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전문
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 설교요약
1620년 11월 20일 청교도인들이 신대륙인 미국에 상륙했지만 그들은 지식인들로 살아왔기에 농사를 지을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배고픔과 전염병으로 반 이상이 죽어갔습니다. 그때 인디언 추장이 찾아와서 그들에게 농사 짖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가을에 그들은 풍성한 추수를 거두었습니다, 그들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디언들을 초청해서 감사예배를 드렸는데 그것이 추수감사절의 시작입니다. 1863년 링컨 대통령은 이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했습니다. 오늘이 추수감사절입니다. 이 Thanks Giving 마음과 은혜가 우리의 가정과 일터에도 함께 하기를 소망합니다.
감사는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 속에서도 감사가 있음을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이 보여주십니다. 가족처럼 지내던 나사로가 죽은 사건입니다. 나사로의 가족뿐만 아니라 예수님에게도 슬프고 고통스런 일이었습니다. 그런 비극 속에서도 예수님은 '감사하나이다'라고 입을 여셨습니다. 지금은 코로나 시기입니다. 힘들고 고통스런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도 우리는 감사를 회복해야 합니다. 불평은 불행을 가져다 주고, 감사만이 행복을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통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비결을 오늘 예수님을 통해서 배우기를 소망합니다. 그 비결은...
1. 하나님과의 기도의 교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가장으로서의 짐이 너무 무겁게 느껴질 때, 우리는 아무도 없는 강가나 산에 올라가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소리쳐 부릅니다. 너무 힘들다고 죽고 싶다고 웁니다. 그러면 아버지가 마음의 위안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비록 아버지가 살아 돌아오셔서 도와주시지는 못할망정 아버지의 존재는 우리에게 큰 위안이 됩니다.
가족처럼 아끼던, 사역을 하시다가 때때로 들러서 내 집처럼 위로받았던 나사로의 죽음을 놓고,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부릅니다. 41절입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Father, I thank you that you have heard me. 부르심을 들으시는 하나님 아버지, 들으심은 해결해 주신다는 것을 믿는 하나님 아버지가 있다는 것, 부르시면 대답해 주시는 하나님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힘입니까. 기도는 목놓아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는 것입니다. 목놓아 부를 수 있는 아버지 하나님이 있다는 것, 그 하나님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동원 목사님의 둘째 아드님이 미국에서 국제변호사로 일하다가, 대장암으로 인해 43세로 지난 9일 소천을 했습니다. 지난 목요일에 환송예배가 있었는데, 목사님은 아드님에 대한 전성기를, 미국에서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한 때도 아니고, 변호사 일을 시작한 때도 아니며, 소천한 지금이라고 하셨습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주님께 시선을 고정할 수 있었던 때였기 때문이며 그래서 행복했다고 하셨습니다. 고통 속에서도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이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열가지 감사를 고백하셨습니다.
① 아들이 그 지독한 암의 통증에서 해방되어 감사합니다.
② 영광의 나라 천국에 입성하여 감사합니다.
③ 그동안 유머가 많았던 아들을 인해 누린 기쁨을 인해 감사합니다.
④ 단 한 번도 불평 없이 자랑만 하던 아내와 애교덩어리 손자를 남겨주어 감사합니다.
⑤ 어려서 게임을 좋아하더니 게임변호사가 된 것 감사합니다.
⑥ 아들의 고통을 통해 예수님을 내어주신 하늘 아버지의 고통을 알게하심 감사합니다.
⑦ 아들의 암투병을 통해 수많은 암환자의 고통과 연대하게 된 것 감사합니다.
⑧ 또한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수많은 부모들의 고통과 연대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⑨ 아들의 치유를 위해 기도한 수많은 중보 기도자들과 한 지체가 되어 감사합니다.
⑩ 아들이 간 천국을 더 가까이 소망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불평과 불만이 가득한 시기이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하고, 우리가 부를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늘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고 힘들고 지칠 때마다 그 하나님을 부를 수 있었던 것이 예수님이 감사할 수 있었던 이유였습니다. 우리도 힘듦 속에서도 감사하기 위해서는 늘 하나님과의 친밀한 기도의 교제를 쌓아야 합니다. 그것이 비결입니다.
2. 하나님이 하실 일에 대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41절과 42절입니다.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들으신 것, 즉 응답해 주신 것에 감사하며, 들으실 것을 알았나이다. 즉 응답해 주실 것을 확신하고 감사하셨습니다. 우리도 지난 것에 감사하고, 지금 하시는 것에도 감사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응답해 주실 것도 확신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에 대한 기대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도 이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 8절부터 10절입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살고 싶은 소망이 끊어진 자리에서도 하나님이 건지셨고, 건지실 것이며, 이후에도 건지실 것을 믿는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이 우리의 신앙고백이 될 때, 우리는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 감사는 현실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라는 불확정성의 시기에 살고 있습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갑갑함 속에 놓여 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때 우리가 먼저 바라봐야 할 것은 우리가 살아온 과거입니다. 우리가 언제 미래를 보고 살아왔나요? 확신하고 살아왔나요? 꿈도 꿈일 뿐입니다. 우리는 보고, 확신하고 살아온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금까지 잘 살아왔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신실하신 인도하심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이 이후에도 우리를 붙들어서 우리의 소망지로 인도해 주심을 믿는다면 감사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이 이후에도 책임져 주실 것이라는 믿음, 그 기대를 갖는 것이 감사의 비결입니다.
3. 사람들의 믿음과 순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사로의 죽음에 예수님만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의 가족들이 더 절망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40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가족들은 예수님이 오셨다고 해서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수는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믿으면' '보리라' 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보여주면 믿겠다고 합니다. 사업을 잘 되게 해주면 믿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원리는 반대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이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우리의 인생길은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믿고 가는 길입니다.
이 믿음에 더해서 또한 중요한 것이 순종입니다. 38절과 39절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하나님이 나사로를 살리시려면 그냥 굴 안을 보면서 "나사로야 이 돌을 통과해서 일어나 나오너라" 라고 하면 됩니다. 오히려 더 극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돌을 옮겨 놓으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기적을 이루시되 100% 다 혼자 하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몫을 남겨놓으십니다. 그 몫에 순종할 때, 이 순종이 믿음의 역사를 이루게 하십니다.
요한복은 9장 1절부터 3절을 보겠습니다. "①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②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③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2절은 사람들의 소리입니다. 그리고 3절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소리를 듣는 것에서 끝납니다. 그래서 비난이 난무하고,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좌절하기도 합니다. 코로나도 마찬가집니다. 불평과 불만만 가득합니다. 우리가 들어야 할 것은 3절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감사하지 못함은 2절까지만 듣고 멈추기 때문입니다. 3절에서 하시는 주님의 말씀까지 들어야 합니다. 세상의 소리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주님의 뜻과 말씀을 들으려고 애쓰는 것이 감사의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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