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11212_설교정리_예배의 싸움에서 승리하라 (대하20:15~19)

서정원 (JELOME) 2021. 12. 12. 13:53

○ 말씀전문

15 야하시엘이 이르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16 내일 너희는 그들에게로 내려가라 그들이 시스 고개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골짜기 어귀 여루엘 들 앞에서 그들을 만나려니와

17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18 여호사밧이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니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도 여호와 앞에 엎드려 여호와께 경배하고

19 그핫 자손과 고라 자손에게 속한 레위 사람들은 서서 심히 큰 소리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니라

 

○ 말씀요약

남유다를 둘러싸고 있던 모압과 아몬이 남유다를 쳐들어옵니다. 강대국의 침략을 앞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앞과 뒤 그리고 양 옆이 꽉 막히게 되는 것을 사면초가라 합니다. 사면초가에 놓이면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사면이 막히더라도 딱 한 군데, 하늘 문이 열리면 살게 됩니다. 존 맥스월도 영적 승리의 공식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고뇌하고 싶으면 안을 보십시오.

만약 당신이 패배하고 싶으면 뒤를 보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혼란해지고 싶으면 주위를 보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겁을 먹고 싶으면 앞을 보십시오.

그러나 정말 당신이 구원을 받고 싶으면 위를 보십시오"

기도와 예배로 하늘 문을 열어 구원과 승리를 얻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은 절체절명의 상태에서 하늘 문을 연 사람, 남유다 왕 중에서 성군이라 불리는, 여호사밧에 대해 알려줍니다. 모압과 암몬의 침략으로 사면초가에 몰린 상태에서 여호사밧이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니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12절)

이 같은 사면초가를 뚫고 하늘 문이 열리게 하려면...

 

1. 전쟁은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15절입니다. "야하시엘이 이르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 For the battle is not yours, but GOD's.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모든 문제를 내가 해야 하는 문제로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는 장면에서도 우리는 다윗을 바라보게 되지만, 다윗은 그것이 하나님의 싸움이라고 바라봤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사무엘상 17장 46절과 47절입니다. "오늘 여호아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The War]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가정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워크홀릭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남편과 사사건건 부딪히며 부부 싸움으로 힘들게 살아가던 주인공은, 어느날 독실한 크리스찬인 클라라 부부를 만나게 됩니다. 그들의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클라라는, 그들이 영적 전쟁터, 중보기도실이라 할 수 있는 'War Room'을 통해 부단한 영적 싸움을 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 워룸을 소개 받은 주인공은 정작 자신이 싸워하는 상대는 남편이 아니라 영적 싸움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럼으로써 가정이 다시 회복되는 주제입니다. 이 영화는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이 무엇이지를 다시 깨닫게 해 줍니다. 그녀의 고백입니다. "남편을 고치는 건 당신의 일이 아닙니다. 남편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당신의 일입니다. 남편을 바꾸고 개선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당신은 당신이 해야 할 일을 하면 됩니다. 당신의 믿음을 무너뜨리는 진짜 적과 맞서야 합니다."

신앙을 무너뜨리는 진짜 적, 가정을 무너뜨리는 진짜 적, 그것은 내 남편, 내 아내가 아닙니다. 그 뒤에 숨어서 조종하는 사탄입니다. 사탄을 디아볼로스라고 합니다. 디아 (사이에)와 볼로스 (던지다)의 합성어입니다. 사탄은 줄기차게 우리 사이에 문제를 던집니다. 우리는 그것을 던져주는 사탄과 싸워야 하는데, 자꾸만 엉뚱하게 그 던져진 문제를 놓고 싸웁니다. 던져진 문제는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하나님이 싸울 수 있도록 영적 바로새우기만 하면 됩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2. 두려움을 넘어 현실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손을 놓고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전쟁 앞으로, 현실 앞으로 나아가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 결단이 없이 숨기만 한다면 그것은 승리하실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온전히 고백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17절입니다.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겁내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나아가야 합니다. 나아갈 때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믿음은 비록 두려움과 염려가 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한 발짝을 내딛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3장 15절과 16절입니다.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 가에 잠기자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철철 넘치는 요단 강물을 바라보고 두려움에 떨던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발을 물가로 내디뎠을 때, 요단 강물이 그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Thier feet touched rhe water's edge. 깊이 내디뎠을 때가 아니라, 여전히 두렵고 무서웠지만 용기를 내어 가장자리 끝자리를 밟았을 때 그쳤습니다. 

아는 목사님의 장인 장모님이 필리핀에서 사역하시다가, 코로나 펜데믹 속에서 귀국하지 못하고 소천을 하셨습니다. 두 분을 갑짜기 하늘 나라로 보낸 목사님 부부의 마음은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얼마 전에 한 카페에서 그 목사님을 만났는데, 부부가 오랜 기도 끝에 그들이 다시 필리핀으로 가기로 했다고 합니다. 아직도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시정에서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박목사, 우리 부부가 필리핀으로 가자고 결정했지만, 여전히 두렵고 걱정이 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목회자인 내 믿음이 이 정도 밖에 되지 못하나 싶은 자괴감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결정을 하면서 어떻게 믿어야 되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라고 하시더라고 합니다. 두렵고 무서운 중에도 한 발짝 결단을 내려 내어딛는 그 분의 용기가 큰 믿음으로 서게 될 것을 믿습니다. 

우리도 이같은 결단으로 주님 앞으로 나아가 홍해가 갈라지는 역사, 요단강이 멈추는 역사, 하나님의 일하심이 함께 하는 한 주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3. 찬송과 기도로 하늘 문을 열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목사님의 설교제목만 보고도 큰 은혜를 느낀 적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 앞에서 울어야 세상 앞에서 울지 않을 수 있다" 라는 제목이었습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고, 그리고 결단하고 그 전쟁 앞으로 나아가라는 것, 이제 그 다음,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의 비결을 18절과 19절에서 말씀해 주십니다. "여호사밧이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니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도 여호와 앞에 엎드려 여호와께 경배하고 그핫 자손과 고라 자손에게 속한 레위 사람들은 서서 심히 큰 소리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니라". 전쟁을 앞 둔 상태에서 칼과 창을 준비한 것이 아니라 예배를 선택했습니다. 현장 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여호사밧의 영적 인싸이트는 영적 예배에서 먼저 이겨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삶이 무너졌을 때, 뒤돌아 보면 영적 예배가 무너졌었기 때문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록 하나님께 맡기고 전쟁 앞으로 나섰지만 여전히 무서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심히 큰 소리로 찬송했습니다. 두려움, 염려, 걱정을 떨쳐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찬송했습니다. 그들이 이처럼 찬송하기 시작했을 때, 벌써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22절과 23절입니다.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 이처럼 우리가 예배의 싸움에서 이기면 하나님이 세상에서 이기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여리고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하지 말고 성을 돌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말을 하게 두었으면 시작도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이게 그냥 돈다고 성이 무너질 것 같아?" 하는 비난만 돌고 돌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날 양각 나팔을 불며 행진하라고 하셨습니다. 전쟁 시에는 음각 나팔을 붑니다. 양각 나팔은 예배 시에 사용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배의 능력으로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굳건하게 가로막고 있는 여리고 성이 문제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는 견고한 불신, 두려움의 여리고가 먼저 무너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내 자아, 내 고집이 내 속에 견고하게 자리하고 있으면 하나님의 승리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예배를 통해 내 속의 여리고를 깨어부셔야 합니다. 예배를 형식적인 제사처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내 자아를 쳐부수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야 온전한 예배가 회복되고, 하나님의 일하심의 원동력이 됩니다. 진짜 여리고가 무너지게 됩니다. 그 예배를 회복하는 이 한 주가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