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10808_설교정리_자족, 원함이 아닌 필요를 채우는 인생

서정원 (JELOME) 2021. 8. 8. 16:50

○ 말씀전문

[빌립보서 4장 11절~13절]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 설교요약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를 보면 주인공인 바흠은 해가 떠 있는 동안 걸어서 처음 자리로 돌아오면 얼마든지 땅을 가질 수 있다는 말에 지나치게 욕심을 부립니다. 걸음은 점점 빨라졌고, 조금만 조금만 더 하다가 너무 멀리까지 가고 맙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해가 지기 시작해서 다시 출발선을 향해 달리지만, 너무 무리한 나머지 출발선에 돌아온 그는 심장마비로 쓰러져 죽습니다. 결국 더 많은 땅을 가지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인 바흠에게 남은 것은 고작 자신이 누울 수 있는 크기의 땅이 전부였습니다. 땅을 차지하기 위해 걸었던 바흠의 하루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코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습니다. 더 많은 돈이 더 행복한 삶을 만들어줄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으로 오늘을 희생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 아닐까요?

우리는 삶을 어디에 집중해야만 이처럼 끝없는 인간의 욕심에서 벗어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그것을 오늘 그리스도인의 자족이라 할 수 있는 본문에서 배웠으면 합니다. 11절입니다. "내가 궁핌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자족이란 ① 스스로 넉넉함을 느낌, 혹은 ② 다른 곳으로부터 구함이 없이 자기가 가진 것으로써 충분함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빡빡한 코로나의 시기에 우리가 깨닫고 배워야 하는 것은 어쩌면 이 두 번째의 뜻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가 바울과 같은 그리스도인의 자족을 느끼려면...

 

1. 원함이 아니라 필요를 채우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새번역성경을 보면 13절은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생각하면 주님이 주신 능력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오해 할 수도 있겠으나, 문맥 상으로 이해해 보면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다. 어떤 환경에도 적응하는 법을 배웠다' 라는 의미입니다. 능력 주시는 그 분 안에서 가난과 부와 관계 없이 주어진 삶에 적응하는 법을 배웠다는 뜻입니다. 

이 적응의 비결은 '필요를 채워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원함을 분모로 두고 채움을 분자로 두면 불만족이 되는 공식이 만들어집니다. 반면에 필요를 분모로 두고 채움을 분자로 두면 만족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집니다. 이 원리를 이해하고 살아가면 주어진 삶에 적응하고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원함을 채워주겠다' 라는 말씀은 없습니다. 단지 '필요를 채워주겠다'라는 말씀은 곳곳에 나옵니다. 대표적인 말씀이 빌립보서 4장 19절에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기자가 록펠러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얼마면 만족하시겠습니까", 그러자 록펠러는 '조금만 더' 라고 했다고 합니다. 인간의 원함에는 끝이 없습니다. 언제나 조금만 더 있었으면 하는 기대가 있습니다. 원함을 채우려면 만족이 없습니다. 단지 필요를 채우려고 했을 때 만족과 감사가 찾아옵니다. 

 

이해인의 [가난한 새의 기도] 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꼭 필요한 만큼만 먹고 필요한 만큼만 둥지를 틀며

욕심을 부리지 않는 새처럼 당신의 하늘을 날게 해 주십시오

가진 것 없어도 맑고 밝은 웃음으로

기쁨의 깃을 치며 오늘을 살게 해 주십시오

 

가난을 위한 가난이 아니라 사랑을 위해 선택한 가난이기에

모든 것 버리고도 가진 것 나누어도 넉넉할 수 있음이니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무릎쓰고 먼 길을 떠나는 철새의 당당함으로

텅 빈 하늘을 나는 고독과 자유를 맛보게 해 주십시오

 

오직 사랑 하나로 눈물 속에도 기쁨이 넘쳐날

약속의 삶에 햇살로 넘쳐오는 축복

내 삶의 하늘에 떠 다니는 흰구름의 평화여

날마다 새가 되어 새로이 떠나려는 나에게

더 이상 무게가 주는 슬픔은 없습니다

 

이 새에게서도 우리는 배울 것이 있습니다. 주어진 것으로 만족하며 기쁨으로 사는 것, 원함이 채워지지 않아 불행해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2. 일상의 감사를 회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 말씀 11절을 쉬운성경을 통해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내 처지가 힘들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고 있으며, 어떠한 환경에서도 감사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자족은 만족을 느끼는 것이요, 만족은 감사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족하는가는 우리의 삶에 감사가 있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자족의 원천은 감사인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성령의 열매에 대해 갈라디아서 5장에서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성, 충성, 온유, 절제를 들고 있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여기에 감사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그것은 감사가 믿음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굳이 감사를 들먹일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옆집 할머니가 아이에게 과자를 주면, 엄마는 아이에게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면 누구도 감사 인사를 드리라고 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감사한 줄 알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에게 있어 감사는 이처럼 기본적인 것입니다. 이 코로나 시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먼저 점검해 봐야 할 것은 우리에게 있어야 할 이 감사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박희석 목사님이 쓴 [은혜는 내일 오지 않는다] 라는 책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전신에 암 세포가 전이되어 시한부 판정을 받은 한 주부의 이야기입니다.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지만 22개월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1년 보너스를 얻은 덕에 아들 초등학교 입학 첫 날, 학교에 데려다 주는 기쁨을 누리고 떠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녀석의 흔들거리던 이가 처음으로 빠져서 그 기념으로 자전거를 사러 갔을 때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보너스 1년 덕분에 30대 중반이 아니라 30대 후반까지 살다 가네요. 복부미만이요? 늘어나는 허리 둘레요? 그거 한 번 가져 봤으면 좋겠습니다. 희어지는 머리카락이요? 그거 한 번 뽑아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만큼 살아남았다는 얘기잖아요? 저는 한 번 늙어 보고 싶어요. 부디 삶을 즐기면서 사세요. 두 손으로 오늘의 삶을 꽉 붙드세요. 여러분이 부럽습니다"

하나님이 오늘을 선물로 준 것은, 주어진 오늘에 감사하며 기쁨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그 감사가 회복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하나님 한 분으로 충분함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12절과 13절이 자족하는 삶의 키입니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환경이든 어떤 상황이든 적응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 한 분이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유명한 CCM 가수가 미국 콘서트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들뜬 마음으로 도미해서 공연장을 들어섰습니다. 공연장은 500명이 관람할 수 있는 큰 홀이었습니다. 그런데 무대에 선 그의 눈에 비친 것은 고작 스무 명이나 될까 싶은 소규모의 사람들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최선을 다해 찬송을 불렀습니다. 공연을 마치고 귀국한 그에게 미국으로부터 국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생면부지의 그 사람은 그에게 너무 고마워서, 살려줘서 고마워서 전화를 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삶의 의욕을 잃고 인생의 종지부를 찍으려고 했는데, 마침 그 공연장의 화장실에 들렀다 나오면서, 인생의 마지막으로 저 공연이나 한 번 듣고 가야겠다 생각하고 공연장에 들렀었다고 합니다. 그의 찬송을 들은 그는 다시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가수는 하나님의 놀라운 쓰임의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 이후 이것은 그의 콘서트 제목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우리의 삶에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친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7장 37절과 38절입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맏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우리의 삶에도 이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길 바랍니다. 이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비결은 '나를 믿는 자는' 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삶에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우리는 자신의 믿음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① 하나님이 오늘도 나와 함께 하신다. ② 그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시다. ③ 그 하나님은 내 편이시다. 

인생에 고난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고난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입니다. 얼마전에 한 권사님과 식사를 하면서 그 권사님의 어려웠던 시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남편의 부도로 인해 가산은 파산이 되고 집안 곳곳에 붉은 딱지가 붙었으며. 월샛방을 전전하는 말 그대로 인생의 밑바닥까지 떨어진 삶이 찾아왔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형편이 조금씩 회복이 되었고, 아들의 간증까지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엄마, 이제 나는 내일을 위해서 걱정하지 않게 되었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렇게 신실하게 인도해 주시는데, 제가 그걸 몰랐어요. 주님 한 분이면 충분해요". 고난이 꼭 문제가 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주님 한 분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 고난은 또한 축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레미야 2장 13절입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는 것은 악이라고 하셨습니다. 코로나 시기에 우리가 악에 빠지지 않으려면 더욱 하나님을 붙잡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한 분이면 족하다는 믿음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스스로 몸부림쳐 봐야 그것은 터진 웅덩이가 될 뿐입니다. 오직 하나님, 하나님 한 분이면 충분하다는 고백으로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