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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04_장날

서정원 (JELOME) 2018. 12. 4. 12:49

진주 서부시장의 장날은 2일과 7일이다.

소위 5일장이라고 한다.

장날 바로 앞날의 오후가 되면

아버지는 마을 건너편 솔밭에서 끍어 내린

나뭇짐을 지게로 타작마당으로 져 나르셨다.

장날 시장에 내다 팔려고 준비하셨던 것이다.

솔잎 낙엽을 밖으로 오게 해서 갈퀴로  장을 치고

아랫부분부터 차곡차곡 쟁여서 나뭇짐을 만들었다.

한 짐이 만들어지면 우리 형제들은

그 나뭇짐 사이에 들어있는 잡풀들을 뽑아내었다.

그렇게 해서 네 짐을 만들면 리어카에 싣는다.

가을이 짙어지고 겨울이 다가오는 이 시절이었다.

그렇게 준비해서 시장에 내어다 판 돈으로

내 중학교 통학용 자전거도 마련해 주셨었다.

그렇게 한푼 두푼 모은 돈으로 우리를 키우셨다.

우리는 솔잎 낙엽을 갈비라고 불렀었다.

갈비로 된 땔감은 불담이 아주 좋다.

그것으로 피운 재도 훨씬 오래가서

군고무마를 구워먹는데도 아주 좋았었다.



장날 앞날엔 어머니도 바쁘셨다.

비탈밭 끄트머리에 남아 있는 시금치를 뽑고

김장하고 듬성듬성 남아 있던 무도 뽑고

며칠 전에 따서 윗채 마루 밑에 재어 두었던

호박들 속에서 보고 좋은 놈들을 골라서는

시금치랑 무랑 호박을 큰 다라이에 담아

다음 날 시장에 내다 팔 준비를 하셨었다.

그래서 장만 한 돈으로 오랜만에 고등어도 사고

자녀들의 겨울 나기를 위한 양말도 준비하셨다.

장날이 되면 여인들은 내다 팔 물건들을 머리에 이고

신장로로 나가 먼지를 풍기며 달려올 버스를 기다렸다.

장날은 시골 사람들의 잔치날이다.

장날은 시골 사람들의 콧바람 쐬는 날이다.

밋밋한 삶에 변화를 주는 즐거운 날이다.

그래서 서부시장은 장날이면 늘 붐볐다.

진주에 나와 공부를 하던 시절 토요일이기라도 하면

일찍 수업을 끝내고 어머니를 보러 시장통으로 가곤 했다.

시금치 한단에 5원 더 붙여달라고 실갱이 하다가

내가 다가가면 부끄러운 듯 줘버리시던 어머니

그리곤 허리춤에 꼬깃꼬깃 넣어 두었던 지폐를 갖고

시장통 중국집으로 날 대려가서는 짬봉을 사주셨다.

늘 하시는 말씀 '해물 좀 넉넉하게 넣어주이소.

우리 아 공부한다고 살이 마이 빠져서.....'

그러시고는 내 먹는 모습을 흐뭇한 듯 바라보고 계셨었다.



시골 5일장 장날은 사람들에게 휴식을 주는 날이었다.

삶의 변화를 주는 날이었고 해방감을 주는 날이었다.



큰딸이 아이를 키운다고 집에 틀어박혀 있으니 답답한가 보다.

그래서 작은 딸아이가 주말에라도 카페라도 같이 가주려고

격주마다 내려온단다.

언니를 생각하는 동생의 마음이 참 따스하고 갸륵하다.

격주지만 한번씩 콧바람을 쏘이는 그 삶이

큰 아이의 휴식의 날이요

삶의 변화의 날, 해방감을 주는 날이 되었음 좋겠다.

사람 사는 것이 별 것인가?

바쁨과 부족함 속에서도

한그릇 짬봉을 앞에 놓고 흐뭇함으로 살면 되는 것 아닌가?

그 시절 아버지 어머니의 삶을 즐기는 여유를

이제라도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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