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전문
[룻기 2장 1~4절]
1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
2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3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4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 설교요약
지난 주 말씀을 통해 우리는 '인생은 해석이다' 라면서 상황을 바라보는 눈을, 인간적인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눈으로 '인생은 선택이다' 라며 선택의 순간에 하나님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오늘은 그런 관점, 그런 선택을 위해, 과연 삶의 여정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선택해서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를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우리가 인생을 제대로 해석하고 선택의 순간에 하나님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1. 사람이 사람을 만날 때 역사가 일어남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역사가 일어나고,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면 기적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냥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만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녀들을 위해 늘 좋은 만남의 축복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가장 좋은 만남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룻이 보아스를 만나게 되는 복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남편을 잃은 나오미와 룻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막막하기 그지 없는 상태에서 룻이 나오미에게, 나가서 이삭줍기라도 하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당시 이삭줍기는 노예들이나 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룻에게 그런 마음을 주신 것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보아스를 만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환란 중에도 하나님을 택한 사람에게는 이렇게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람을 예비해 주십니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4절을 '우연히도 그 때 마침'이라고 시작합니다. 룻이 이삭을 주으러 나간 그곳, 그때에, 우연히도 보아스가 자기 논에 들렀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연히도 그때 마침'이라고 표현되어 있지만, 그 우연히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우연히가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상황입니다. 우연히라고 표현되어 있는 이 말씀을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라는 눈으로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역사는 사람의 만남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축복이자 선물입니다. 특히 하나님이 예비해 주신 사람을 만나는 것은 은혜입니다. 회사와 일터, 가정, 삶의 터전에서 이런 좋은 사람을 예비해 주시고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그런 사람을 만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고난의 시기, 왜 보다는 어떻게에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나면 왜 내게 이런 시련이 생기냐며 불만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그 왜에 집착하여 그 힘든 상황을 더 힘들게 합니다. 어떨 때는 밤에 잠도 자지 못합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왜라며 그 원인을 돌아볼 필요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짧아야 합니다. 거기에 매몰되지 않고 그곳으로부터 탈출해야 합니다. 그 짧은 왜에서 탈피하여 그럼 어떻게 라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룻기를 보면 그 어디에도 왜라는 표현은 없습니다. 남편을 잃고 아무도 알지 못하는 땅으로 옮겨 왔지만, 그리고 먹을 것도 없는 처량한 처지에 놓였지만 그녀는 왜 라며 자신을 학대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어떻게에 집중하여 이삭줍기라도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이것이 그녀에게 보아스를 만나는 축복을 갖게 만듭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왜에 갇히면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라며 그 왜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위대한 인생은 위대한 비전으로만 이루어지지 않고, 위대한 인생은 위대한 결단으로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꿈이 자기가 마음 먹은 대로 잘 이끌어져 가지 않는다고 왜라는 회의감에만 빠져 있으면 그 비전은 위대한 인생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묻고 답하며 그 어떻게를 결단할 때 위대한 인생이 이루어집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를 찾아내고 시작하는 것에서 해결도 시작됩니다. 왜를 짧게 할수록 고난의 시간이 짧아지고 길수록 고난의 시간도 길어집니다. 힘든 코로나 시기에 왜 이런 어려움이 주어졌나에만 사로잡히지 말고 이 코로나의 시기를 이겨내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일류대학을 나오지 못한 환경을 탓하고만 있지 말고, 일류대학을 못나왔지만 잘 살고 싶습니다. 어떻게 살면 될까요? 어떻게에 집중할 때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 대한 해석을 승리의 길로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답을 위하여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택하게 됩니다.
3. 성공이 아닌 승리를 위해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룻이 보아스를 만나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룻의 이야기를 기록하여 말씀으로 전해주려는 것은 그녀가 새로운 삶으로 성공하였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성공한 사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승리한 사람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앙심이 좋은 성도들 중에도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업에 실패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아 고생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세상적 관점에서 보면 전혀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이 실패한 사람일까요? 그들은 성공하지는 못해도 승리한 사람들입니다. 바울도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세상적 눈으로 보면 훨씬 어려운 삶을 살게 된 사람입니다. 그도 성공한 사람은 아니지만 승리한 사람입니다. 모세는 오랜 광야생활을 하고 가나안 땅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죽었습니다.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사람 중에도 하나님의 분노를 산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처럼 광야에서 승리한 사람도 있고, 가나안에서 실패한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교회가 성도들이 늘어나고 웅장한 건물을 짓고 목회를 한다면 성공한 교회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성공한 교회가 아니라 승리하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성공한 교회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승리하는 교회를 바라십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세상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성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실패나 어려움 속에서도 몸부림치며 예배하는 성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승리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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