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20717_설교정리_내가 만든 신(6) 편리(편의)주의 (레10:1~3)

서정원 (JELOME) 2022. 7. 17. 09:56

○ 말씀전문

1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2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3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르시기를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겠고 온 백성 앞에서 내 영광을 나타내리라 하셨느니라 아론이 잠잠하니

 

○ 설교요약

한국 목사님들의 목회에 큰 영향을 준 팀켈러 목사님이 쓴 [팀켈러의 설교] 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설교를 할 때 유념해야 할 두 가지로, 첫째, 마음에 닿게 그리스도를 설교하라.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 Emotion, 즉 감동을 받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Affection, 즉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영향력을 주도록 설교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 속마음이 변할 때 비로소 인생이 변하게 됨을 일깨워주는 말씀입니다. 둘째는, 몸담고 있는 문화를 깨뜨리도록 그리스도를 설교하라. 사람들은 호도 알맹이 같은 딱딱한 문화의 틀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 깨어야만 기존의 틀이 튕겨져 나갈 수 있습니다. 그 틀을 깰 수 있도록 설교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설교 말씀을 듣고는 은혜로웠다고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삶의 변화가 없고 신앙도 제자리 걸음을 합니다. 그것은 속마음에까지 영향력을 주지 못했고, 딱딱한 문화의 우상을 깨뜨려주지 못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가 깨뜨려야 할 우상 같은 문화는 무엇일까요?

 

1. 편리주의, 편의주의의 우상입니다.

포스트 모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편리주의를 추구합니다. 휴대폰을 살 때도 쓰기 편한가를 봅니다. 그러다 보니 일상 생활뿐만 아니라 신앙도 편하게 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온라인 예배를 드릴 수 밖에 없었는데 아직도 그 온라인 예배의 편리함이라는 유혹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편리한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편리주의가 우상이 되어, 그러지 않아야 할 일에도 편한 것만 찾는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편리함을 쫒은 자를 정죄하고 있습니다. 나답과 아비후입니다. 그들은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은 예배를 드릴 때, 번제단의 불을 가져다가 향로에 불을 붙여야 합니다. 번제단의 불을 얻으려면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수고를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같은 수고가 번거롭다며 그냥 집에서 사용하던 불을 가져다가 향로에 불을 붙였습니다. 그로 인해 그들은 죽임을 당합니다. 그들이 왜 죽게 되었을까요?

첫째, 그들은 거룩하지 못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정결하지 못한 불을 그냥 사용했다는 것은, 그들이 비단 불 만이 아니라 삶도 정결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정결하고 거룩하여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제사장으로서의 자격이 없습니다. 둘째, 그들은 신앙에서도 편리주의를 택했습니다. 그들은 아론의 자식들입니다. 늘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며 자랐습니다. 아버지를 통해 그 모습을 닮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절차를 거치며 제사를 지내는 아버지를 보면서 왜 저렇게 낭비를 하며 살까 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 다움을 갖지 못했습니다. 제사장은 제사장 다워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편하게 드리려 해서는 안됩니다. 불편하더라도 최선을 다해 드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몸에 베인 편리주의 라는 우상을 깨뜨려야한 합니다. 

'되는 것 보다 다운 것'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장가를 가면 남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남편다운 남편이 되는 것입니다. 장가가서 자식을 낳으면 아버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빠가 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빠다운 아빠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나가면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성도다운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도 도전이지만, 그리스도다운 삶을 사는 것은 또 다른 도전이요 싸움입니다. 그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편리주의, 편의주의를 떨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편리주의를 극복하고 진정한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 

 

2. 실용주의 우상을 조심해야 합니다.

'실용적이다'라는 것은 좋은 것이고 중요한 것입니다. 군더더기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 실용주의도 모든 것에 다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 특히 교회 교인에게 적용해서는 안됩니다. 누군가 교회에 새로 오면, 목사 중에는, 혹은 먼저 와서 섬기고 있는 사람 중에는, '이 사람이 우리 교회에 도움이 되는가?' 라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같은 시각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볼 때 이같은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실로암 사건을 봅시다. 요한복음 9장 1절입니다.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길을 가다가 한 맹인을 유심히 바라보셨습니다. 그 맹인이 예수님의 사역에 도움이 될 것인가를 보신 것이 아닙니다. 맹인이란 사회적 관점에서 보면 전혀 가치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시고 진흙으로 치료를 하시곤,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가?  사회적으로 쓸모 없으면 마치 죄인인 것처럼 살아가는 시대,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녀에게 학비를 충분히 대 주지 못하는 부모는 마치 죄인이 된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직장에서 능력이 없다고 질책을 받으면 그 직장에서 전혀 쓸모 없는 죄인처럼 여기며 삽니다. 명절이 되어 부모님에게 제대로 된 선물이라도 드리지 못하면 마치 죄인 된 기분으로 살아갑니다. 이런 우리를 불러주신 예수님입니다.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여기는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을 메시지 성경에서는 "그러나 우리가 아직 쓸모없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다른 성경에서는 '죄인되었을 때에' 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메시지 성경에서는 '쓸모없을 때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no use whatever to him. 하나님은 우리가 쓸모가 있어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쓸모없을 때 부르시고 찾아오시고 손을 내미셨습니다. 우리도 내 인생에 도움이 되는 사람인가로만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비록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손을 내밀고 만나주고 보살펴주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는 실용주의 라는 단단한 문화의 틀을 깰 수 있어야 합니다. 

 

3. 세속주의의 우상을 조심해야 합니다. 

편리가 진리인 세상, 실용적인 것이 진리인 것처럼 여기며 사는 세상 속에 있습니다. 편리주의, 편의주의, 실용주의, 이들을 통틀어 새상주의적인 가치관 이라 할 수 있고, 쉽게 세속주의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이치를 중시하는 가치관입니다. 

원래 세상이라는 뜻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세상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적 가치관의 지배를 받고 있는 그 세상을 말합니다. 요한일서 2장 15절과 16절이 말하는 그 세상을 말합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말하며 이 시대 우리가 도전해야 하는 대상을 말합니다. 

최근, 신학교에서 있은 세미나에 참석을 했었습니다. 교수님이 주제를 발제하고 참석한 목회자가 설교를 한 후, 학생들의  코멘트나 질문을 받아 토론하는 세미나였습니다. 질문 시간에 질문이 없자 교수님이 만원짜리 한 장을 꺼내어, 질문을 하는 사람에게 그 만원짜리를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한 사람이 질문을 하고 그 돈을 받아갔습니다. 다시 질문이 없자 교수님은 이번엔 5만원짜리 한 장을 꺼집어 내셨습니다. 그러자 여기 저기 질문하려는 사람들이 쇄도했습니다. 그 교수님의 의도는 웃자고 했던 일이었지만, 그것을 보고 있는 내 마음은 불편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장차 목회자로 나갈 그들에게 돈이면 다 된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주지 않을까 해서였습니다. 

세속주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깊숙히 들어와 있습니다. 얼마전에 한 권사님과 상담을 했었습니다. 그 권사님은 따님의 신랑감에 대해 말씀을 하셨는데, 학벌과 재산 등을 살펴보니 괜찮은 사람으로 보인다며, 그런데 문제는 사주와 궁합이 자기 딸과 좋지를 않아서 걱정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당황스런 상담이었지만, 이런 세속주의가 우리 그리스도인 속에도 얼마나 깊이 들어와 있고, 그것을 끊어내지를 못하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조셉 마테라 목사님은 세속화된 신앙인의 10가지 특징을 다음과 같이 나타내셨습니다.

①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② 하나님 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더 의식한다

③ 성경에 이끌리지 않고 돈에 이끌린다

④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관계를 목적으로 예배에 참석한다

⑤ 대중문화가 추구하는 가치를 따른다

⑥ 하나님은 인생의 일부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⑦ 하나님을 추구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

⑧ 다른 이들에게 복음의 영향력을 미치지 않고 전도도 하지 않는다

⑨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지 않고, 제자 삼지도 않는다

⑩ 재정에 있어서 성경적 청지기 정신을 가지고 있지 않다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우리가 한번쯤 곰씹어 봐야 할 대목입니다. 

한국을 자주 다녀가신 유럽의 한 목사님은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셋 밖에 모른다고 하시며, 그것은 첫째, 말로는 하나님을 가장 많이 얘기 하면서도, 둘째, 실상은 항상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고, 셋째, 항상 돈만 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부끄러운 치부를 보인 것 같아 얼굴이 뜨거워졌습니다. 

로마서 12장 2절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세속주의가 판을 치는 이 시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로 서고 승리하려면, 이 말씀을 꼭 붙들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여 다시 바로 서는 이 한주가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