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31217_설교정리_기적이 상식이 되는 삶 (요21:20~22)

서정원 (JELOME) 2023. 12. 17. 12:27

○ 말씀 전문

[요한복음 21장 20~22절]

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 받은 말씀

목사 사모이신 이경미 사모의 [기적이 상식이 되는 말] 이라는 책을 읽고 많은 공감과 감명을 느꼈습니다. 이경미 사모는 20년 동안 독실한 불교신자였습니다. 그러던 그 분은 어느날 우연히 예수님을 만나고, 자신의 삶에 커다란 변화가 왔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녀가 쓴 [기적이 상식이 되는 말]에서 그녀는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주는 요소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말은 ① 말에는 능력과 권세가 있다. ② 말에는 죽이는 말도 있고 저주하는 말도 있다. 하지만 ③ 세워주고 인정하고 격려하는 말은 기적을 이룬다 라는 것입니다.

이 연말에 특히, 우리는 가정과 일터와 교회, 그리고 세상에서 격려하고 인정하는 말을 하는 시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주님이 주시는 기적의 삶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본문 말씀도 우리에게, 기적이 상식이 되는 삶에 대한 말씀으로 느껴집니다. 그동안 요한복음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기적의 말씀들을 보았습니다. 요한복음에는 Special한 기적, 특별한 사건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특별한 기적의 사건들은 우리의 삶에서는 경험하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특별한 사건의 기적이 아니지만, 소소하지만 일상을 복되게 하는 기적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경험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가 삶을 복되게 하고, 우리의 삶이 일상의 기적을 경험하는 삶이 되기 위한 비결은...

 

1. 주님을 사랑할 때 세상을 사랑할 힘이 생깁니다.

우리는 간혹 가족 조차도, 심지어 아내나 자식 조차도 제대로 사랑하며 살지 못하고, 미워하며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로 인해 내가 복된 삶을 살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사랑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인생만큼 복된 삶은 없을 것입니다. 사랑으로 충만한 삶을 산다면 그것이야 말로 일상을 기적으로 느끼며 살아가는 삶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사랑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지난주에 받은 말씀 21장 15절을 통해 주님은 우리에게 그 비결을 알게 해 주십니다.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부활하신 주님은 다시 베드로를 찾아와 그에게 사명을 회복하려 하고 계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베드로에게 자신의 사역을 맡기려고 하십니다. 남아있는 양들을 맡기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예수님의 말씀은 '베드로야! 앞으로 네가 이 사람들을 이끌텐데 이 사람들을 사랑하느냐' 라는 질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묻지 않으시고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라고 물으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그것은 사람들을 섬길 수 있는 힘은 주님을 사랑할 때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할 때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찾아옵니다. 비록 아내에게 불만이 있고, 자녀에게 미움이 생기더라도,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그 주님이 내게 아내를 자녀를 사랑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미움 대신에 가족들을 긍휼히 여길 수도 있고 사랑할 수도 있게 됩니다.

교회라고 해서 다 사랑스러운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스럽지 않은 사람도 참 많습니다. 사랑해서 결혼한 아내조차도 같이 살다 보면 미워지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처음 사역을 시작하면서 교회 내에도 사랑스럽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실망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오늘 본문 15절이 제게 영적 능력을 회복하게 해주었습니다.

우리의 사랑도 내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속한 것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4장 7절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성경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주님에 대한 사랑을 먼저 회복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럴 때 힘든 사람도 품을 수 있는 사랑의 힘이 생깁니다. 이 연말, 주님을 많이 사랑하는 연말이 되도록 해서, 사랑을 회복하고, 일상이 축복의 기적이 되는 삶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해 먼저 좋은 팔로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가정을 잘 이끌어가야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게 됩니다. 일터에서 주어진 조직을 잘 이끌어가야 그 일터에서 인정을 받게 되고, 그 인정을 통해 성취감의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이 잘 이끌어가는 능력을 리더십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좋은 리더십을 가져야 복된 삶을 이루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좋은 리더십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요?

최고의 리더는 예수님입니다. 그 예수님이 우리에게 리더십의 비결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8절~19절입니다. 쉬운성경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세 번째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세 번씩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기 때문에 베드로는 거의 울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께 대답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을 먹여라' 내가 너에게 진리를 말한다. 네가 젊었을 때는 네 혼자 힘으로 옷도 입고 네가 원하는 곳으로 갔지만, 나이가 들게 되면 네가 팔을 벌리겠고 다른 사람이 네게 옷을 입힐 것이며, 다른 사람이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너를 데려갈 것이다".

만약 우리라면 맡기는 양들에 대해 "너에게 맡긴 이들을 좋은 리더십을 발휘해서 잘 이끌어라" 라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대신에 '먼저 나를 따르라' 라고 하셨습니다. He commanded "Follow me". 주님은 제자를 부르실 때 늘 '나를 따르라' 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9장 9절입니다.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또 요한복음 1장 43절입니다.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예수님이 가르쳐주시는 리더십의 비결의 핵심은 '좋은 리더가 되려면 먼저 좋은 팔로워가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가정을 잘 이끌고 일터를 잘 이끌어 일상의 기적으로 가득찬 삶을 살려면 우리는 먼저 팔로십을 가지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성경을 공부하면서 왜 하나님은 모세의 후계자로 여호수아를 택하셨을까 하는 의문을 갖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수아로부터는 특별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정탐 보고 이후에 특별한 점이 그에게는 없었습니다. 그런 의문은 어느날 무심코 여호수아 1장 1절을 묵상하다가 해소되었습니다. 여호수아 1장 1절입니다.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서 보신 것은 하나님의 사람인 모세에 대해 수종자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팔로십을 보십니다. 그 팔로십을 보시고 리더십의 능력과 은혜를 주십니다. 

예수님을 잘 따르는 가장을 가족들이 잘 따릅니다. 이 예수님을 잘 따르려면, 내가 이끄려고 하기 전에 먼저 예수님,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르려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의 이끄심에 귀를 열고 그 이끄심에 잘 따르는 순종의 이 연말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3. 열등의식과 비교의식의 늪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의 불행은 내게 주어진 것에 대한 부족함이 아니라, 나 보다 조금 더 가진 자를 바라보고 비교하거나 열등감을 느낄 때 찾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20절과 21절을 보겠습니다.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이때는 예수님이 베드로를 찾아가서 소명을 회복시키시는 과정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위로와 격려로 베드로는 다시 힘을 얻고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사역을 감당해 가기로 작정을 했던 때였습니다. 그런 회복의 때에 베드로의 눈에 요한의 모습, 마지막 만찬 때 예수님의 품에 안겨있던 요한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명을 회복한 벅찬 상태에서도 자신의 눈을 흐리게 하는 요한을 주목한 것입니다. 비교의식과 열등의식이 가슴 속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이 비교의식과 열등의식은 리더십의 독소입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일침을 가하시며 그 비교의식과 열등의식을 극복하게 하셨습니다. 22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핵심 말씀은 딱 두 가지입니다. ① 이게 너와 무슨 상관이냐? ② 나만 잘 따라오면 된다. 라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이 같은 비교의식과 열등의식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 같은 거인에게도 있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이 의식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것을 조심하지 않으면 조금 앞서 있는 누군가와 비교하며 사는 힘든 삶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의식이 나를 찾아 왔을 때 22절에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주셨던 말씀을 기억하고, 거기로부터 빠져 나와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일상이 복 된 삶의 기적이 되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사역을 위해 처음 지구촌교회로 왔을 때 심한 좌절감을 느끼고, '괜히 왔나'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미 그곳에서 사역을 하고 있는 분들의 스펙이 너무나 짱짱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이 서울대 출신이었고, 어떤 분은 내가 졸업한 학교에서 4년 동안의 평균 학점이 4.5만점에 4.44였던 선배였습니다. 괜히 왔나 싶은 상태에서 1년동안 기도한 기도 제목이 '제게 이곳에 남아 있어야 하는 이유를 달라'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기도 중에 어느날 두 가지 장면을 보게 하셨습니다. 하나는 친구를 졸라서 가 보았던 명동의 거리 모습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시골의 논뚜렁길과 시골시장터 난전의 모습이었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명동거리의 모습에서 뭔가 느낀 것이 있느냐고 질문하셨습니다. 나는 '없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시골 논뚜렁과 난전을 통해 무얼 느낀 것이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나는 '물론 있습니다. 그 논뚜렁에서 열심히 일하시고 힘들어 하셨던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 난전에서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고 애를 쓰는 힘든 사람들의 모습이 느껴집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나는 너의 인생에 그것을 쓰기를 원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멋진 모습의 인테리한 목사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랬던 나에게 이 마음을 주시기 위해 그러셨구나. 내게만의 유니크한 이유가 있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느낌 이 고백을 가지고 목회하는 사람은 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지금까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각자 부르신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각자 만의 고유한 것입니다. 주변 누구와 비교하거나 열등감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각자는 하나님의 유니크한 목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을 기억하고 살아갈 때, 우리는 내게 일상이 기적같이 보이는 참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합니다. 내 삶에 대한 하나님의 고유한 목적을 찾아서 이 연말과 새해를 더욱 복되게 사는 삶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