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전문
[요한복음 9장 1~3절]
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 받은 말씀
어릴 때 즐겨부르던 [실로암]이라는 찬양이 생각이 납니다.
...............................................................................................................
어두운 밤에 캄캄한 밤에 새벽을 찾아 떠난다
종이 울리고 닭이 울어도 내 눈에는 오직 밤이었소
우리가 처음 만난 그때는 차가운 새벽이었소
당신 눈 속에 여명 있음을 나는 느낄 수가 있었소
오 주여 당신께 감사하리라 실로암 내게 주심을
나에게 영원한 이 꿈속에서 깨이지 않게 하소서
2.어두운 밤에 캄캄한 밤에 새벽을 찾아 떠난다
종이 울리고 닭이 울어도 내 눈에는 오직 밤이었소
우리가 처음 만난 그때는 차가운 새벽이었소
주님 맘 속에 사랑있음을 나는 느낄 수가 있었소
오 주여 당신께 감사하리라 실로암 내게 주심을
나에게 영원한 사랑속에서 떠나지 않게 하소서
.............................................................................................................
아마도 오늘 본문 말씀 요한복음 9장의 배경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릴 때 즐겨 부르던 이 찬송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더 그 무게감을 배우게 됩니다. 캄캄한 밤과 같은 인생, 이런 인생 속에서도 이러한 감격과 사랑과 은혜가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의 여섯번째 기적인 이 요한복음 9장이 주는 레슨은 첫째, 우리의 인생의 여정에서 아침종이 울리고 닭이 울려도 여전히 삶의 어둠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 그러한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떠나지 않아야 한다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입니다. 그럼 우리가 실로암과 같은 영적 은혜를 경험하려면...
1. 세상의 소리가 아닌 주님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쪽은 제자들이고 다른 한쪽은 예수님입니다. 제자들은 태어날 때부터 맹인된 사람을 보고는 그가 맹인이 된 것은 누구의 잘못이냐고 합니다. 이들 제자들의 시선은 바로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사람을 바라보면서 그 사람이 맹인된 죄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세상의 아픔을 바라보십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떤 문제를 당하게 되면 이러한 시각으로 쉽게 바라봅니다. 갑자기 암 선고를 받고 힘들어 하는 사람을 바라볼 때도 그가 살아오면서 무언가 잘못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사업을 하다가 실패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가 어떤 잘못을 범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라며 그냥 쉽게 그런 시각으로 바라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문제, 고난을 갖게 되는 이유에 대해 그 사람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 아닐까 하는 시각으로 바라보십니다. 그 고난을 통해 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뜻을 발견하고 이해하고 극복하면 더 큰 복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양진철 목사님은 불교장학금으로 대학공부를 했던 만큼 불교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런 그가 황반변형이라는 병에 걸려 시력이 나빠지고 중도실명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거의 앞을 보지 못할 정도의 장애인에 가깝습니다. 그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시력이 나빠져서 불편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시선이었다고 합니다. 쉽게 얘기하는 사람들의 말에 더 큰 상처를 입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그 분이 친구의 권유로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이러한 고민을 해결하게 해 준 말씀의 은혜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 말씀이 바로 오늘 우리가 묵상하고 있는 이 요한복음 9장이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고난에 빠지게 되면 9장 2절의 귀만 열리고 맙니다. 그래서 감사를 찾기는 커녕 절망의 삶 속으로 떨어집니다. 이처럼 세상의 소리에만 귀를 열고 있으면 좌절 밖에 찾아오지 않습니다. 3절의 귀가 열려야 합니다. 세상의 소리, 세상의 평가에만 갇혀 있으면 3절의 소리, 주의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우리가 실로암의 영적 은혜를 경험하려면 가장 먼저 이 주님의 음성을 듣도록 귀를 열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9장 3절,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이라는 이 말씀을 꼭 붙잡고 나아가는 이 한주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세상의 가치가 아닌 주님의 가치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지금 보다 훨씬 혹독했습니다. 죄인처럼 숨어서 살아야 했습니다. 밖으로 나다니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했던 사회적 분위기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들과 마주치는 것 자체 조차도 꺼림칙하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그 사람에게 직접 진흙을 침으로 이겨서 눈에 발라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이라면 그냥 말로만으로도 낫게 해주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맹인은 앞을 불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어떻게 치료해 주는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친히 정성스럽게 다가가 치료를 하셨습니다.
실로암은 기온샘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전 안에는 기온샘이 있고 밖에는 실로암이 있습니다. 그 둘의 원천은 같고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온샘 만큼 실로암도 신성하게 여겼습니다. 그런 신성한 곳에 죄인 같은 맹인은 절대 발을 들여놓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던 시대였습니다. 그런 그 맹인에게 예수님이 실로암에 가서 눈을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너도 당당하게 그곳으로 가서 그 물을 이용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셨습니다.
왜 일까요? 하나님은 사람들이 업신여기고 기피하는 맹인 조차도 소중하게 여기셨습니다. 그 사람 나름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날 때부터 맹인이라고 해서, 사람들의 업신여김을 받는 천한 사람이라고 해서 가볍게 대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주님의 가치로 우리 인생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자신을 포기하거나 좌절해서는 안됩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서 자신을 버려서는 안됩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소중한 피조물입니다. 그리고 가족과 이웃을 대할 때, 내가 대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 앞에 소중한, 가치 있는 자들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존중하며 더불어 살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어떤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더라도, 실로암의 은혜를 입으며 살아가는 인생이 될 수 있게 됩니다.
3. 구겨진 인생에도 최고의 이야기가 쓰여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만이 삶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많이 배운 사람만이 존경받고 성공하며 사는 것은 아닙니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도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어렵게 커 온 사람들이 성공해서 주요한 사회적 위치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본문의 '날 때부터 맹인된 사람'의 인생도 버려진 인생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환히 볼 수 있는 밝은 눈을 가지는 축복을 얻었습니다. 구겨진 인생이라고 냉대 받고, 숨어 살 듯 했던 그에게도 환한 빛이 잦아들었습니다. 구겨진 인생의 종이 위에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찬란한 이야기를 성경에 남기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영광스런 이야기입니까?
요한복음 9장은 긴 장입니다. 그 긴 한 장을 모두 맹인의 이야기로 남기셨습니다. 거기에는 예수님의 또 다른 깊은 뜻이 있다고 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두 부류의 소경이 있다고 보셨습니다. 하나는 오늘 주시는 본문의 '날 때부터 맹인'인 시각 장애인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겉으로는 멀쩡한 눈을 가졌지만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영적 소경입니다. 바로 바리새인들입니다. 이들이 바로 지금의 세상 사람들의 눈입니다. 이들 바리새인들에게는 아름다운 영적 스토리가 없습니다. 빳빳하고 깨끗해 보였던 그들의 인생에는 오히려 아름다운 스토리가 없고, 구겨진 종이처럼 보였던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의 인생에 오히려 최고의 스토리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스토리를 써 나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상황과 환경이 어떠하든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최고의 스토리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힘들고 지치십니까? 하나님을 만나 아름답고 최고의 인생 이야기를 만들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러려면 오늘 만난 그 맹인처럼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을 소망으로 해서, 실로암의 기적같은 은혜를 만들며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신앙_설교정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231210_설교정리_다시 153의 은혜를 세어 보아라 (요21:3~6) (0) | 2023.12.10 |
---|---|
231203_설교정리_하나님의 말씀에 운명을 거는 자 (요11:39~41) (0) | 2023.12.04 |
231119_설교정리_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요6:16~21) (1) | 2023.11.20 |
231112_설교정리_평안을 통한 희망 (렘29:11~13) 한정원 골퍼 (1) | 2023.11.13 |
231105_설교정리_내 인생의 데스티니를 발견하려면 (엡1:18~19) (0) | 2023.1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