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도제목
① 급격히 확산된 코로나로부터 안전을 지켜주시고, 온 국민이 방역에 힘쓰게 하옵소서
② 각 선교지마다 코로나의 질병으로부터 보호되는 은혜가 있게 하시고, 선교사님들의 안전을 지켜주옵소서
③ 모든 성도님들이 코로나로부터 보호되어지고 특별히 다음 세대 아이들의 안전을 지켜주옵소서
○ 말씀전문
[에베소서 3장 16절~17절]
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요한계시록 3장 20절]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 설교요약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경로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지난 주에는 한 권의 책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레마의 말씀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책은 로버트 멍어가 쓴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이라는 책이었습니다.
어느날 집으로 귀가한 그는 자신의 마음의 집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냄새의 근원지는 바로 벽장 속이었습니다. 비로소 그는 자신의 벽장 속에 무엇을 감추어 두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자물쇠를 채워 둔 그 벽장 안에 보잘 것 없는 개인적인 물건 몇 가지를 넣어두었습니다.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고, 더구나 예수님께는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것들이 죽은 것이고 썩은 것임을 알았지만 그래도 나는 그것들을 사랑했고 그것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이 벽장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두려웠습니다. 그것은 나의 옛 생활의 찌꺼기들로, 악한 것은 아니라 해도, 그리스도인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나는 우리의 삶의 벽장에도 이런 것들이 수없이 많이 감추어져 있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런 오물 같은 것들로 채워진 벽장이 있는 마음의 집은 결코 그리스도의 집이 될 수 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통해, 내 삶이 그리스도의 집이 될 수 있는 방법을 같이 나눠보고자 합니다. 그럼 내 마음이 그리스도의 집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1.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에 모실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반가운 사람도, 내게 복을 줄 수 있는 사람도, 그가 내 집에 들어오도록 하지 않으면 그를 모실 수가 없습니다. 내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집이 되려면 그 예수님을 내 집으로 모셔야 합니다. 그 예수님은 언제든 내 집에 들어오시려고 내 집 대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책에서 보여주는 그림의 명화에는 문고리가 달려있지 않은 대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계신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의 집 대문도 밖으로는 문고리가 없는 대문과 같습니다. 우리가 안에서 열어주지 않으면 아무도 들어올 수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도 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로버트 멍어는 용기를 내어 대문을 두드리시는 예수님을 집 안으로 모셔들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고백합니다. "그 분을 내 마음에 모셨던 그날 저녁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그분이 내 마음에 들어오신 시간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는지! 그것은 감정이 고조된 어떤 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내 영혼의 중심에서 발생한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그분은 내 어두운 마음에 들어오셔서 불을 켜셨습니다. 차가운 난로에 불을 지피고 냉기를 몰아내셨습니다. 그분은 정적이 흐르던 곳에 음악을 연주하셨고 불화가 있던 곳에 조화를 이루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분은 놀라운 사랑으로 공허를 채워주셨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께 문을 연 것에 대해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이렇게 문을 여는 것이, 내 마음을 그리스도의 집으로 만드는 첫 단계입니다". 우리도 진실로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해 드리기를 축복합니다.
집으로 들어오신 예수님을 마음의 서재로 모셨습니다. "책장 선반에는 그분의 정결한 눈으로는 차마 볼 수 없는 책들이 몇 권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는 관심을 갖고 읽을 필요가 전혀 없는 잡지들이 책상 위에 놓여 있었고, 벽에 걸린 그림들 (즉 내 마음의 상상과 생각들) 몇 가지는 부끄러운 것들이었습니다." 그 모습들을 지켜보신 예수님이 "네 서재는 좀 정리될 필요가 있겠다. 유익하지 못한 것들은 제거하고 말씀의 책들을 꽃아 두었으면 좋겠다" 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그대로 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 생각이 그리스도께 집중될 때, 그분의 임재와 정결하심과 권능에 대한 의식이, 잘못되고 불결한 상념을 쫓아버린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들의 지배를 받습니다. 책장에 꽃아 둔 책들에게 눈이 가고, 책상 위에 있는 것들의 유혹을 받습니다. 우리도 내 마음의 서재가 어떤 것들로 채워져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유투브 1순위가 무엇으로 되어 있는지, 부끄러운 마음들로 세상을 바라보고 사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황폐하고 어지러져 있는 마음을 제거하고 언제나 말씀을 상기하게 해 줄 것들로 채워질 때, 비로소 우리는 주님을 내 마음으로 모실 준비를 갖추게 됩니다.
2. 예수님을 내 마음의 주인으로 모실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사는데도 예수님이 아무 것도 하시지 않는 것 같다고 합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예수님이 아무 것도 하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시지 못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래 전에 사정이 있어서 한 집사님 댁에 머무르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집사님은 내 마음을 편하게 해 주시려고 "목사님, 목사님 집처럼 편안히 계시다 가십시오" 라고 했지만, 결코 그 집이 내 집처럼 편안할 수는 없었습니다. 내가 주인인 집이 아닌 이상 그 어떤 집도 편안해질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 삶 속에 예수님을 영접하였는 데도 예수님이 계시는 역사가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예수님이 비록 내 마음의 집으로 들어왔더라도, 나그네로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는 이상 우리는 예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하기 어렵습니다.
에베소서 3장 16절과 17절에서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시오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여기서 계신다는 것에는 두 단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파로이케오'로 일시적으로 정착한다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카토이케오'로서 정착해서 계속 상주한다는 의미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계시다'는 것은 후자인 카토이케오를 말합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다 믿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그 예수님이 다 주인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카토이케오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예수님이 내 주인이 되시게 됩니다.
다시 로버트 멍어의 책으로 돌아가 봅니다. 서재를 둘러보신 예수님이 식탁으로 나오셔서 내게 물으셨습니다. "오늘 저녁은 메뉴가 뭐지?". "예, 제가 좋아하는 음식은 돈, 학위, 증권 등이 주식이고, 반찬으로는 명성과 행운에 관한 신문 기사들이 있습니다". 나는 이런 세상의 음식을 좋아했던 것입니다. 어떤 특별한 음식에 근본적인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이 진정으로 영혼을 먹이고 영적 굶주림을 해결해 주는 참된 음식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 내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진정으로 만족스러운 음식을 원한다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여라. 너의 야망이나 욕망, 그리고 너 자신의 만족을 구하는 것을 중지시켜라. 그분을 기쁘게 하도록 힘쓸 때, 바로 그 양식이 너를 만족시킬 것이다".
그러면서 아픈 곳을 찔러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 집의 손님일 뿐 주인이 아니다. 내게는 일을 수행할 권한이 없다. 건물이 내 소유가 아니니까". 그런 주님께 고백했습니다. "주님, 지금까지는 당신이 손님이었고 제가 주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제가 하인이 되겠습니다. 당신이 저의 이 집의 주인이 되어 주십시오".
오늘 아침 아내와 얘기하는 주제는 무엇이었을까? 돈, 아파트, 주식은 아니었나요? 그런 주제로는 우리의 삶은 여전히 배고프고 허덕일 뿐입니다. 이제는 주인 권에 대한 명의 이전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내 마음의 집의 주권을 주님으로 바꿀 때입니다. 그럴 때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이실 뿐만 아니라, 내 삶의 주인이 되십니다. 그럴 때 내 삶에 변화가 찾아옵니다. 하나님이 일하시게 됩니다. 현장 예배냐 비대면 예배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예배를 드리든, 삶이 예수님이 주인이 되어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내 마음의 집이 주님이 주인되는 축복이 있으시길 축원합니다.
3. 주님과의 행복한 동행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 로버트 멍어의 책으로 돌아가 봅니다. 아침에 일어나 거실로 나갔습니다. 밤 사이에 거실의 벽난로 불이 꺼져 한기가 돌았습니다. 그 싸늘한 거실에 주님이 홀로 앉아 계셨습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아침마다 늘 여기로 오셨습니까?". "그럼 너를 만나기 위해 매일 아침 여기에 오겠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그 말씀에 나는 더욱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분은 내가 불성실했음에도 불구하고 늘 성실하셨습니다. 나는 그분께 용서를 구했고, 그분은 우리가 잘못을 시인하고 올바로 살겠다고 결심하면, 늘 그렇게 하시듯이 즉시 나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동행입니다. 여행이 어디를 가느냐 이전에 누구와 가느냐가 더 중요하고, 음식을 먹을 때 무엇을 먹느냐 이전에 누구와 먹느냐를 먼저 생각하듯, 신앙에서도 누구와 동행하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종종 예수님과 동떨어져 살아갑니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 봅니다. 아침에 그 부끄러운 고백을 하고도 나는 내 생각, 내 뜻대로 살다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내 마음의 오락실로 가기로 했던 것입니다. 내 마음의 오락실은 혼자 즐기려는 마음입니다. 혼자만 간직하고픈 교제이기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 오늘은 좀 빠져 달라고 하고, 혼자서 갔다 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예수님 방에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나는 예수님의 방문을 두드리고 들어가 고백했습니다. "나는 비참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내가 초라하게 생각되었습니다. 주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기어이 그것을 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나의 교제권 밖으로 몰아냈는데도, 도대체 나 같은 게 무슨 그리스도의 친구란 말입니까?". 그러다 다시 고백했습니다. "주님, 저는 교훈을 하나 깨달았습니다. 저는 당신 없이는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없습니다. 앞으로는 모든 일을 함께 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도 혹시 나만이 즐기고 싶은 내 마음의 오락실을 숨겨두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동안 은혜의 눈물을 쏟고도, 일상에서 그 은혜가 어디로 갔는지 사라진 삶을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 삶에 주와의 동행이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은혜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담을 수 있는 그릇도 중요합니다. 그 그릇이 없으면 받았던 은혜도 곧 매말라 버리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그 그릇이 바로 동행입니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 봅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주님을 모시고 내 작업실로 갔습니다. 거기에는 수 많은 도구들이 있고, 그 동안 내가 만들었던 볼품 없는 작품들이 뒹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주님이 물었습니다. "너는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무엇을 만들고 있느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주님이 "더 잘 하고 싶으냐?" 하고 물었습니다. 내가 주님의 얼굴을 올려다 보며 고개를 끄떡이자 주께서 내 손을 그분의 손위에 얹게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거침없이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그분을 신뢰하고 그분의 방법대로 일하시도록 주권을 내어 드렸을 때, 그분은 노련한 솜씨로 놀라운 작품을 만들어가기 시작하셨습니다. 나는 이직도 완전히 만족스러운 것을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여전히 내가 그분이 하시는 일에 뛰어들곤 하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내가 배워야 할 것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하나님을 위해 만든 것이 무엇이든지 그분의 손과 내 안의 성령의 능력을 통한 것임을 압니다. 하나님을 위해 많은 일을 해드릴 수가 없다고 해서 낙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쓰시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드리는 자세입니다. 당신의 모습 그대로 그리스도께 드리십시오. 그분이 원하시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십시오. 그분을 신뢰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그분은 놀랄 만한 일들을 행하실 것입니다. 바로 당신을 통하여!"
우리가 밤낮으로 수고하고 있지만, 쉴새 없이 무언가를 만들고 있지만, 정작 그 중에 어느 하나라도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이 있는지, 어떤 쓰임을 받고 있는지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내 주권, 내 손을 주님께 내어드릴 때, 그분이 모든 것을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통해 일을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나를 통해 일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 될 수 있도록 주님과 동행하고, 주님께 손을 맡기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내게 와 계신지, 그 주님이 진정한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있는지, 그 주님과 진정한 동행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서, 내 마음이 그리스도의 집이 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신앙_설교정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210801_설교정리_십자가의 길, 순교자의 삶 (0) | 2021.08.02 |
---|---|
210718_설교정리_지금 다시 시작하세요 (구리지구촌교회 박길호목사) (0) | 2021.07.18 |
210704_설교정리_은혜 입은 자의 삶 (0) | 2021.07.04 |
210627_설교정리_회개, 죄를 이기는 능력 (0) | 2021.06.27 |
210620_설교정리_소망, 하늘에 속한 사람 (0) | 2021.06.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