 특목고를 나왔습니다. 모두가 중학교에서 1,2등을 하던 아이들이 모였지만 그곳에서는 또 다른 서열이 만들어졌습니다. 중학교에서는 어깨에 힘을 주고 다녔지만 특목교에서는 남들에게 뒤쳐지지 않는 것만도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시험 시간에 옆에 앉아 있던 친구의 답안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믿는 사람으로서 컨닝을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습니다. 결국 시험이 끝나고 나서 선생님을 찾아가서 사실대로 고백하고 용서를 빌었지만, 세상의 원리를 떨쳐버리기가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그 시절에 눈에 들어왔던 성경 말씀이 내게 큰 힘이 되었으며 지금도 간혹 그 말씀을 음미하며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기억하려고 노력합니다. 바로 고린도전서 1장 26~29절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누가복음 10장 3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으로 내보내면서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라고 하셨습니다. 양이 이리를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몸집을 키우면 될까요? 털을 기르면 될까요" 그런다고 양이 이리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오직 목자가 있을 때에만 이리를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이 거대한 세상을 이기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 가정과 교회에 주님이 목자가 되어 주실 때 우리는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양이 몸집을 불리는 데 신경을 써서는 안되듯, 우리도 어떻게 하면 주님과 동행할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건강하면 이길 수 있다고, 좋은 대학을 나오면 이길 수 있다고, 좋은 직장을 얻으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양이 몸집을 불리려고 하는 것과 매 한 가지입니다. 세상의 원리를 찾는 데 머리를 굴리기 이전에 하나님 나라의 원리에 머리를 돌리기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신앙_설교정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220403_설교정리_주님, 나는 십자가에서 이미 죽었습니다 (롬 6:3~4, 갈 2:20) (0) | 2022.04.05 |
---|---|
220327_설교정리_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 (삼상 19 : 1~7) (0) | 2022.03.28 |
220313_설교정리_부끄러움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되라 (룻 4:1~6) (0) | 2022.03.14 |
220306_설교정리_위기를 극복하는 하늘의 지혜 (룻 3:11~13) (0) | 2022.03.07 |
220227_설교정리_우리의 멈춤! 쉬지 않으시는 주님! (룻 3:1~5) (0) | 2022.0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