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10815_설교정리_믿음으로 사는 성도의 삶 (박성훈목사)

서정원 (JELOME) 2021. 8. 16. 06:48

○ 말씀전문

[이사야 55장 1~3절]

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 설교요약

조정민 목사님의 [믿음의 선택이란 무엇인가] 중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눈에 보이는 확실한 것을 내려놓고, 보이지 않는 영원한 약속을 택하는 것이 믿음의 결정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등지고 대적하는 땅으로 보냄을 받습니다. 그걸 소명이라고 합니다. 소명은 꽃길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살기를 결단하고 떠난 인생이지만, 믿음을 잠시 접어두면 인간적인 염려가 밀려들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잘 되는 길, 성공하는 길을 찾아, 세상에서 살던 방식대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 믿음의 현주소이며 사람들이 맞닥뜨릴 수 밖에 없는 갈림길입니다. 믿음의 사람이 믿음 없는 사람과 함께 살 때,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믿음은 설명되지 않습니다. 설명 된다면 그것은 확신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내가 인지할 수 없고, 자각할 수 없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오히려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근거로부터 떠나야만 믿음이 시작됩니다. 세상 속에서 살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는 자로 사십시오. 그리하여 세상 것들에서 자유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에는 믿는 자도 있고 믿지 않는 자도 있습니다. 믿는 자라고 해서 늘 믿는 사람들 속에서만 살 수는 없습니다. 기독교는 대중 속에서 살아가는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의 유혹에 노출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세상의 달콤하고도 끊임없는 유혹을 끊어내고 영원한 약속을 끝까지 붙잡고 살아가야 성공적인 믿음의 삶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의 삶 순간마다 찾아오는 어려움 속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믿음을 지키며 사는 것일까요?

 

1. 날마다 세상의 가치를 내려놓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목마른 자, 굶주린 자로 바라보십니다. 1절입니다. "오호라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이 목마름을 채우려고 세상 속에서 아등바등 살아갑니다. 그러나 아무리 발버둥쳐도 이 세상의 가치는 우리를 이 목마름에서 벗어나게 해 주지 못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든든한 남편이 있으면 자신의 목마름이 채워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을 다섯 명이나 갈아가며 살아봤지만 결코 그 목마름을 해결 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요, 4장 13절)

하나님은 세상의 것은 결코 굶주림을 채워주는 양식이 될 수 없다고 하십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하지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2절). 오직 예수님 만이 목마름을 채워줄 수 있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장 14절)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의 것은 결코 우리에게 만족함을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어령 박사님은 [평생 우물을 파는 사람] 이라는 책을 통해 고백하셨습니다. "명예를 달라고 글을 썼더니 명예가 생겼고, 돈을 벌려고 애쓰니까 돈이 생겼다. 또 병 때문에 병원에 다니니까 병이 나았다. 어느 날 너무나 외로워서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좋아하는 글을 봐도 채워지지 않는 '혼자'라는 절대고독에 괴로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갈증이 바로 진리에 대한 갈증이요 창조주에 대한 목마름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 어어령 박사님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7장 37절과 38절입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우리에게 손에 쥐고 있는 세상의 가치를 내려놓고 하나님께로 나아오라고 하십니다. 확실한 것처럼 보이는 세상의 것이 아니라, 보이지는 않지만 확실한 하나님을 붙잡을 때, 우리는 믿음을 지킬 수 있고, 주님이 주시는 참 평안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2. 날마다 말씀 앞으로 나아가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의 것을 내려놓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곳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라고 하십니다 본문 2절입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히 전해주셨습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그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요, 17장 8절). 그리고 그 말씀을 듣고 들을 때, 우리는 인생의 해답을 얻고, 목마름도 채울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본문 3절입니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어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하지만 들음으로만 끝내서는 안됩니다. '듣다'라는 히브리어는 '샤마'인데, '듣고 순종하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냥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을 움직이도록 하는 들음이 되어야 합니다. 

한 집사님이 취업을 위해 이곳 저곳에 원서를 넣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2곳에서 합격 통지가 왔었다고 합니다. 조건도 보니 연봉도 높고 복지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동탄과 멀어서 가지 않고 '동탄에 매장이 오픈 되면, 직장에 다니기도 편하고 예배에도 더 충실할 수 있겠다'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 그 집사님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주일을 꼭 지키고 싶어서 다른 지역 매장은 안 가고 몇 년 간 다른 일을 하며 기도하는 중에 동탄에 매장이 생겼습니다. 기도 응답으로 저를 위해 매장을 만들어주셨다고까지 믿음의 고백을 했습니다. 원래 가고 싶었던, 연봉도 복지도 최고인 곳이 두 곳이 있었는데, 출퇴근으로 주일예배를 드리기 어려워질 것 같아 입사를 포기했습니다. 길어진 인내의 시간 끝에 생각 이상의 연봉도 보너스도 올려주시고, 무엇보다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곳으로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기도하며 예배를 최우선으로 두기 위해 부단히 싸워야겠지요. 미리 하나님의 선하심에 감사드리고 기대를 가져봅니다.

내 형편보다 하나님을, 하나님의 뜻을 최우선으로 두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야고보서 2장 24, 26절은, "이로 보건데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우리가 은혜받은 믿음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려면, 날마다 말씀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행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승리하는 길입니다.

 

3. 날마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는 삶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또 들을 때, 하나님은 성실히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초대하십니다. 듣고 들으면 자연히 나오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6절입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라고 하셨습니다. 듣고 행함에 더해 찾고 부름이 있을 때 그 때가 하나님이 우리를 초대하시고 만나주시는 때입니다. 

하지만 기도를 해도 하나님이 멀리 느껴지는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내 마음이 조율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배가 시작되면 찬양부터 합니다. 그 찬양을 하기 전에 기타의 음부터 조율을 합니다. 기타 조율이 되어있지 않으면 아름다운 화음을 낼 수 없습니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오해와 불만으로 만나면 대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대화를 하려면 하나님의 마음과 내 마음의 조율이 먼저 필요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조율 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만 쭉 나열하고 기도를 끝냅니다. 그러다 보니 응답이 없는 것 같고, 하나님이 멀리 느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마음의 조율이 되면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내 원함만을 부르짖고 끝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내게로 전해질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가까이 계심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의 편협한 마음을 내려놓고 큰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됩니다.

사무엘상 1장 11절입니다.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아다". 한나의 개인적인 아픔은 아들을 낳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뜻을 듣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네게 아들을 줄 테니 그 아들을 내게 다오'라는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그 마음의 조율을 다른 모습으로 표현해 보고자 합니다.

"한나야 왜 우니?"

"하나님, 저를 향해 비난하는 소리, 하나님과 끊어졌다는 소리, 저를 모욕하는 소리 안 들리세요? 저 너무 아프고 괴로워요. 제가 하나님께 끊어진 여자가 아니라면, 저주 받은 여자가 아니라면 제게 아들을 주세요"

"한나야, 너도 아들이 없으니 무의미하고 삶이 흔들리지? 내가 그래. 내가 이 말씀이 끊어진 암흑과도 같은 세상에, 내 마음과 심정을 옳게 전할, 말씀의 사람이 한 명도 없구나. 내가 너에게 아들을 주면, 그 아들을 나에게 주겠니?"

"하나님, 그러셨군요. 하나님도 많이 아프시고 고통스러우셨구요. 그럼 하나님, 제게 아들을 주시면 그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마음을 전할 그 한 사람, 저에게서 난 아들로 사용하세요"

기도가 내 소망만을 부르짖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과 조율되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이 가까이 계심을 깨닫게 되고, 그 하나님을 붙잡고 끝까지 나아가는 믿음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그 삶으로 살아가는 승리의 한 주가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