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자
박성훈 목사 (부목사)
○ 말씀전문
[사무엘상 19장 1절~7절]
1 사울이 그의 아들 요나단과 그의 모든 신하에게 다윗을 죽이라 말하였더니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심히 좋아하므로
2 그가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 사울이 너를 죽이기를 꾀하시느니라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아침에 조심하여 은밀한 곳에 숨어 있으라
3 내가 나가서 네가 있는 들에서 내 아버지 곁에 서서 네 일을 내 아버지와 말하다가 무엇을 보면 네게 알려 주리라 하고
4 요나단이 그의 아버지 사울에게 다윗을 칭찬하여 이르되 원하건대 왕은 신하 다윗에게 범죄하지 마옵소서 그는 왕께 득죄하지 아니하였고 그가 왕께 행한 일은 심히 선함이니이다
5 그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을 죽였고 여호와께서는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 구원을 이루셨으므로 왕이 이를 보고 기뻐하셨거늘 어찌 까닭 없이 다윗을 죽여 무죄한 피를 흘려 범죄하려 하시나이까
6 사울이 요나단의 말을 듣고 맹세하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거니와 그가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7 요나단이 다윗을 불러 그 모든 일을 그에게 알리고 요나단이 그를 사울에게로 인도하니 그가 사울 앞에 전과 같이 있었더라
○ 설교요약
팀 켈러의 [답이 되는 기독교] 중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전의 모든 문화에서는 사람들이 타인에게 다가가 애착을 구함으로써 자아를 개발했다. 이를테면 타인의 얼굴에서 자신을 발견한 셈이다. 그러나 현대 세속주의는 내면을 들여다 봐야만 자아를 개발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가정과 종교 공동체와 모든 외부 요건을 떠나 초연해야만 자신의 정체를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문화의 메시지는 이것이다. '남에게 인정받으려 하지 말라.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고 있으니 스스로 인정하면 된다. 당신이 되고 싶은 사람이 되라.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 이것이 현대 서구의 표면적 개인주의 핵심이다". 현대는 자기 스스로에게서 답을 찾는 개인주의가 팽배해 있음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어떤 편의점 사장님이 매일 정시에 딱 맞추어 출근하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아침에 5분이나 10분 정도 일찍 나와서 영업준비를 하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아르바이트생이 하루에 10분씩 일찍 출근할테니 6일마다 1시간의 보수를 더 쳐서 달라 하더라고 SNS에 올렸다고 합니다. 그러자 수많은 네티즌들이 여기에 댓글을 달았는데, 이 아르바이트생의 의견에 찬성하는 댓글이 훨씬 많았다고 합니다. 이 시대 사람들의 사고와 생각을 비춰볼 수 있는 단적인 예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점점 더 나의 뜻, 나의 소신대로 살아갑니다. 그런 모습은 교회 안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같은 교회 내에서도 다른 사람의 믿음을 알아가기를 거부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함께 가라고 합니다. 함께 감으로써 나 자신을 발견하고 또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발견하라고 합니다.
본문에는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한 사람과 하나님의 뜻을 살피며 살아가는 두 사람이 나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 우리가 하나님의 뜻으로 사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1. 내 나라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사울의 다윗을 죽이려는 마음이 점점 커져 갑니다. 개인적인 감정을 넘어 한 나라의 일로 번져 갑니다. 모든 신하들에게 다윗을 죽이라고 명합니다. 18장에서는 단순히 시기하고 질투하는 개인적인 감정에 머물러 있었지만, 19장에서는 모든 사람들을 다윗과 대적하게 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다스리는 나라가 자기 개인의 나라라는 착각에 기인하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를 자기 자신의 나라로 착각하여, 다윗에게 왕으로서의 부와 권력을 빼앗길 수도 있겠구나 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왕으로 세웠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보인 사울의 모습은 하나님을 알기는 알되, 이미 진정으로 믿고 신뢰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앞 장인 18장 28절과 29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심을 사울이 보고 알았고 사울의 딸 미갈도 그를 사랑하므로 사울이 다윗을 더욱더욱 두려워하여 평생에 다윗의 대적이 되니라".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하심을 보았고, 자기 딸이 그를 사랑하는 것도 알았습니다. 다윗은 자기 신하입니다. 그 신하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힘을 주시면 감사할 일입니다. 자기 딸이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자기도 좋아하고 고마워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감사할 일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하나님 나라라는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자기 나라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가 구하는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통치하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신 이유는 그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들 대부분은 더 가지려고, 더 누리려고, 가진 것을 빼앗길까봐 하나님을 잊고 내 뜻으로 살려고 합니다. 이제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더 중요하고,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이루려 하신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정민 목사의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이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하나님 나라를 거부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국민의 첫번째 의무는 국가를 부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준수해야 할 첫번째 의무는 하나님을 부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결혼의 첫번째 의무는 배우자를 부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배우자에게 부정하지 않고 깨끗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결혼관계의 기초는 정결하고 거룩하며, 깨끗한 관계입니다. 이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아무리 배우자가 돈이 많고 명성이 높고 인격이 훌륭해도 부부관계에는 이미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부정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부정하지 않고 깨끗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는 다른 것을 섬기지 않는 것, 이보다 더 중요하게 지켜야 할 것이란 없습니다. 이것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기본이며 더 우선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이 기본을 버렸습니다."
내 나라가 아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 때, 하나님은 이런 자를 통해 일하십니다.
2. 하나님의 편에서 세상을 위해 중보하는 것입니다.
다윗을 죽이고자 하는 사울과 다윗 사에에, 중재하는 자가 나타납니다. 바로 사울의 아들인 요나단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으로서의 힘과 권력, 부와 명예를 송두리채 이어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는 다윗의 편에 서서 중재자 역할을 자원했습니다.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데도 이 같이 중보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나라를 자기 나라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로 바라보았으며,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다윗의 편에 서서 중재한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편에 섰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권력과 돈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갑니다. 그렇다고 요나단이 상대편인 아버지를 업수이 여기거나 무시한 것은 아닙니다. 정중한 자세로 중재자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아버지 앞이 아니었지만 다윗 앞에서 아버지를 3절에서 '내 아버지'라고 하고, 4절에서는 '왕'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렇게 지혜롭고 정중하게 대하지만, 명확하게 해야 할 점은 명확히 합니다. 아버지가 다윗을 죽이려 하시는 것은 하나님 앞에 범죄하는 것이라고 명확히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결코 무례히 행치 않습니다. 중재자로서 화평을 추구합니다. 이 중재자, 중보자로서의 사명을 다한 결과 사울이 다윗을 죽이겠다는 마음을 접게 했으며, 다윗을 다시 사울 앞에 서게 했습니다.
지난 3월 20대 대통령 선거를 통해 국민들이 두 쪽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선거는 끝났지만 서로 비난하고 비방하는 것이 수그러들지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도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할 지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덩달아 내가 지지하지 않는 상대를 지지한다고 비난하고 비방하는 데 편승할 것이 아니라, 요나단과 같은 역할을 해서 화평하게 하는 일에 나서야 하겠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4절입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5장 9절에서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편에 서서 화평하게 하는 자,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3. 하나님의 일하심을 인내로 기다리는 것입니다.
요나단의 중재로 다윗과 사울 왕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사울의 마음이 금새 바뀐 것입니다. 9절과 10절입니다. "사울이 손에 단창을 가지고 그의 집에 앉았을 때에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접하였으므로 다윗이 손으로 수금을 탈 때에 사울이 단창으로 다윗을 벽에 박으려 하였으나 그는 사울의 앞을 피하고 사울의 창은 벽에 박힌지라 다윗이 그 밤에 도피하매"
사울은 끊임없이 무력으로 다윗을 죽이려 합니다. 갑자기 단창을 던져 죽이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자기가 가진 힘을 이용해 대항하지 않고 계속 도망만 칩니다. 다윗은 맹장이었으며 자기를 따르는 충신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사울과 싸울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사울과 다윗의 차이점이었습니다.
이런 다윗을 보면 떠오르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온갖 수치와 모욕에도 대항하는 입을 열지 않으시고 묵묵히 십자가 죽음을 향하셨습니다. 억울하고, 비웃음에 화도 났을 테지만 참으셨습니다. 능력이 없어서도 아니고 힘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길이 참으심은 최후의 승리의 길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다윗도 도망을 다니면서도, 끊임없이 쫒기면서도, 그는 하나님이 주실 최후 승리를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고 길이 인내했습니다. 쫒기면서도 시편 59편과 같은 찬양의 시를 쓰셨습니다. 시편 59편 16절과 17절입니다.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요새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 나의 힘이시여 내가 주께 찬송하오리니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시며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우리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그 하나님의 일하심과, 우리에게 최후 승리를 주실 것임을 흔들림 없이 믿고 기다릴 줄 아는 것입니다. 시편 59편에서 다윗이 노래한 찬양이 나의 고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소진영의 [나는 주님께 속한 자] 찬송을 다시 보며 마칩니다.
[나는 주님에 속한 자]
이 땅에 내 삶이 비록 버겁더라도
주님의 선하심 나 믿으며 가리
이 작은 자 통해 주가 이뤄가시니
감사로 사는 삶 나 살기 원하네
내 삶의 시간 속에 주 일하시네
내 모든 여정 속에 함께 하시네
깊고도 크신 주의 영광을 나 보리라
위대하신 주
나 주님께 속한 자 되어
주의 나라 위해 전심으로 살리라
주의 마음에 합한 자 되어
맡기신 소명 이루리
'신앙_설교정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220410_설교정리_에케 호모, 이 사람을 보라 (막15:21~23) (0) | 2022.04.11 |
---|---|
220403_설교정리_주님, 나는 십자가에서 이미 죽었습니다 (롬 6:3~4, 갈 2:20) (0) | 2022.04.05 |
220320_설교정리_세상에 이런 사람이 다 있네 (룻 4:13~17) (0) | 2022.03.21 |
220313_설교정리_부끄러움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되라 (룻 4:1~6) (0) | 2022.03.14 |
220306_설교정리_위기를 극복하는 하늘의 지혜 (룻 3:11~13) (0) | 2022.03.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