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전문
[룻기 2장 20~23절]
20 나오미가 자기 며느리에게 이르되 그가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 그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하고 나오미가 또 그에게 이르되 그 사람은 우리와 가까우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의 하나이니라 하니라
21 모압 여인 룻이 이르되 그가 내게 또 이르기를 내 추수를 다 마치기까지 너는 내 소년들에게 가까이 있으라 하더이다 하니
22 나오미가 며느리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너는 그의 소녀들과 함께 나가고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 하는지라
23 이에 룻이 보아스의 소녀들에게 가까이 있어서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 그의 시어머니와 함께 거주하니라
○ 말씀요약
지난주 주일예배에서 주신 말씀은 [축복이 아닌 은혜를 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은혜를 위해서는 ① 학습된 무기력에서 벗어나라, ② 말보다 성품이 더 중요하다, ③ 축복보다는 은혜를 구하라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은 우리가 '어떤 은혜를 구해야 할까'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주시는 본문 룻기2장에서 우리가 구할 수 있는 은혜는...
1. 이삭줍기의 은혜입니다.
남편과 자식을 잃고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나오미와 며느리 룻은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자기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겨졌습니다. 참으로 막막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런 룻의 눈에 들어온 것이 이삭줍기였습니다. 하나님이 룻에게 이삭줍기를 보게 하셨습니다. 막막함 중에서도 한줄기 빛이었습니다. 떨어져 있는 이삭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냐 싶기도 했겠지만 그녀는 그 이삭줍기를 희망으로 붙잡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받아들였습니다.
이 작은 은혜가 큰 은혜로 발전합니다. 보아스가 그녀에게 주목했고, 식사할 때도 같이 먹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하는 소년들에게 곡식 단에서 조금씩 떼어서 흘려주라고 했습니다. 14절입니다. "식사할 때에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하므로 룻이 곡식 베는 자 곁에 앉으니 그가 볶은 곡식을 주매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더라" 배불리 먹고 남았다는 것은 표면적인 상태에 대한 표현일수도 있으나 깊이 묵상해 보면 영적인 만족감을 느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보아스의 온정과 은혜에 대한 행복한 감정의 표현이기도 한 것입니다. 작은 은혜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 건강한 영적 마인드로 더 큰 은혜를 받게 됩니다.
지구촌교회에서 대학부 사역을 하고 있을 때입니다. 수지와 분당 지역에 사는 학생들이라 부족함이나 아쉬움이 없는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아이들이 받은 용돈 중에서 이웃을 위해 얼마간 떼어 놓고 쓰고, 떼어 놓은 것으로 힘든 아이들을 위해 쓰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아무런 동기부여가 없던 때는 부모님에게서 받은 용돈을 그대로 다 썼던 아이들이 이런 동기부여가 주어지자, 택시 탈 것을 버스를 타고, 탕수육 먹을 것도 자장면으로 먹고, 남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자녀들에게도 좋은 동기만 부여해 주면 탄탄한 저력이 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이 이삭을 통해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이 이삭을 남기는 자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뻐게 합니다. 가정마다 저금통을 하나씩 준비해서 자녀들과 함께 조금씩 떼어 이삭을 만들면 좋겠습니다. 볏단에서 조금씩 떼어 흘리듯 이삭을 남깁시다. 이 작은 이삭이 자신에게도 또 이웃에게도 큰 감동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긴 코로나의 시기, 마음까지도 흩어지고 멀어지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할 때입니다. 이 코로나 시기에 우리 모두가 이삭의 은혜를 만들어가는 이 한 주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고엘 (기업 무를 자)의 은혜입니다.
19절과 20절입니다. "시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어디서 일을 하였느냐 너를 돌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하니 룻이 누구에게서 일했는지를 시어머니에게 알게 하여 이르되 오늘 일하게 한 사람의 이름은 보아스니이다 하는지라. 나오미가 자기 며느리에게 이르되 그가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 그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하고 나오미가 또 그에게 이르되 그 사람은 우리와 가까우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의 하나이니라 하니라". 룻으로부터 보아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나오미는 그를 기업 무를 자 (고엘)이라고 했습니다.
고엘이 무슨 뜻인지 예시를 통해 설명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어려워서 자신을 종으로 팔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친족 중에서 능력이 되는 사람이 그 대가를 지불하고 그를 종에서 돌려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 때 그 능력있는 친족을 고엘이라고 했습니다'. 혹은 '남편이 죽고 과부가 된 여인을 그 친족 중에서 능력이 되는 사람이 아내로 맞아 그 원래의 가족을 회복시켜 줄 때, 그를 고엘이라고 했습니다'. 이 고엘이 가져야 하는 기본적인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 가까운 친족일 것, 둘째 능력이 되는 사람일 것, 셋째 자원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무나 고엘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고엘, 기업 무를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로 사탄에 팔려갈 수 밖에 없었던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이 고엘이 되어 대신 갚아주고 그 사탄에게서 찾아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나 그렇게 할 수가 없었기에 그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사람, 우리의 친족으로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십자가에 자원하여 대속하셨습니다.
보아스가 그런 예수님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삶 속에서 이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룻과 나오미가 그런 보아스를 고엘로 받아들였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우리의 고엘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코로나의 환란으로부터 회복되려면 이 고엘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4장 7절부터 9절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 인생은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입니다. 하지만 그 질그릇 속에 보배를 가질 때 넘어지지 않습니다. 능력은 하나님 (고엘)께 있습니다. 이 위기를 지나가게 하고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그 고엘이신 하나님을 끝까지 붙들고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3. 주를 가까이 함의 은혜입니다.
고엘을 실제로 우리 삶 속에서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21절부터 23절을 보겠습니다. "모압 여인 룻이 이르되 그가 내게 또 이르기를 내 추수를 다 마치기까지 너는 내 소년들에게 가까이 있으라 하더이다 하니 나오미가 며느리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너는 그의 소녀들과 함께 나가고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 하는지라 이에 룻이 보아스의 소녀들에게 가까이 있어서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 그의 시어머니와 함께 거주하니라". 핵심 단어는 '가까이'입니다. 이 가까이를 영어 성경에서는, NIV에서는 'Stayed close (가까이 머물러)'로, MSG에서는 'Stuck close (가까이 달라붙어)'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MSG가 훨씬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것을 예수님에게 적용해 보면, 아무리 흉년이 들고 광야같은 환경에 놓아더라도 예수님께 딱 달라붙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적으로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에서든 삶에서든 무너지는 것은 주님과 거리를 두고 멀어질 때입니다. 주님과 멀어지면 삶에 위기가 찾아옵니다. 가까이 함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습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 공통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예수님이 잡혀갔을 때 베드로가 '멀찍이'에서 따라갔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멀찍이 때문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얼마의 거리를 두고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그것이 영적인 건강의 척도입니다. 이 코로나 시기에 멀찍이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봐야하겠습니다. 그래서 더욱 가까이 하도록 몸부림쳐야 하겠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물리적으로 가까이 하지 못한다고 해서, 마음 마져도 멀리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러면 가까이 함의 은혜를 갖지 못합니다.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신앙_설교정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220306_설교정리_위기를 극복하는 하늘의 지혜 (룻 3:11~13) (0) | 2022.03.07 |
---|---|
220227_설교정리_우리의 멈춤! 쉬지 않으시는 주님! (룻 3:1~5) (0) | 2022.02.28 |
220213_설교정리_축복이 아닌 은혜를 구하라 (룻 2:8~11) (0) | 2022.02.13 |
220206_설교정리_성공이 아닌 승리를 위해 살라 (룻 2:1~4) (0) | 2022.02.07 |
220130_설교정리_인생은 해석이다 (룻 1:11~14) (0) | 2022.0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