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전문
1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4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 설교요약
오늘 말씀을 준비하다 보니 지난 화요일에 묵상한 사도행전 16장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떠오른 말씀 16장 24절부터 26절입니다.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빌립보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가 답답함을 이기지 못해 간절이 기도하고 찬송했더니 감옥문이 열리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믿음의 지도자인 베드로가 붙잡혀 감옥에 갇히자 초대교회 교인들이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한마음이 되어 기도합니다. 그리고 쇠사슬이 저절로 풀리고 쇠문이 열리는 역사를 이룹니다. 지금 우리도 코로나에 갇혀 답답합니다. 이 답답함이 열려지고 우리에게도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럼 우리에게 이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려면...
1. 위기를 극복하는 '살리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헤롯 왕이 야고보를 칼로 죽이자 그것을 바라본 유대인들이 기뻐하였습니다. 이에 고무된 헤롯은 베드로까지 잡아서 감옥에 가두고 철저한 감시 속에 두었습니다. 2절로 4절입니다.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야고보에 이어 베드로까지 잡혀가는 박해로 초대교회 성도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위기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베드로를 살리기 위해 합심하여 기도하였습니다. 5절입니다.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위기가 해결될 때까지 '베드로를 살려주옵소서' '교회를 살려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오직 기도에 깨어 있었습니다. 이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셨습니다. 그를 묶고 있던 쇠사슬이 벗겨지고, 그를 가두고 있던 쇠문이 저절로 열렸습니다. 살려달라는 기도에는 살리는 응답이 주어집니다.
열왕기하 19장에서 히스기야의 기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앗수르 왕이 히스기야 왕에게 사자를 통해 편지를 보냈습니다. "네가 믿는 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앗수르에 넘기지 아니하겠다 하는 말에 속지말라"며 반드시 예수살렘은 앗수르에게 망한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때 히스기야는 그 편지를 그대로 가지고 성전으로 올라가 여호와 앞에 펴놓고 19절과 같이 기도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하나님은 절대절명의 순간에 살려달라는 기도에 반드시 응답해 주시는 분입니다. 히스기야의 기도에도 응답하셨습니다.
우리도 답답하고 암담한 작금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가 기도할 때입니다.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에 주택 문제까지 겹쳐서 답답하기 그지 없는 현실을 그대로 가지고 나가 간절히 기도할 때, 초대교회 교인들에게 주신 응답, 히스기야에게 주신 응답이 우리에게도 반드시 임할 것입니다. 현재 우리에게는 두 가지의 위기의식이 필요합니다. 하나는 삶의 일상을 깡그리 무너뜨리는 코로나에 대한 위기의식입니다. 이 위기의식도 하나님께 기도하여 해결해야 합니다. 또 하나는 현장예배가 느슨해지고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과정에서 찾아오는 영적인 위기의식입니다. 온라인 예배의 편리함에 현혹되어 온전한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것이 습관화 되면 10년 동안 교회에 다닌 사람도 영적으로 무너질 수 있음을 자각해야 합니다. 이 두 위기의식이 건전하게 해결되려면 살려달라고 부르짖는 '살리는 기도'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는 11월을 맞으며 1.1.1기도 캠페인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① 하루 10분이상 기도하기 ② 1주일에 한 끼 이상 금식하기 ③ 한달에 1가지 이상 헌신하기 입니다. 이 기도 캠패인을 통해 기도하는 삶을 회복하고 기도를 통해 답답함을 해결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2. 카이로스의 시공간이 열리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가 옥에 갇히자 모든 성도들이 합심하여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러자 옥문이 열리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7절과 10절입니다. "7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10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이를 이해하려면 카이로스의 시공간을 이해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시공간이 있습니다. 하나는 크로노스인데 우리가 눈으로 감지하는 물리적인 시공간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운행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창조공간, 카이로스입니다. 카이로스는 하나님만이 운행하시는 시공간인데, 이 카이로스가 이 땅의 시공간을 뚫고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시공간이 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크로노스로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카이로스가 코로노스 공간으로 뚫고 들어온 것입니다. 베드로의 손목에 감겨있던 쇠사슬이 저절로 벗겨지고, 그를 가두고 있던 쇠문이 저절로 열리는 이 역사는 코로노스 공간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하나님의 카이로스 시공간이 뚫고 들어올 때 일어나는 역사입니다. 이 카이로스가 크로노스 공간을 뚫고 들어오게 하는 것, 그 힘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해 이 하나님의 시공간이 우리에게로 찾아오게 됩니다.
열왕기상 18장 42절로 45절을 보겠습니다.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르되 올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엘리야의 믿음의 기도로 3년 6개월간 지속되었던 가뭄이 끝나고 큰 비가 내렸습니다.
현재 우리 중에도 3년 6개월의 가뭄과 같은 사정에 놓여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자녀걱정, 경제적 어려움, 건강문제, 각자 다양한 문제로 앞뒤좌우가 꽉 막힌 것처럼 여겨지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이때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이 바로 하나님이 운행하시는 카이로스의 시공간입니다. 카이로스 시공간을 소망할 때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서 "너는 내게 부르짖어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하면 크고 은밀한 일, 즉 하나님이 역사가 크로노스를 뚫고 우리에게 보여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고 날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부르짖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3. 그림자가 아닌 실체를 움직이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발악같은 최선을 다해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있는데, 단순한 믿음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개를 갸웃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마태복음 17장 20절을 펴보기를 권합니다.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믿음의 힘은 우리가 발휘할 힘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무한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커다란 산이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일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실상은 내 앞에 버텨선 그 산은 실체가 아니라 그림자일 뿐입니다. 그것이 단지 그림자일 뿐이므로 실체를 움직이면 그 그림자는 자연히 사라지게 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면 실체는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실체는 하나님이 움직이십니다. 우리는 단지 그것이 그림자임을 알고, 실체를 옮겨달라고 하나님께 부탁하면 됩니다. 그 기도는 믿음에서 나오며, 믿음에서 얻게되는 하나님의 힘입니다. 우리의 기도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힘으로 그 실체를 옮겨 주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느끼는 산, 그 그림자는 자연히 걷히게 됩니다.
본문 7절에서 "홀연히"라고 되어 있습니다. 홀연히는 헬라어로 "이두"입니다. 이두는 behold (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쇠사슬을 풀고 쇠문을 여는지 그 역사를 보라는 뜻입니다. 이 역사를 경험한 베드로는 11절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습니다.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본체, 즉 실체를 움직이면 그림자는 자동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내가 산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산으로 느끼는 그 그림자의 실체를 오직 하나님만이 움직이신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힘든 세상입니다. 힘들수록 내 앞을 가로막는 산이 많아지고 커 보입니다. 그 산 앞에서 답답하여 숨을 쉬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산이 아니라 그림자일 뿐입니다. 그 그림자를 아무리 옮기려 해도 불가능합니다. 그 실체를 알고 계시는 하나님에게 그 실체를 옮겨달라고 기도해야합니다. 그러면 그림자는 자연히 소멸되게 됩니다. 이 답답함 앞에서 우리에게 밝은 빛을 보게 하는 것은 오직 기도 밖에 없습니다. 기도로 승리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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