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집무실 밖이 꾸모리 하다.
어릴 때 할머니가 이런 날씨를
꾸모리 하다 하셨다.
혹은 새초롬 하다라고도 하셨다
어떤 표현이 표준말인지 모르겠다.
여하튼 난 이런 날씨가 참 싫다.
몸이 으시시 하고 곧 감기가 들 듯 하다.
세상이 미세먼지 속에 싸인 것처럼 희뿌였다.
마음도 꿀꿀 하다.
차라리 눈이라도 펑펑 내리는 게 낫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이런 날씨가 찾아온다.
우리가 이겨내야 할 기분 나쁜 날씨다.
어릴 때는 이런 날씨가 찾아오면
우리는 구들막을 찾아 들었다.
출애굽 때 양의 피를 대문에 바르고
집안에 틀어박혀
죽음이 지나가기를 기다린 것처럼
우리는 이 기분 나쁜 날씨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그러다가 그 꾸모리한 날씨를 뚫고
함박눈이 내리면 이불을 걷어차고 나선다.
눈이 그치기를 채 기다리지 못하고
내리는 눈을 손으로 받아 입안에 털어 넣었다.
하얀 눈이 몸 속까지 씻어 줄 것 같았다.
그리고는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었다.
창원 중앙동 살 때
주택가 2층 전세집 베란다에서
유미와 보미와 함께 만들었던 눈사람이 생각난다.
추위에 얼굴이 얼어서 딱딱해짐도 아랑곳 않고
기쁨으로 만들던 눈사람이었다.
눈이 오면
온 산천이 하얀 색으로 변한다.
한폭의 그림 같다.
형형색색의 물감이 없어서
흰 색 하나로 그린 그림이다.
색깔이 없어서 오히려 더 아름다운 듯 하다.
중고등학교 때 폭설이 내리면
우리는 대밭에서 대를 잘라 죽창을 만들고
평소에 봐 두었던 산 중턱의 토기굴로 향했다.
그리고는 살금살금 굴 윗쪽으로 가서는
'와'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 깜짝 놀란 토끼가 굴에서 튀어 나와
도망을 치려다가
위에서 기다리던 우리를 보고는 산 아래를 향한다.
토끼는 앞발이 짧아서 아래로는 잘 못 뛴다.
그러다가 대굴대굴 구르기가 일수였다.
토끼잡이라고 하지만 우리에겐 늘 빈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다행이다 싶다.
고향이 경상남도라 폭설은 더물었다.
그러다가 겨울 내내 눈 속에서 산 시절이 있다.
바로 군대 시절이다.
내가 근무한 동두천은 겨울 내내 눈이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후배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난 늘 눈치우기부터 했었다.
치워도 또 내리고 치워도 또 내렸지만
그래도 눈치우기를 계속했었다.
그리고 회사에 취업했을 때도
눈이 오면 새벽 일찍 비상이 걸려서
다른 사람들 출근하기 전에 치웠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어지간한 회사들도
차량을 이용해서 눈을 치우지만
오래 전에는 눈삽과 빗자루로 다 치웠었다.
고향에서 눈이 오면
가장 힘든 분이 아버지셨다.
집 뒤 대밭에 올라가 대를 흔드셨다.
대나무가 눈의 무게로 인해 부러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네 입구까지 가셔서
비닐 하우스 위의 눈을 걷어 내리셔야 했다.
나이가 들면서 눈을 보면
그 아름다움을 즐기기 이전에
녹기까지의 질퍽함을 생각하며 귀찮아 한다.
그리고 차량 바퀴에 튀어서
차량을 더렵히는 귀찮음을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는 귀찮음 보다는
하나님이 주신 자연의 선물로 여기고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감사해 하고자 한다.
그리고 지금의 우중충 함도
깨끗하고 아름다운 눈을 내리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전령으로 보낸 날씨라 생각하고자 한다.
그러면 이러한 날씨도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