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동기도
① 코로나 변이 비이러스의 확산을 막아주시고 백신의 안정적인 공급이 잘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② 의료적으로 열악한 선교지마다 국제적인 지원과 주님의 보호하심의 은혜가 있게 하옵소서
③ 방학에 들어가는 각 목장마다 주님의 안식과 재충전의 은혜가 있게 하옵소서
○ 말씀전문
[로마서 1장 1절~6절]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 설교요약
순교자의 집안에서 태어나 4대째 신앙생활을 해 온 조은아 교수님의 간증입니다. 교수님은 선교사로 나가기 위해 열심히 준비한 덕분에 드디어 카자흐스탄으로 선교사로 파송되게 되었습니다. 그런 자신을 기특하게 생각하고 있던 차에 그녀는 자기 인생에 두 번째로 분명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은아야 너는 네가 나에게 헌신하며 살았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내가 너를 위해 훨씬 더 헌신했다' 라는 음성이었습니다. 이 음성 앞에서 조은아 교수는 무릎을 꿇고 부끄러워서 펑펑 울었습니다. 그리고 일기장에 이렇게 썼습니다". 이 시가 나중에 찬송이 됩니다.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이 코로나 시기 속에서도 우리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 우리가 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은혜'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 한주 일주일 내내 내 마음을 통해 주님이 나에게 '은혜의 각성'을 떠올리게 하셨습니다. 자꾸만 오늘 본문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잃어버리고 있는 은혜의 영성을 회복하라는 주의 음성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럼 우리가 은혜의 영성을 회복하려면...
1. 귀 뚫린 종 (둘로스)의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1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원문을 보면 "파울로스, 둘로스, 크리스 투이에수스" 라고 되어 있습니다. 바울(파울로스)라는 단어가 맨 먼저 나옵니다. 로마서의 맨 서두를 자기 이름으로 시작합니다. 당시 왕이라면 모르지만 자기 이름을 맨 먼저 내세우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자기 이름을 맨 먼저 내세운 데는 그가 전하고자 하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바울을 제대로 알려면 바울이라 불리기 전에 불렸던 사울을 알아야 합니다. 사울은 유대교에 충실하고 예수 믿는 자들을 박해했던, 예수님의 입장에서 보면 죄인 중의 괴수에 해당하던 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는 사울의 모습을 버리고 바울이 된 것입니다. 바울이란 이름은 그처럼 그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이름입니다.
다음에 나오는 '둘로스'는 종 혹은 노예의 뜻입니다. 당시 종에는 두 종류의 종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귀가 뚫리지 않은 종이고 다른 하나는 귀가 뚫린 종입니다. 당시 어떤 종이라도 7년이 지나면 해방되어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간혹 주인을 너무 사랑하거나 존경하여 평생 그 주인의 종으로 살겠다고 자원하는 종도 있었습니다. 그들에 대해서는 계속 종으로 살아가게 하였으며 그 표식으로 귀를 뚫었습니다. 출애굽기 21장 5절과 6절입니다. "만일 종이 분명히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 자유인이 되지 않겠노라 하면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의 귀를 뚫을 것이라 그는 종신토록 그 상전을 섬기리라" 바울이 말하는 '둘로스' 종이란 바로 이 같이 귀뚫린 종을 의미합니다. 얼마든지 자유롭게 될 수 있지만 예수님을 너무나 사랑해서 스스로 귀가 뚫린 예수님의 종이 되었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 의미를 아는 자가 진정으로 은혜를 아는 사람입니다.
기독교 영성작가 토미 테니가 쓴 책 중에 나오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섬김의 정신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불붙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해보면 "기독교 정신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라 불붙어 되는 것이다". 배워서 하는 섬김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노력하거나 흉내를 내서 하는 것에는 한계가 찾아옵니다. 귀뚫린 은혜가 있을 때 영원합니다.
월요일 아침이면, 또 다시 힘든 일과를 반복해야 하나 하며 힘들게 출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열심히 일할 수 밖에 없다고 배워서 출근하는 사람에게는 그 힘듦에서 헤어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힘든 시기에도 일터를 허락해 주신 감사함, 그 일터로 불러주신 감사함이, 불붙는 은혜가 된 사람에게는 그 출근길이 축복이 됩니다. 주의 은혜가 내 삶의 불붙음이 되어, '나는 너무도 주님을 사랑하기에 귀 뚫린 주님의 종이다'라고 고백하며 살아가시기를 기원합니다.
2. 복음에 대한 감격이 되살아나야 합니다.
로마서와 다른 서신서에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본문 말씀의 2절부터 6절까지에 있는 복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강조했듯이, 지금의 모든 교회들도 십자가 복음을 얘기하고 강조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교회는 없을 덧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교회와 바울의 차이점은 복음에 대한 감격이 있는가 하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주일에 호수공원을 산책하면서 누구나 이름을 들으면 알 수 있는 한 원로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교인 수가 2만 명이 넘는 큰 교회로 부흥시키셔서 이제는 편안하게 목회를 해도 되실 나이이신데도,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복음을 설교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분의 복음에 대한 열정이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분에게는 복음에 대한 남다른 감격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섬김의 정신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라 불붙는 것이다' 라는 말씀을 다르게 표현해 봅니다.
'설교의 정신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라 불붙는 것이다'
'목회의 정신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라 불붙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정신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라 불붙는 것이다'
전도도 은혜의 불이 있을 때 살아 있게 됩니다. 배워서 하는 것은 잠시이고, 일이 되지만, 불이 있으면 은혜가 됩니다. 은혜가 되느냐 되지 않느냐의 결정적인 차이는 감격입니다.
세일 클레이브가 쓴 [믿음은 행동이 증명한다] 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큰 것들을 할 수 없습니다. 다만 큰 사랑으로 작은 일을 할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느냐 하는 게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랑으로 그 일을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천이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가르쳤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기독교적인 것들로 피둥피둥 살이 쪘지만, 영적으로 영양실조에 걸려 있었고, 기독교적인 것들로 짓눌려 있었지만, 여전히 하나님에 대해서 배고파 했습니다.'
얼마나 큰 일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큰 사랑으로 하는가가 중요합니다. 복음에 대한 감격이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큰 사랑으로 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감격, 하나님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감격을 회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나의 나 된 것에 대한 감격이 되살아 나야 합니다
바울은 복음의 감격으로 살아왔습니다. 또한 그는 자신을 사도로 불러주신 감격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역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고 축복합니다. 6절입니다.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영문으로 보면 "you are who you are". 여러분이 여러분 된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이 선물과 부르심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0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난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며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자신이 수고했다고 생각했지만 되돌아 보니 그렇게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드디어 깨닫는다는 고백입니다.
철이 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너도 드디어 철이 들었구나 하는 말을 듣게 됩니다. 지난 주에 같은 날에 두 개의 택배를 받았습니다. 하나는 본가에서 부모님이 보내주신 감자와 양파였고, 다른 하나는 처가에서 보내온 양파였습니다. 수년간 이 맘 때면 보내져 오는 농작물인데 지금껏 그렇게 크게 고마움 없이 그저 그런 마음으로 받았습니다. 헌데 올해는 다소 다른 마음으로 받았습니다. 문득 팔순이 넘어신 아버님이 그 연세에 힘들게 보내주신 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철이 든다고 합니다.
바울도 예수님을 만나고,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복음을 전하면서 신앙의 철이 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던 삶에서 철이 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철이 감격으로 승화시켰습니다. 불러주시고 사도 삼아 주신 것이 은혜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이 주의 은혜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은혜는 은혜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에게 은혜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주의 은혜가 은혜임을 알아야 예배도 은혜가 되고, 일도 은혜가 되고, 숨 쉬는 것 조차도 은혜가 됩니다. 신앙 생활에서 철 들지 못하고 고만 고만 하게만 살아서는 은혜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내가 노력한 것보다, 내가 헌신한 것보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헌신 한 것이 훨씬 컸기에 지금의 내가 나 된 것이라는 그 감격을 회복해야만, 은혜를 아는 철이 들게 됩니다. 내 고집, 내 이기심, 내 엉터리 같은 삶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인내하시고 이끌어주시는 하나님의 헌신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되었다는 것을 감격으로 깨닫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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