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전문
[룻기 3장 11~13절]
1 그리고 이제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12 참으로 나는 기업을 무를 자이나 기업 무를 자로서 나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 있으니
13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워 있을지니라 하는지라
○ 설교요약
룻기의 키워드는 '헤세드'입니다. 헤세드는 하나님의 사랑, 은총, 은혜를 뜻하며 그 헤세드가 룻기의 곳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남편과 아들들이 죽은 후, 며느리들에게 자유롭게 떠나가라는 나오미의 며느리 사랑 헤세드가 있고, 혼자 된 시어머니를 외면하지 못하고 따르는 룻의 시어머니 사랑 헤세드가 있습니다. 2장에는 이삭줍기의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의 헤세드가 있고, 3장에서는 룻의 딱한 사정을 헤아려주는 보아스의 인애의 사랑 헤세드를 볼 수 있습니다.
곳곳에서 발생한 산불로 온 나라가 뒤숭숭하고 2년 이상 코로나라 활개를 쳐서 일상을 잃어버리고 있는 우리에게도 지금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이 헤세드입니다. 이 헤세드가 있어야 우리가 다시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위기를 극복하는 하늘의 지혜를 얻기 위해 우리가 구해야 할 헤세드는...
1. 값없이 주시는 헤세드(사랑) 입니다.
룻기에서 우리가 찾아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Key Ward는 고엘입니다. 고엘은 '기업 무를 자'입니다. 조상 때부터 받은 땅은 가족 외에는 물려줄 수도 팔 수도 없습니다. 그 가문이 멸족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원적은 그 가족에게 속하는 것이었습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그 소유를 의탁한 경우, 가장 가까운 친족이 대신 배상하면 찾을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제도는 있기는 하나 거의 실행되지 못하는 법이었습니다. 회복시켜주면 그것은 원 소유자의 것이 됨으로서 고엘로서는 전혀 득이 되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유명무실한 규범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에서 보아스는 그 기업 무를 자가 되어주겠다고 합니다. 더 가까운 친족이 기쁘게 고엘을 감당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하겠다고 합니다. 고엘의 우선권은 가까운 친족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값없이 주는 이 보아스의 사랑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위기의 시기에 우리가 구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예수님의 헤세드 사랑입니다.
어떤 집의 막내아들이 엄마에게 청구서를 보여주었습니다. 제목은 [막내 아들의 청구]였습니다. 청구서 내용은 "① 이번 주 내 방 청소한 값 2,000원, ② 엄마 심부름으로 가게에 다녀온 값 1,000원, ③ 엄마가 시장 간 사이 동생 봐 준 값 3,000원, ④ 쓰레기를 밖에 내다 버린 값 1,000원, ⑤ 아빠 구두 4켤레 닦은 값 4,000원, ⑥ 마당 청소하고 빗자루질 한 값 2,000원, 도합 13,000원을 청구함" 이었습니다.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던 엄마가 그 아들에게 청구서를 써 주었습니다. 제목은 [엄마의 청구]였습니다. "① 너를 뱃속에 열 달 동안 데리고 다닌 값 : 무료, ② 너를 낳아 씻겨주고 돌보아 준 값 : 무료, ③ 아플 때 밤 세워 간호하고 기도한 값 : 무료, ④ 널 업어주고 달래주고 안아준 값 : 무료, ⑤ 널 키우며 여러 해 동안 힘들어하고 눈물 흘린 값 : 무료, ⑥ 예전이나 지금이나 앞으로 변함없이 널 키워주고 사랑해 줄 값 : 무료" 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한 일에 대해 보상 받기를 원하지만 부모님은 무료로 모든 것을 다 해 주십니다. 그러고도 더 줄 것이 없는지 찾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부모는 자식에게 서운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온전히 모든 것을 값 없이 주시고자 하십니다. 그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헤세드를 구할 때, 우리는 어떤 위기 속에서도 힘을 얻게 됩니다.
2. 무례히 행하지 않는 헤세드 (사랑)입니다.
창녀들이나 들락날락 할 수 있는 타작마당에서 자고 있던 보아스는 곁에 누워 있는 룻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룻의 행동은 충분히 오해를 받을 수 있는 행동이었지만, 보아스는 그녀를 정중히 대합니다. 11절에서 보듯이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라면서 정중히, 존중하는 태도로 대합니다. 메세지 성경에서는 이 부분에서의 '내 딸아'를 my dear daughter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dear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향해 정중하게 예의를 갖추어서는 말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아마도 보아스가 룻에게 이렇게 함부로 대하지 않은 것은 그의 어머니의 영향이 컸을 것으로 보입니다. 4장 20절과 21절을 보면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고 나손은 살몬을 낳았고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마태복음 1장 5절에서는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와 같이 '라합에게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라합은 우리가 잘 아는 기생 라합입니다. 12정탐꾼을 가나안으로 보냈을 때 나오는 그 라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가나안 여인으로서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하는 그의 어머니 라합의 삶의 애환을 보아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룻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보아스와 같은 사랑을 보여주는 사람이 성경에 또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아무리 천한 사람일지라도 무례히 대하지 않았습니다. 사마리아 여인도 정중히 대했으며, 간음 하다가 잡혀온 여인에게도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사랑, 즉 하나님의 이 사랑을 고린도전서 13장 5절에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라고 기록하고 있듯, 하나님은 무례히 행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이 무례히 행하시지 않는 하나님의 헤세드를 구하고, 그 하나님이 보여주신 무례히 행하지 않는 헤세드를, 가정에서는 자녀들에게 본 보이고, 직장에서는 낮은 직급의 사람들에게 오래 참아주고 무례히 행하지 않을 때, 이 위기의 시대를 우리 모두가 함께 잘 극복할 수 있습니다. 좋은 칼일수록 좋은 칼집에 넣는다고 합니다. 내가 아무리 똑똑해도 내 자신이 좋은 칼집이 되지 못하면 그 칼 역시 좋은 칼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좋은 칼집이란 바로 겸손입니다. 겸손이 나를 더욱 빛나게 합니다. 좋은 칼집을 겸하여 가진 좋은 칼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3. 책임지는 헤세드(사랑)입니다.
타작마당에서 만난 룻에게 보아스가 말했습니다. 가까운 친족이 고엘을 기쁘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그 책임을 이행하겠다고 약속합니다. 본문에서 반복되는 단어가 바로 '책임'입니다. 의도적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는 듯 합니다. 보아스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랑은 책임감입니다. 성경을 가볍게 읽으면 룻이 예쁘서 보아스가 택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 그 어디에도 룻이 예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성경은 예쁜 여인에게는 예쁘다고 분명히 표현합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도 예쁘다고 표현했고, 야곱의 아내 라헬도 예쁘다고 분명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룻에 대해서는 예쁘다는 표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보아스가 룻이 예쁘서 택한 것이 아니라 품어주는 사랑으로 책임을 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우리가 잘 나서거나 무슨 특별한 것이 있어서 우리를 택하시고 자녀삼아 주시고, 끝까지 품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사랑하시기에 자녀 삼아주시고 끝까지 품어주시는 분입니다. 그 책임지시는 하나님이심을 기억하고 그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는 삶을 살 때, 우리는 그 어떤 위기에서도 벗어날 수 있고 다시 힘을 내어 일어설 수 있습니다.
가족들을 데리고 고향을 다녀오거나, 야외 놀이를 다녀오게 되면 아내와 자녀들 뿐만 아니라 가장 역시 피곤하기 그지 없습니다. 귀가길 운전이 몹시 힘들고 피곤합니다. 그런데 아내와 자녀들이 피곤에 지쳐 차 안에서 잠든 것을 보면서 우리는 야속하다는 생각보다는, 그래도 내가 가장으로서 가족들을 책임지고 있다는 생각에 피곤을 잊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책임지는 헤세드(사랑)의 모습입니다. 사랑은 끝까지 책임지는 것입니다. 그 책임감을 느낄 때 우리는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인한 아버지 딕 호잇 이야기입니다. 아버지 딕 호잇과 아들 릭 호잇 보다는 오히려 팀 호잇으로 더 알려져 있습니다. 아들은 태어나면서 탯줄을 감고 태어나 중증 장애인으로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런 말도 못하던 아들이 어느날 처음으로 내뱉은 단어는 "RUN"이었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릭 호잇은 아들의 꿈이 달리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그때부터 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들을 휠체어에 태우고 마라톤에 도전하고, 안고 뛰면서 철인3종에 도전하였습니다. 1977년부터 2016년 까지 40년 동안 그들은 마라톤 72회, 철인3종 257회, 듀에슬론 22회 등 총 1,130회를 완주했습니다. 그리고 6,000Km의 미국 대륙을 횡단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딕에게 사람들이 영웅이라고 했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딕은 "나는 영웅이 아닙니다. 나는 아버지일 뿐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딕 호잇의 아들 릭 호잇에 대한 사랑입니다. 아들이 가진 꿈을 책임져 준 아버지의 책임감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마태복음 6장 30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끝까지 책임지시는 사랑입니다. 책임지는 사람이 진짜 사랑이고 헤세드 사랑입니다.
성경은 우리게 말씀해 주십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자식이 잘났건 못났건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우리가 잘났건 못났건 가리시지 않습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책임지시는 하나님에게 의지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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