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동기도
1. 코로나19의 확산을 막아주시고 국민들의 일상의 터전이 잘 보호 되어지게 하옵소서
2. 최근 미얀마의 유혈사태를 속히 종결시켜 주시고 그 땅에 평화가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3. 우리 교회 목장 가운데 은혜를 주시고 섬기는 마을장, 목자님들에게 새 힘을 주시옵소서
○ 말씀전문
[사도행전 2장 43절~47절]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 설교요약
중국 기독교 역사에서 문화혁명 시기가 기독교에 대해 가장 박해가 심한 시기였습니다. 이 모택동의 기독교에 대한 탄압이 절정에 이르자 많은 사람들은 이제 중국에서의 기독교는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모택동이 실각한 후 문화혁명 이전 보다 훨씬 많은 기독교인들이 늘어나서 무려 5,000만명 이상에 이르렀습니다. 이를 지켜본 전 세계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혹독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기독교가 살아남고 그 씨앗을 통해 놀라운 부흥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초대교회에 대한 박해 역시 문화혁명 시대 중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했습니다. 믿는 자들을 죽여서 그 시신을 가로등 불빛으로 사용했을 정도로 처참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박해 속에서도 기독교는 살아남았고 더욱 부흥하였습니다. 그 비결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기 그지 없습니다.
지금 이 땅에 그러한 핍박과 박해는 없지만, 우리의 신앙을 가로막는 요인들은 여전히 주변에 가득합니다. 지금의 코로나 시기도 그 요인 중의 하나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초대교회가 그 험한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어떻게 승리하고 부흥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 승리의 비결은...
1. 공동체의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국 기독교가 혹독한 박해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배경, 그리고 다시 부흥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소그룹 운동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진단들 합니다. 역경 속에서도 함께 하는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복음+공동체]가 부흥의 핵심이 된 것입니다.
이와 똑 같은 현상을 초대교회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44절과 45절입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믿다가 발각되면 붙잡혀 가는데도 그들은 흩어지지 않고 다 함께 했습니다. 이 함께 함이 위대한 힘이 되고, 역사를 만들어가는 원동력이 됩니다.
데이비스 브룩스가 쓴 [두 번째 산]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인생을 산에 비유하였는데, 첫번째 산은 '자아의 산' 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성공, 부, 명예를 위해 오르는 산입니다. 그 산을 오른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 산 정상에서 만족보다는 공허하고 허전함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두번째 산은 공동체라는 산입니다. 혼자서 오르는 산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삶'을 뜻하는 산입니다. 이 산에 오르면 위로와 격려와 힘이 있다고 했습니다.
조지 바나는 미국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개인주의 나라이다. 미국은 세계에게 가장 외로운 나라이다". 미국은 불면증과 우울증 약이 가장 많이 팔리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게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더불어 살아야 행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세상은 점점 더 개인주의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 하나 없이 살아가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공동체 개념이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시점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할 것은 공동체의 삶입니다. 공동체적인 신앙입니다.
사람은 매번 성공할 수는 없습니다. 넘어졌을 때 내 손을 잡아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공을 위한 첫번째 산도 중요하지만, 더불어 살아가는 두번째 산에 대한 소망도 소중히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환란과 고난이 닥치더라도 살아남고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중국의 문화혁명과 초대교대에 대한 핍박 속에서도 기독교가 그 공동체의 힘으로 다시 일어선 것처럼 말입니다.
2. 마음을 나누는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는 가정과 직장과 사업장에 커다란 어려움을 주고 있습니다. 모두가 힘들게 버티고 있습니다. 이 코로나는 사역자들에게도 어려운 시기입니다. 하지만 이 어려움 속에서 놀랍고 오아시스 같은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필요한 것이 없는지 교회 사무실까지 찾아와 걱정해 주시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주일 예배 때문에 사역자들이 점심도 제대로 챙겨먹기 어려울 것이라며 도시락을 주문해서 보내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힘이 생기고 다시 마음을 다잡게 됩니다. 바로 우리 교회가 마음을 나누는 공동체이구나, 이 힘으로 함께 가는구나 싶은 마음에 늘 기쁘기 그지 없었습니다. 초대교회가 그랬습니다. 46절입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사람이 많이 모인다고 공동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이 함께 할 때 공동체가 됩니다. 가족들의 마음이 다 다른 곳으로 가 있으면 그 가정은 온전한 공동체가 될 수 없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의 코로나 시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공동체 의식입니다. 마음을 함께 모아야 할 시점입니다. 한국 교회에 필요한 것이 바로 공동체 의식입니다. 마음을 모아야 할 시기입니다.
마음을 모으는 일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소하다고 여기는 관심입니다. 그리고 표현입니다. 셀공동체인 목장이 잘 이루어져 가려면 목원들의 관심과 표현이 필요합니다. 카톡에 달아주는 댓글이 목자들에게 큰 힘이 됩니다. 아무런 반응이 없으면 목자들도 사람인지라 마음에 상처를 받습니다. 단순하다고 여기는 댓글 하나가 목장을 살아있는 목장으로 만들어 갑니다. 자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는 관심이, 힘내라는 카톡이 자녀들을 일으켜 세웁니다.
1964년, 뉴욕 퀸즈에서 20대의 여자가 귀가 하다가 끔직한 죽임을 당했습니다. 시골 구석이 아니라 뉴욕 한 복판에서 일어난 일이라 뉴욕타임즈의 기자 한 사람이 그 사건을 깊숙히 추적해 보았습니다. 추적 결과 그 여자는 아무도 보지 않은 곳에서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무려 38명이나 되는 목격자의 눈 앞에서, 그것도 세 번에 걸쳐 칼에 찔려 죽었다는 것이 밝혀져서 세상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녀의 비명과 필사적인 몸부림 속에서도 아무도 나서서 말리거나 경찰에 전화를 건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밝혀진 바로는 범인이 그 여자를 첫번째 찌르고는 도망을 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 아무도 말리거나 하지 않자, 재차 삼차 다가가서 무참하게 죽였다는 것이었습니다. 도시화가 낳은 비극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심리학자인 달리는 이 사건을 두고, 목격자가 많았음이 오히려 원인일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누군가가 하겠지 라는 생각하으로 자기도 모르게 책임이 분산되어 버린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대부분이 아파트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우리도,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 하겠지 라는 마음으로 사는 것은 아닐까요? 내 문제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지는 않을까요? 정작 내게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아무도 나서 주지 않게 될지 걱정 되지는 않나요?
지금은 위기의 시대입니다. 위기의 시대일수록 공동체의 끈끈함이 필요합니다. 위기일수록 가족들이 한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초대교회가 어려움 속에서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 마음을 같이 하는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이었음을 기억하고, 마음을 나누는 가정, 마음을 나누는 일터, 마음을 나누는 교회를 만들어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공동체에 대한 특별한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좋은 전도는, " 우리 교회에 한번 와 보세요, 우리 교회 예배에 한번 와 보세요" 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교회, 우리 예배를 떳떳하게 보여 주기를 주저한다면 그것은 말로만 홀리는 전도라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교회, 우리 예배에 대한 특별한 자부심이 있는 교회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초대교회의 특별한 힘, 자부심을 47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첫째는 하나님을 찬미하는 교회였습니다. 예배가 달랐다는 것입니다. 익숙한 예배가 아니라, 성령이 함께 하여 하나님을 찬미하는 모습이 남달랐다는 것입니다. 건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가 남다른 교회, 우리 교회도 이런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시다. 둘째는 성도들의 삶이 남달랐다는 것입니다. 그 삶을 바라보고 온 백성들이 칭송을 했다는 것입니다. 예배가 남다르고 삶이 남다른 것을 보고는, 그 박해의 시기 속에서도, 구원받는 사람들이 날마다 더해졌다고 합니다.
초대교회 시대 이후에도 교회의 이러한 특별함은 계속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코로나라는 전염병으로 힘들어 하지만 역사 속에는 이보다 더 심한 전염병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안토니우스역병이라 불리는 전염병 시대가 있었습니다. AD165년부터 180년까지 15년에 걸쳐 횡횡했습니다. 그 당시 로마제국 사람의 1/4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249년에서부터 266년까지 있었던 키프리아누스역병인데 당시 로마에서 하루에 5,000명 씩 목숨을 잃었던 적도 있는 전염병이 있었습니다. 이들 전염병이 돌자 제사장들과 시장 등 지도자들은 피하는 게 상책이라며 다 도망을 쳤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달랐습니다. 위험을 무릎쓰고 환자들을 돌보고, 함께 전염되기도 하며 죽기도 했습니다. 죽음을 무릎쓰고 함께 했습니다. 그것이 초대 교회 교인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삶을 통해 보여준 모습이었습니다. AD300년대에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때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을 "파라불라노이"라고 불렀습니다. '위험을 무릎쓰는 사람들' 이라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가 배워야 할 렛슨을 다시 정리하면, 우리는 개인주의가 아니라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마음을 나누는 공동체 의식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과 다른 섬김의 모습을 보이며 살아야 합니다. 함께 가야 멀리 갈 수 있고 함께 가야 끝까지 갈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새겨서 승리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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