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전문
[요한복음 6장 3절~6절]
3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4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 받은 말씀
오늘 주시는 말씀을 함께 나누기 전에, 좀 전에 함께 불렀던 찬양의 가사를 한번 더 음미하고 시작했습니다. 찬양은 '날이 저물어 갈 때'입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의 핵심이 이 찬양에 다 녹아있는 듯 합니다.
날이 저물어갈 때 빈 들에서 걸을 때
그 때가 하나님의 때
내 힘으로 안될 때 빈 손으로 걸을 때
내가 고백해 여호와 이레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주께 아끼지 않는 자에게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신뢰하며 걷는 자에게
우리 모인 이 곳에 주님 함께 계시네
누리네 아버지 은혜
적은 떡과 물고기 내 모든걸 드릴 때
모두 고백해 여호와 이레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주께 아끼지 않는 자에게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신뢰하며 걷는 자에게
오늘 주시는 말씀은 예수님의 네번째 기적,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이 말씀을 주신 데는 지금의 환경적, 시기적 상황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코로나가 지나간 이후 Post 코로나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할지 헤매고 있습니다. 그리고 2023년 한해가 막바지를 향해 저물어가는 이 시기에 여전히 빈손처럼 여겨지는 우리의 허전함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함이라고 믿습니다.
그럼 이러한 때 우리에게 다시 시작하라 하시는 말씀은...
1. 나의 믿음이 여전히 잘 작동하고 있는지 점검하라.
오늘 본문의 기적에 대해 예수님은 군중들이 먹을 것이 없다는 것도, 또 어떻게 먹이실 것인지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5절과 6절입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곧장 기적을 행하시지 않으시고 빌립에게 묻습니다. 빌립을 시험하시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시험은 단지 테스트가 아니라, 가르침이고, 훈련이고, 연단입니다. 그럼 예수님은 빌립에게 무엇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이었을까요?
그것은 빌립이 아직도 세상적 능력에만 빠져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시려는 것입니다. 이 기적이 일어난 시기는 세번째 기적인 베데스다 연못의 기적 직후입니다. 1절입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그 후라는 것이 바로 베데스다 연목의 기적을 말합니다. 바로 직전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세상적인 눈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빌립은 예수님의 질문에 따라 휙 한번 둘러보고는 이 사람들을 먹여살리려면 적어도 200 데나리온이 필요하다고 대답했습니다. 한 데마리온은 장정 한명의 하루 품싻에 해당됩니다. 지금의 돈으로 환산하면 4,000만원 정도 됩니다. 그는 계산이 아주 빠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금전 베데스다에서 보여주신 예수님의 기적의 능력을 계산에 번영하지 못했습니다. 이미 그의 머리속에서 믿음이 사라졌던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가 아닌지 점검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수많은 은혜를 경험하며 신앙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고난이나 어려움 앞에 서게 되면 언제 그랬냐 싶을만큼 그 믿음이 온데간데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남의 문제 앞에서는 스스럼 없이 믿음으로 헤쳐나가라고 충고하지만, 정작 내 문제가 되면, 우리 가정의 문제, 내 자식의 문제가 되면 곧장 믿음으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세상적 눈과 방법을 먼저 생각하고 거기에 집착하게 됩니다.
목회자로서의 삶을 살면서 자녀들에게 크게 관심을 가져주지 못했습니다. 큰 아이가 대학 수능시험에서 면접을 보게 되었을 때 일입니다. 간만에 아버지로서의 의무를 해야겠다 싶어서 대전까지 아이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너뎃시간 동안 정문 앞에서 기도를 했습니다. 첫 면접을 보고 나온 아이의 얼굴이 어두웠습니다. 평소 일본어에 자신이 있어서 자기 소개를 일본말로 준비를 해서 갔습니다. 그리고 일본어로 자기 소개를 했습니다. 그런데 면접관이 일본어를 잘 하네 하면서 다음은 영어로 자기 소개를 해보라고 해서, 큰 아이가 많이 당황스러웠나 봅니다. 과정이야 어떻든 6군데 면접을 봤는데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 계속 낙방을 했습니다. 그러자 내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하고 재수를 시켜야 하나, 학원을 알아봐야 하는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찼습니다. 결국 최종적으로 면접을 본 대학에 합격을 했지만, 면접이 다 끝나고 난 후 영성일기를 쓰는데 내 자신이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동안 목회자로서 믿음, 믿음 하면서 설교도 하고 격려도 했는데, 그것이 내 문제가 되자 믿음으로 나아가질 못하구나 싶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다른 사람에 대해 아멘이면, 내 문제에서도 아멘이 되어야 합니다. 삶과 믿음의 톱니바퀴가 잘 조화되어 굴러가야 합니다. 삶의 톱니바퀴가 오늘도 믿음의 톱니바퀴와 함께 잘 맞추어져서 돌아가는지 점검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만 빈들에서 걷는 것 같았던 삶에서도 기적이 다가옵니다.
2. 나의 오병이어를 내어드려라.
오병이어의 기적은 4대 복음서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묵상하는 요한복음의 기록에는 특별한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기적에는 보리떡 세 개와 물고기 두 개를 내어드린 아이의 헌신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8절과 9절입니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예수님이 일으키신 기적의 이면에는 이 아이의 헌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아이의 손에 그대로 있었다면 그 아이의 한 끼 식사에 그쳤겠지만, 이 헌신으로 인해 오천명을 먹여살리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능력과 소유물이 우리 손에 있으면 하찮은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예수님의 손으로 옮겨지면 놀라운 능력의 단초가 됩니다.
지구촌교회에 있을 때, 한 집사님이 하셨던 간증이 늘 잊혀지지 않습니다. 서울에서 미용실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던 집사님은 동백지역에 자기 미용실을 개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미용이 너무 잘 되는 것이었습니다. 서울에 사시는 유명한 목사님도 그 미용실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집사님의 간증은 이렇습니다.
미용실을 개업하고 나서 홍보를 하기 위해 고민을 하다가, 신문을 배달 할 때 신문지와 함께 끼워서 배달하는 광고 전단지를 만들어 홍보를 하기로 하고는 초안을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그때 마침 권사이신 친정 어머니가 딸 집에 왔다가 이 모습을 듣고는 '사람에게만 광고하지 말고 하나님에게 광고해 봐라' 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그런 엄마의 충고에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핀찬을 해서 보냈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의 그 충고가 자꾸만 귀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광고 전단지를 가지고 열심히 기도하며 하나님의 손에 맡겼다고 합니다. 그런 후 그 집사님의 말을 빌리면 '하나님이 빗자루로 쓸어보내시듯 고객을 보내주셨다'고 했습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하나님의 손에 올려놓은 그녀의 내어드림이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을 일으킨 것 아닌가 싶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에는 원칙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알아서 모든 것을 다하시지 않습니다. 반드시 우리의 몫을 남겨두십니다. 물이 포도주가 되게 하신 기적에서도 하인들의 몫이 있었고, 베데스다 연못의 기적에서도 매트를 들고가야 하는 병자의 몫이 있었습니다. 오늘의 이 오병이어의 기적에도 물론 아이의 도시락 헌신이 있었습니다.
기적은 하나님이 일으키시지만 반드시 하나님 스스로 혼자서 이루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해서 일으키십니다. 우리의 삶을 보고 행하십니다. 그로므로 우리는 견디기 어려운 문제 앞에서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란다면 우리가 내어 헌신할 것이 무엇인지 살피고 내어 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빈들에서 걷는 것 같은 삶에서도 기적을 경험하는 복된 삶이 될 것입니다.
3. 그림자를 옮기려 하지 말고 본체를 옮기라.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림자를 열심히 옮기려고 발버둥치는 사람과 본체를 옮기려고 애를 쓰는 사람입니다. 그림자를 옮기는 방법은 그 그림자를 아무리 묶어 옮기려해도 안됩니다. 그 그림자를 이루는 본체를 옮겨야만 옮겨집니다. 당연한 말 같지만 애썩하게도 그림자를 옮기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어리석은 모습은 무엇이 그림자이고 무엇이 본체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그림자란 우리의 눈으로 보이는 세상의 것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보는 세상의 모습은 실제는 그 본체가 카이로스의 시공간에 있고, 이곳 크로노스에서 보이는 것은 카이로스에 있는 그것의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보이는 것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빌립이 바라본 본문의 모습은 땅에 앉아 있는 오천명의 무리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먹이려면 4,000만원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빌립이 바라본 그림자입니다. 그 문제를 해결할 문제의 본체는 하늘에 있습니다. 그 하늘의 본체를 움직여야만 오천명을 먹여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카이로스 시공간에 있는 본체를 어떻게 옮길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그것을 오늘의 요한복음 11절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기적 이전에, 나누어주기 보이시는 것이 바로 기도였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면서도, 그 실체를 움직이는 키가 기도임도 분명히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 그림자이고 무엇이 실체인지를 깨닫는 분별력입니다. 내가 부딪히고 있는 질병, 사업에서의 적자, 자녀문제, 이런 것들이 실체인 것처럼 봅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본체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근본이 되는 본체를 옮기도록 눈을 돌려야 합니다.
삶을 노래하는 작곡가 장진숙님의 간증입니다. 중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 시절에 걸쳐 그녀의 아버지는 심한 투병생활을 해야 했기에 가정형편이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그러다가 대학교에 입학 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어머니는 스무살이 되면 더 이상 경제적 지원, 잡비까지도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어느날 그녀는 자기 통장에 잔고가 5,000원 밖에 없는 것을 보고 그것을 인출해서 귀가하면서 '20만원만 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기적 같게도 노래레슨이 들어왔고, 그 레슨비가 딱 20만원이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그것은 우연이겠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녀는 공부를 더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형편이 되지 못하자 모든 것은 부모님이 자기를 뒷받침 해주지 못해서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얼 해서 돈을 버나 싶어서 벼룩시장 광고까지 열심히 뒤졌지만 그 작은 일터 면접에도 다 떨어졌습니다. 그런 암담한 그녀에게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무심코 들려왔습니다. '넌 왜 옛날 20만원 필요했을 때 그 방법을 안쓰냐?' 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도 과거의 그 일이 우연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손해볼 것 없다며 '40만원이 필요한데 달라'고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40원짜리 레슨이 또 들어왔습니다.
그제서야 그녀는 그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만큼 공부를 할 수 없었던 것은 부모님이 지원을 안 해줘서 라고 생각했었는데, 돈은 부모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고 간증했습니다. 이 눈이 열려지면서 그녀의 삶의 형태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현실이 실체인 것이 아니라 믿음이 실체이요 그 믿음으로 실체를 옮겨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둡고 무거운 일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나요? 그것이 내가 움직여야 하는 실체처럼 버티고 있나요? 그 일, 그 바위를 바라보고 좌절할 것이 아니라, 실체를 바라보고 그 실체를 옮기려는 마음을 갖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는 빈손이 아니라 축복이 가득하고 기쁨이 가득한 삶을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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