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01108_설교정리_ACT29 (22) 바른 퇴장과 바른 등장을 준비하는 삶 (행13:21~23)

서정원 (JELOME) 2020. 11. 8. 20:36

○ 말씀전문

[사도행전 13장 21~23절]

21 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23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 설교요약

평소 존경해 마지 않는 이재철 목사님의 [목회자의 자기관리 수칙33]을 되새겨 보곤 합니다. 하나 같이 소중하게 밑줄을 그어서 새기고 새겨야 할 말씀들입니다. 예를 들면, "① 반드시 시간을 지키라. 어떤 예배든 정해진 시간 정각에 시작하라. 사람이 많이 오지 않았다고 예배시간을 늦추지 말라. 예배 시간이란 사람과의 약속이자, 그 예배를 받으실 하나님과의 약속이다. ② 자신이 행하지 못하는 것은 교인에게 요구하지 말고, 교인들에게 설교한 것은 무조건 행하라. 참된 설교는 강단에서 내려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③ 교인들에게 대접만 받는 사람이 되지 말고 먼저 베푸는 사람이 되라. 목회자가 나눔의 종착역이 되려 하면 스스로 썩어 버린다. ④ 교인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목회자여야 한다. 교인들이 없다고 해서 목회자가 정체성을 망각한다면 결국 사람들 앞에서는 연기를 하는 셈인데, 연기를 통해서는 성령님께서 역사하시지 않는다." 라는 것들입니다. 목사님이 목회를 하면서 밑줄을 그어 살펴야 할 점들을 가르쳐 주셨다면, 우리의 신앙, 우리의 삶에도 밑줄을 그어 새기고 새겨야 할 점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도 우리가 살펴봐야 할 소중한 점들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1. 빅 하트 (Big Heart)의 영성이 있어야 합니다.

안디옥 교회의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선교의 영성이 살아있는 교회'라고 했습니다. 거기에 하나를 더한다면, '넓은 꿈을 가졌던 교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은 1세기입니다. 1절로 되돌아가 보겠습니다. "안디옥 교회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안디옥 교회의 리더들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Negro 즉 흑인을 의미합니다. 또한 구레네 출신이라는 것을 봐서 루기오도 흑인으로 추정됩니다. 이처럼 그 당시에 벌써 안디옥 교회는 인종 차별이 없는 교회였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안디옥 교회가 될 수 있었던 중요한 점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교회에 빅 하트가 깃들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그 리더 중의 한 사람인 바나바를 통해서도 빅 하트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를 세운 리더들의 이름 중에 바나바가 가장 먼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 개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증거입니다. 사도행전 13장 7절까지 그의 이름이 바울보다 앞서 기록됩니다. 7절입니다.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그러나 43절부터는 그 기록된 순서가 바뀝니다. "회당의 모임이 끝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사도행전을 보면 알겠지만 바울을 세우고, 바울을 도운 사람이 바로 바나바입니다. 바나바가 넓은 마음을 가지지 못한 편협한 사람이었다면 안디옥 교회가 부흥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런 넓은 마음, 빅 하트를 가진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져 갑니다.

세상도 넒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존경 받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각박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울타리를 치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각박하게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나라 또한 각박한 세상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사도행전 29장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세상이 더욱 각박해지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말로 용서하고 기도해주는 삶을 보여야 할 때입니다. 품어주고 세워주는 마음이 필요할 때입니다. 나만 생각하는 옹졸한 세상은 재미가 없습니다. 나 자신에게, 내 가족에게, 일터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이웃에게 바나바와 같은 빅 하트를 드러내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2.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이 다윗을 한 마디로 정의합니다. 21절과 22절입니다.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즉 "내 마음에 합한 사람" 입니다. A man after my own heart. 그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첫째,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을 향한 사람입니다. 사무엘상 16장 7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사울을 폐하고 다윗을 세우는 장면에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했지만 다윗도 흠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부하의 아내인 밧세바를 취한 자입니다. 하지만 자기의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고 회개하였기에 소중히 쓰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사람이 완전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인정하기를 기대합니다. 셋째, 여호와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하나님만을 믿는 사람은 다릅니다. 하나님만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시편 7편 1절과 2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아오는 모든 자들에게서 나를 구원하여 내소서 건져낼 자가 없으면 그들이 사자 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 시편 7장은 베냐민 사람 구시, 즉 몰락한 사울 왕의 후손의 말에 따라 마음을 고백하며 부르짖은 말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골리앗까지도 두려워하지 않고 이긴 다윗이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지 않으면 저 몰락한 구시마저도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한 말입니다. 다윗이 얼마나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구절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도 마음에 맞는 사람을 신뢰하고 일을 맡깁니다. 마음에 맞는 사람을 위해 충성을 다합니다. 마음에 맞는 사람을 찾아서 결혼을 합니다. 마음에 맞는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압니다. 이제 우리가 누구에게 마음에 맞는 자가 되어야 할지 깨달아야 합니다. 그 분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자가 되려면, 그 분이 우리의 중심을 보는 분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오직 그분만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하 것입니다.

 

3. 바른 퇴장과 바른 등장을 준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재철 목사님의 [인간의 일생]에서는 '죽음이 끝이 아니다. 죽고 나면 남아있는 사람들 앞에 놓인다. 죽음은 퇴장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뇌리 속에 다시 나타나는 등장이기도 하다. 이 등장의 수준은 그가 퇴장 할 때의 수준이다'. 바울도 2천년 전에 퇴장한 사람이지만 지금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36절입니다.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을 따라 섬기다가 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평생을 하나님의 뜻대로 살다가 조상 곁에 묻혔습니다. 영광스런 퇴장이었습니다. 또한 그 영광스런 수준으로 우리 앞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바른 퇴장을 한 사람은 그 바른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등장하게 됩니다. 우리가 죽어 천국에 갈 때도 이 땅에서의 믿음의 수준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이것을 늘 준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나쁜 퇴장으로 기록된 자를 보겠습니다. 여로보암입니다. 북왕국을 세움으로써 출세했다고 할 수 있는 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기억, 세상 사람들의 기억에는 우상을 섬긴자, 탐욕을 드러낸 자로 등장합니다. 그것이 꼬리표처럼 성경에 따라다닙니다. 열왕기 15장 34절입니다. "바아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 16장 2절입니다. "내가 너를 티끌에서 들어 내 백성 이스라엘 위에 주권자가 되게 하였거늘 네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하여 그들의 죄로 나를 노엽게 하였은즉". 19절에도 나옵니다. "이는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범죄하였기 때문이니라 그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죄를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 꼬리표처럼 등장합니다.

우리의 삶도 퇴장과 등장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갑니다. 하루의 마감 퇴장이 아름답지 못하면 자고 일어나는 새 아침도 마음이 편하지 못합니다. 아름답지 못한 퇴임의 끝에는 남아 있는 사람들의 비난이 등장하고, 존경스런 퇴임의 퇴장에는 그 조직이 살아있는 동안 늘 닮고 싶은 선배라는 모습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이제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하나님 나라라는 관점에서의 바른 퇴장과 바른 등장을 준비할 때입니다. 하나님 앞에 어떻게 등장하게 될지는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이재철 목사님이 쓴 [목회잠언 33]의 제33언입니다. "목사도 때가 되면 예외 없이 죽음으로 퇴장한다. 그러나 죽음의 퇴장은 새로운 등장이다. 자신이 살아생전 야망의 노예였는지 아니면 진리 의 사람이었는지 죽음의 퇴장과 동시에 밝혀지기 마련이므로,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부터 죽음의 퇴장을 준비하라" 바른 퇴장으로 바른 등장을 준비하는 복된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