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전문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 받은말씀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세번째 기적을 기록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바로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간이나 연못 물이 움직이면 남보다 먼저 내려가서 병을 치료하려고 했던 한 병자가 예수님을 만나 치유의 기적을 받는 내용입니다.
베데스다는 자비, 혹은 긍휼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정작 그곳에는 연못물이 움직일 때 서로 먼저 내려가서 병을 낫게 하고자 하는 치열한 경쟁만이 존재하는 곳이었습니다. 자비의 베데스다에는 정작 자비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세번째 이적을 드러내시기 위해 왜 이곳 베데스다를 택하셨을까? 그것은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삶의 현장과 유사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더불어 살아가면 충분히 아름답고 행복한 세상일 텐데, 우리는 약육강식의 치열한 경쟁만을 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히려 동물의 세계보다도 더 치열한 싸움을 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자비가 매말라버린 이 세상에서도 우리가 베데스다에서의 이적과 같은 기적을 경험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
1. 영적인 시공간의 게이트(문)를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는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이 참 많습니다. 지난해 회사 근처에서 따 온 싸리나무 씨앗을 정원에 심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꽃을 심을 공간도 좁아 아쉬운 비좁은 정원에 쓸데없이 흔하디 흔한 싸리나무를 심느냐며 모두 뽑아버리고 두 그루만 남겼습니다. 그런데 그 싸리나무가 가을이 되자 붉은 색으로 정원을 아름답게 장식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본 아내가 내년에는 정원 테두리를 쭉 둘러서 싸리나무를 심어야겠다고 했습니다. 싸리나무가 이렇게 아름다운 색깔을 드러내는지 몰랐다는 것이었습니다.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어가는 가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단풍구경을 가려고 벼르고 있습니다. 여름 내내 푸른 색으로 덮여있던 나뭇잎들이, 우리가 어떤 색이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색깔로 물들어 갑니다. 이런 색깔이 있었나 싶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해마다 접하는 산천초목으로부터도 미처 몰랐던 것들을 새롭게 보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이 참 많습니다.
물이 움직일 때, 가장 먼저 들어가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병이든 낫게 된다는 신화가 전해 내려오던 그 베데스다 연못으로 예수님이 가신 것은, 그 신화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알지 못하는 영적 시공간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려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에게 영적 시공간의 그림자를 보여주시고자 함이라 믿습니다.
영적 시공간을 뚜렷이 본 사람이 성경에 있습니다. 바로 야곱입니다. 그는 형을 피해 외삼촌 댁으로 가는 도중, 벧엘에서 그 시공간을 뚜렷이 봤습니다. 창세기 28장 12절과 13절입니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그리고 이 시공간을 본 야곱은 16절과 17절에서 처럼 고백합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그가 바라본 것은 바로 '하늘의 문'이었습니다. 야곱이 야곱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영적 시공간의 게이트, 즉 하늘 문을 보는 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뒤에 외삼촌 댁으로부터 돌아오던 야곱은 그 벧엘에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를 지냈습니다. 이 제단이 그 이후 하나님의 성전의 모형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가 바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영적인 문이 됩니다.
우리가 자비가 없는 베데스다 같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기적같은 은혜를 경험하려면 우리에게도 영적인 시공간을 열 수 있는 게이트가 있다는 것을 알고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예배가 바로 그 게이트가 된다는 것도 알고, 아름다운 예배를 통해 하늘 문을 여는 기회의 은혜를 맛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카이로스 시공간의 역사(役事)를 사모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이 세상의 원리가 있습니다. 하루는 24시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또한 일년은 12개월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바로 이 세상의 원리입니다. 그렇다면 카이로스의 시공간이 크로노스의 시공간을 터치 할 때는 카이로스 시공간, 즉 하나님의 시공간의 원리도 이땅에 임하지 않겠습니까? 그때는 이 땅의 원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그것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예수님을 만난 병자는 28년간이 베데스타 연못가에서 누군가 자신을 연못에 먼저 옮겨줄 사람을 기다렸습니다. 자기 스스로 움직일 수는 있지만 병 때문에 남보다 먼저 연못으로 내려갈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남보다 먼저 내려갈 수도 없고, 자기를 데려다 줄 자비로운 사람이 없다는 것을 수없이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만나, 카이로스 시공간의 기적을 경험하게 되자 그의 병은 순식간에 나았습니다. 28년 동안 경험하고 자포자기 수준으로까지 치달았던 이 땅의 원리가 순식간에 깨어졌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일에 대해 자포자기 하는 사람도 있고, 언젠가는 이루어지겠지 그리고 그 일이 이루어지려면 내 생애에는 안되더라도 내 후손의 때에는 이루어지겠지 하며 우직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오직 이 세상의 원리만 믿고 그 원리에 따라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카이로스의 시공간이 이 세상을 터치하면 이 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원리가 임하게 됩니다. 1~200년이 걸릴 일도 하나님의 시간이 임하면 하루에도 이루어지게 됩니다. 유다 백성들이 수천년에 걸쳐 갈망하던 구원 사역이 예수님의 십자가로 한순간에 이루어졌듯 말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얘기해 주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8절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한 후배 목사가 지방 소도시에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선후배들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걱정을 했지만, 1년만에 300명이 넘는 부흥을 이루었습니다. 일주년 기념 예배에서 축복 설교를 하시는 다른 목사님이 "10년에 걸쳐야 겨우 이룰 수 있는 부흥을 1년만에 이루셨다"며 축하하셨습니다. 그 축하 말씀을 들으면서 베드로후서 3장 8절의 말씀이 그제서야 뚜렷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하나님의 시간과 원리가 작동하는 영적인 은혜가 있기를 축원하며, 그 소망을 갖고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
3. 그 위대한 게이트는 바로 우리(나)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만 만나면 만사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그의 소망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성전을 짓는 꿈을 꾸었고, 아들인 솔로몬 왕이 그 꿈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그 성전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그 휘장이 찢어졌고, 그것은 바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었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이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입니다. "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예수님이 하늘 문을 여는 게이트이고 그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그 게이트를 열 수 있는 키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키를 가진 우리는 이 게이트를 어떻게 열 수 있을까요? 본문 6절부터 8절의 내용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두 가지 단어를 유심히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는 '네가 낫고자 하느냐' 입니다. 당연한 질문 같지만 이 질문에 답이 있습니다. 내가 믿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네 자리를 들고 걸아가라'라는 말입니다. 역사는 말씀을 믿음으로 취했을 때 일어납니다. 38년 동안 '안되구나' 라는 생각을 수없이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취했습니다.
이 믿음이 바로 영적 게이트를 여는 기적의 순간이 됩니다. [카이로스] 책에는 카이로스의 역사를 이루는 3가지 조건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① 믿음의 말
② 믿음의 생각
④ 믿음의 행동
부정적인 삶을 이 기적을 절대 경험할 수 없습니다. 민수기 14장 28절입니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 참으로 충격적인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행한다고 하십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말을 함부로 하겠습니까? 은혜가 은혜를 끌어당긴다고 합니다.
우리는 늘 믿음의 말, 믿음의 생각, 믿음의 행동으로, 사면이 꽉 막힌 곳이더라도, 하늘 문을 소망하는 삶을 살아,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도 하늘의 원리가 일어나는 승리의 삶을 살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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