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동기도
1. 코로나로 인한 피해들이 최소화 되고 백신의 신속한 공급을 통해 일상이 회복되게 하옵소서
2. 전쟁의 위기에 놓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땅 가운데 전쟁이 그치고 주님의 평화가 있게 하옵소서
3. 신동탄의 모든 사람들이 성령의 말씀 하심 앞에 귀 기울이며 주님의 음성을 듣는 한 주간이 되게 하옵소서
○ 말씀전문
[사무엘상 3장 7절~10절]
7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
8 여호와께서 세 번째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일어나 엘리에게로 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엘리가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고
9 엘리가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하니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
10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니
○ 설교요약
아이는 부모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불안해 합니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자신의 성과를 인정해주는 상사의 말이 없으면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불안해 합니다.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를 소망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이 들린다면, 그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지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사정에 놓여 있는 사람일지라도 거뜬히 참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의 신앙에서 필수요소(에센스)인 이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면...
1.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이유를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을 해주시지 않기 떄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예레미야 7장 13절에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제 너희가 그 모든 일을 행하였으며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새벽부터 말하셨지만 우리가 듣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듣지 못하고 있을까요?
첫째,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3장에서 보면 사무엘도 3번이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는데 내가 어찌 들을 수 있겠는가 하는 의심이 우리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육성을 직접 들을 수 있었던 구약시대가 아닌데, 혹은 세상에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는데 내 신앙심과 같은 수준의 믿음을 가진 자에게까지 하나님이 찾아와 말씀을 해주시겠는가 라는 의심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만듭니다.
둘째, 듣는 훈련을 잘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장 7절에서는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 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부르심에도 제사장 엘리가 부르는 줄 알고 엘리에게로 갔습니다. 그것을 성경은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이 여호와라는 이름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여호와가 계시다는 것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그는 어머니 한나가 기도하여 낳은 자식입니다. 날마다 어머니가 여호와를 부르며 기도하는 일상 속에서 자랐습니다. 그리고 제사장 엘리에게 맡겨졌습니다. 제사장 밑에서 수발드는 자가 여호와를 모를 리 없습니다. 그가 몰랐다는 것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말씀해 주실 수 있다는 것을 아직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 여행을 하려고 할 때, 인터넷을 통해 맛집을 익숙하게 찾습니다. 돈을 굴리기 위해 어떻게 좋은 투자 정보를 입수할지 배우려고 합니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잘 키울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으려고 백방으로 노력합니다. 그런데 정작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 대해서는 배움이나 훈련의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신앙인으로서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답답하고 불행한 것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모세나 사무엘이나 다윗이나 다니엘과 같은 특정한 소수의 사람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아닙니다. 이 시대 목사들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수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도 언제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믿는 자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영적 난청이 되는 것입니다.
2. 주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을 깨달아야 합니다.
목회 초기에 '하나님, 한번만 주님의 말씀을 들려주시면 평생 목회자의 길을 열심히 가겠습니다' 라고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끝내 들려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 고민한 결과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방법을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입니다. "보해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지금도 구약시대에서처럼 하나님이 육체적인 음성으로 들려주실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이 신약시대에서는 성령을 보내주셨고 그 성령이 내 마음 속에 계시면서 내 마음과 생각을 통해 말씀해 주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직접 들려주시는 방법과 성령을 통해 마음이라는 통로로 생각나게 하시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신약의 시대,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보내주신 성령의 시대에는 청각적인 육성보다는 마음의 음성으로 들려주시는 것이 더 보편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마음의 음성을 유기성목사는 [예수님의 사랑] 이라는 책을 통해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집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방안을 온통 어지렵혀 두었습니다. 출타했다가 귀가한 아내가 어질러진 방을 보고는 얼굴만 찡그리고는 아무말도 없이 돌아서서 방문을 닫고 나갔습니다. 우리는 아내가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표정만 보고도 "방 좀 치우세요" 라는 아내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아내의 음성을 듣게 한다는 것입니다.
엘리자베스 자일러가 방 안에서 "주님, 주님이 함께 하심을 보여주소서" 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무심코 창문 쪽을 바라보았더니 창틀에 "함께 가자" 라고 누군가가 붙여준 글귀가 눈에 들어오더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기도를 하다 보면 계속 내 마음에 떠오르는 단어가 있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마음의 떠오름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이 내 마음을 움직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육성이 들리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성령이 전해주시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놓치지 않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입니다.
3. 주님의 음성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마음이 생각하게 하는 것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다 주님의 말씀인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주는 음성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음성도 있지만 마귀가 주는 음성도 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6절에서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처럼 성령의 음성을 듣고 고백했지만, 예수님이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을 것이라는 말씀을 하시자. 22절과 23절에서 "배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처럼 마귀의 음성에 따라 행동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2절에서도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처럼 우리의 마음에 마귀의 음성이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주님의 음성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들리는 음성을 3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① 주님의 음성, ② 사탄의 음성, 그리고 ③ 자아의 음성입니다. 주님의 음성과 사탄의 음성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자존심과 아집에 의해 생기고 들리는 자아의 음성도 있다고 합니다. 이 음성을 분명히 분별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분별되면, 주님의 음성에 대해서는 순종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사탄의 음성이면 가만히 있지말고 대적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자아의 음성이면 '나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함께 죽은 자다' 라고 고백하며 그 자아를 내려 놓아야 합니다.
부부 싸움은 사소한 일에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직장에서의 갈등도 사소한 일에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소한 일, 사소한 말에 내 자존심과 아집의 자아가 나를 부추켜서 갈등의 불을 붙이게 됩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내 자아를 주장하고 상대에게 반론하기 보다는 '내 십자가를 지자'라는 마음을 끌어올려서, 참고 인내해야 합니다. 그러면 부부 싸움도 없어지고, 직장에서의 갈등도 반감됩니다.
나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성령이 주시는 마음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겠다는 방법으로, 그리고 들리는 마음의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인지를 구별하려는 자세로, 주께서 주시는 음성을 듣고, 은혜에는 감사하고, 힘듦에는 희망과 소망으로 나아가는 복된 한주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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