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10207_설교정리_내 인생이 풍랑 가운데 있을 때

서정원 (JELOME) 2021. 2. 7. 13:33

○ 말씀전문

[요한복음 6장 16~21]

16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17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18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19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20 이르시되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대

21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 설교말씀 요약

존 웨슬레는 1735년 10월 14일 시몬즈 호를 타고 아메리카 선교 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우르르 쿵쾅!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불었습니다. 뱃전을 깨드릴 듯이 부딪쳐 오는 험한 파도는 선실 낮은 천정을 타고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는 웨슬레의 가슴을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웨슬레의 몸은 바닷물 말고도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습니다. 신대륙의 인디안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겠다는 소망을 안고 항해에 나선 시몬즈 호는 일엽편주처럼 성난 파도 위에서 뛰놀았습니다. 영국인들 선실은 아비규환의 수라장이 되고 이미 배의 제일 큰 돛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이리저리 흔들거리는 불 꺼진 등 사이로 칠흙 같은 하늘과 눈 덮인 산처럼 육중하고 거대한 파도가 무리지어 덮쳐오는 것이 언뜻언뜻 비쳤습니다. 웨슬레는 엄습해 오는 두려움을 주체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 사이로 어디선가 찬송가 부르는 소리가 가늘게 들려왔습니다. 웨슬레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기둥에 부딪혀 생긴 팔의 상처가 선명하듯 그 노랫소리 또한 확실히 옆 선실에서 울려나오고 있었습니다. 웨슬레는 가까스로 몸을 움직여 옆 선실로 가보았습니다. 방 안을 둘러본 그는 순간 발을 헛딛어 넘어질 뻔했습니다. 26명의 모라비아 교도들은 서서히 물이 차오르고 있는 상황도 아랑곳하지 않고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한 사람을 붙들고 물었습니다.
“무섭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죠! 하나도 무섭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인네들과 어린애들은 무서워할 게 아니겠소.”
“아니요! 우린 비록 아녀자라도 죽는 것은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웨슬레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자신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이제까지는 한 번도 듣지 못할 일이었던 것입니다. 웨슬레는 다시금 시몬즈 호를 타게 된 목적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메도디스트(Methodist)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로 경건과 절제와 선행을 쌓으며 말씀대로 살고자 했던 자신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모라비아 교도의 일거수 일투족 모두는 그의 믿음으로서는 해낼 수도 따라갈 수도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믿음의 현주소를 깨닫고 무릎을 꿇었다. 후에 그는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나는 맑은 여름 종교를 갖고 있습니다. 나는 위험이 없을 때는 나 자신을 믿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위험이 가까이 올 때는 나의 마음은 공포에 빠집니다. 오호라! 누가 나를 이 죽음의 공포에서 구원할 것인가?", "나는 그때, 내가 그리스도를 신뢰하게 되었으며 나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만을 믿게 되었고, 내 죄를 다 거두어 가시고, 나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믿음의 확신이 있기를 바랍니다.

코로나로 인해 힘들어 하는 성도들을 바라보면서 지난 주에도 말씀을 준비하던 차에, 주님이 주시는 말씀 중에 유독 두 개의 단어가 내 눈에 박혔습니다. 배를 타고 가던 중에 만난 풍랑 속에서 그들이 바라본 '큰 바람'과 온 몸을 감싸는 '두려워 하거늘' 이라는 단어였습니다. 이 코로나 시기에 우리 성도들이 바라보고 있는 시선과 감정이 아닐까 싶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런 두려움과 근심 속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주님이 주시고자는 말씀은 무엇일까?

 

1. 풍랑 속에서도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시몬즈 호에 타고 있던 모라비아 교인들이 풍랑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은 주님에 대한 믿음 덕분이었습니다. 반면에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은 시몬즈 호가 맞딱뜨렸던 풍랑보다도 오히려 작은 풍랑 속에서도 두려움으로 떨었습니다. 그것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의 눈으로 직접 보았던, 예수님의 오병이어 기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병이어 사건 이후, 제자들에게 배를 타고 먼저 건너가라고 하신 분은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배가 가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바람이 불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가라 하셨으면 순풍이 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이처럼 역풍이 불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잊고 있을 때입니다.

역풍을 맞아 힘들게 노를 젓고 있는 모습을 예수님이 안타까운 모습으로 지켜보시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셨고, 끝내는 물 위를 걸어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의 어려운 형편도 '누가 이 힘듦을 알까' 싶겠지만 주께서 보고 계십니다.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말씀이, 코로나 환란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도 들려질 것입니다. 그러니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그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가도록 합시다.

 

2. 풍랑 속에서도 시선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힘겹게 풍랑과 싸우고 있던 제자들 앞에, 어둠을 뚫고 예수님이 불쑥 찾아오셨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놀랐을까요. 그런 그들에게 가장 먼저 예수님이 마음을 진정시킵니다. "내기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에게 다시 예수님이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바람까지 잠재우시는 예수님의 능력을 다시 보았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믿음으로 도전합니다. 마태복음 14장 28~30절입니다. "베드로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베드로가 주를 다시 인식하고 믿음으로 물 위를 걸었습니다. 그는 오직 주님에게 시선을 두었습니다. 그러다가 발 아래 물결치는 바람을 바라보았습니다. He looked down at the waves. 주님에게로 있던 시선을 바람에게로 돌리자 물 속에 빠졌습니다.

풍랑 속에서도 주님을 보면 물 위를 걸을 수 있지만, 바람을 바라보면 물속으로 빠집니다. 중요한 것은 시선과 초점입니다. 코로나 속에서도 주님을 붙잡으면 두려움이 사라지지만, 환경과 상황을 바라보면 두려움이 우릴 휘감고, 주의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환란 속이 아니더라도, 잘 가다가도 주님에 대한 시선을 놓치면 넘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다시 한번 여러분 모두에게 영성일지를 쓰시기를 권합니다. 영성일지는 우리는 언제든 주님께 시선을 두게 합니다.

 

3. 풍랑 속에서도 예수님과의 동행이 있어야 합니다.

21절입니다.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제자들은 예수님을 반갑고 기쁜 마음으로 배 위로 영접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배가 무사히 목적지에 도달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딱 배 위로 오르자, 그제서야 그들은 예수님의 기적들을 기억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38년 동안 앓아 누워있던 병자를 치유하신 것도,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것도 기억했습니다. 마가복음 6장 52절에서는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라며, 그들이 염려 속에 빠지게 된 이유를 그들이 예수님에 대한 마음이 둔하여졌기 때문, 다시 말해 풍랑에 정신이 팔려 예수님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배에 오르시고 동행하게 되자 그 두려움은 말끔히 사라지고, 목적하던 곳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우리도 누구와 함께 인생의 풍랑 길을 헤쳐가는 지가 중요합니다. 같이 동행해야 하는 분이 예수님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인생에 풍랑이 한 번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연히 한 번의 풍랑을 예수님 없이 이겨냈다 하더라도, 제2, 제3, 계속해서 찾아오는 풍랑들을 항상 이겨나가려면 예수님과 동행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기쁨으로 동행하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김용의 선교사님의 간증이 다시 생각이 납니다. 선교사님의 딸이 선교지에서 죽게 되었을 때, 선교사님은 딸을 고국으로 데려와 치료를 받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병이 너무 위중하였고, 한국까지 오는데는 무려 40시간이 걸려야 했습니다. 그곳에 그대로 있어도 죽고, 한국으로 떠나도 생명을 담보할 수 없는 사정이었습니다. 선교사님은 딸을 한국으로 데리고 오기로 하고, 밤새 기도를 하고 주님이 주시는 마음을 일기로 기록하고는 다음 날 출발을 했습니다. 그것은 "주님과 함께 가는 여행, 아름다운 여행" 이었습니다. 그는 기쁨으로 비행기를 타고 딸을 데려왔고 딸은 치료를 받고 나았습니다.

예수님과 기쁨으로 동행하는 삶은, 풍랑 속에서도 아름다운 여행처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코로나로 힘든 시기, 누구와 함께 하느냐, 누구에게 시선을 두고 사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함을 알고, 예수님께 시선을 두고, 예수님과 동행하며 아름다운 인생 여행을 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