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01220_설교정리_네 번째 동방박사 (눅 1:26~31)

서정원 (JELOME) 2020. 12. 20. 17:54

○ 말씀전문

[누가복음 1장 26절~31절]

26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27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이름마리아

28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29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30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 설교요약

오늘은 좀 길지만 헨리 벤 다이크라는 목사님이 쓰신 '네 번째 동방박사'라는 책 내용의 줄거리를 살펴보면서 시작하고자 합니다. 그 책의 내용은 성경에 언급된 세 명 동방박사 이외에 또 한 명의 동방박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이름은 알타반입니다.
마태복음 2장에는 동방박사 세 사람이 머나먼 길을 달려 구주로 나신 어린 예수를 찾아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알타반'이란 네 번째 동방박사는 친구들로부터 새로운 왕의 탄생을 알리는 별이 서쪽에 나타났다는 것과 새 왕을 만나 경배하러 간다는 말을 듣고 3명의 동방박사를 만나러 길을 떠났습니다. 그는 탄생하신 예수님을 위해서 전재산을 정리하여 보물, 즉 사파이어와 루비 그리고 진주를 준비했습니다.
그는 원래 친구들인 세사람의 동방박사들과 함께 예수를 찾아 순례의 길을 떠날 예정이었으나 사정이 생겨서 혼자 여행길을 떠나게 되었답니다. 알타반은 말을 타고 베들레헴으로 가는 도중에 약속 장소에 거의 다 이르렀을 때 알타반은 피를 흘리며 죽어 가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알타반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를 낙타에 싣고 오던 길로 되돌아 가 주막을 찾았습니다. 주막 주인에게 죽어가는 사람을 맡기면서 새로운 왕을 만나 드리려고 준비해 간 세 가지 예물 (루비, 청옥, 진주) 중 루비를 꺼내어 주며 그 사람을 잘 돌보아 달라 부탁했습니다. 그리고는 서둘러 약속한 지점에 갔지만 친구들과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보다 더 늦게 베들레헴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러나 동방박사 세 사람은 예수님을 경배하고 짧은 메모만 남긴 채 그곳을 떠나버렸고, 예수님도 헤롯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가고 난 후였습니다. 그가 만일 길거리에서 그 히브리인을 도와주지 않았으면 다른 친구들 즉 세 사람의 동방박사들과 함께 경배 드릴수 있었는데...

 

알타반이 아기 예수를 경배하는 기회를 놓쳤지만, 병자를 치유하느라 늦은 그의 삶이 오히려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진정한 경배가 아닐까 싶습니다. 성탄을 앞두고 코로나와 같은, 정치적 갈등과 같은, 살기 힘든 이웃들의 아프고 나쁜 소식들만 들려오는 이 시기에, 우리는 그래도 좋은 소식을 기대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어떤 좋은 소식 보다도 더 기쁜 소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입니다. 오늘 본문은 마리아에게 찾아온 아기 예수 탄생 소식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기쁜 소식이 왜 마리아를 통해 찾아 왔을까. 물론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이고 선택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왜 하나님이 마리아를 선택하셨을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이유는 마리아가 ...

 

1.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사모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가 살던 지역은 갈릴리 나사렛이었습니다. 그 당시 갈릴리 나사렛은 문명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던 대표적인 지역이며 사람들이 업신 여기는 지역의 대명사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살던 마리아 역시 헐벗고 굶주린 삶을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깊이 사모했습니다. 그 사모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28절입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또 30절입니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두 문장 모두 수동태의 표현으로 되어 있지만 영어 원문을 보면 능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You have found favor with GOD". '당신이 찾던 은혜를 받았다' 라는 표현이 더 정확합니다. 은혜에 대한 갈망, 사모함이 있었기에, 그 위에 하나님이 은혜를 덧 입혀주셨던 것입니다.

에스더 2장 9절을 보면 그녀도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였고, 그로 인해 은혜를 받은 사람임을 볼 수 있습니다. "헤게가 이 처녀를 좋게 보고 은혜를 베풀어 몸을 정결하게 할 물품과 일용품을 주며...". 삶에서 중요한 것은 누군가가 내 자녀를 봤을 때 좋게 봐주고 은혜를 배풀어 주는 것입니다. 내 남편을 직장에서 상사가 좋게 보고 은혜를 배풀어주는 것일 것입니다. 아하수에로 왕 앞에 나온 여인들이 한 지역에서 한 명만 추천되어 나왔더라도 127명이나 되는 여인들이었을 것입니다. 그 많은 여인들 중에서 에스더가 두드러지게 아름답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녀가 택함을 받은 것은 왕이 좋게 보고 은총을 내린 것입니다. 그녀의 사모함을 본 하나님이 아하수에로 왕에게 그녀를 좋게 보게 하셨기에 그녀가 은혜를 받았던 것입니다.

이 시대, 우리가 소원하고 갈망해야 하는 것은 내 일터, 내 가정을 하나님이 좋게 보고 은혜를 베풀어주기를 사모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성탄절을 앞두고 이 사모함으로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지난 주에 고3인 딸 아이의 면접 장소를 같이 다녀 왔습니다. 고3이라는 힘듦과 코로나라는 2중고를 겪고 있는 딸 아이가 너무 애처로워서 딸 아이를 들여보내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첫째는 내 자녀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자녀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였으며, 둘째는 그 사모함 위에 하나님의 은총과 은혜가 덧 입혀지기를 바라는 기도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힘, 내 스스로의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살 수 밖에 없음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마리아와 에스겔이 그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축복 받았듯, 우리에게도 그 은혜를 달라고 기도하며 사모해야 하겠습니다.

 

2.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라는 이름은 구약에 나오는 미리암과 같은 뜻입니다. 미리암은 쓴 몰약이라는 뜻이며 쓰디 쓰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리아는 그 이름처럼 순탄치 못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 속에서도 그녀에게는 남이 가지지 않은 독특함이 있었으니 그것은 겸손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늘 주의 여종, 혹은 비천한 계집 종이라고 표현했습니다. 38절입니다. "마리아아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48절입니다.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비천한 자신을 하나님이 높이셔서 사용하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52절입니다. "권세 있는 자를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바로 마리아의 겸손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자리는 겸손이 있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조차도 낮고 낮은 말구유로 내려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게 하셨습니다. 요단강은 지중해의 해수면 보다도 약 400미터나 낮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낮은 자리를 요구하십니다. 이미 말구유라는 낮은 자리로 내려보냈으나 또 낮은 요단강에서 한 인간의 침례를 받게 하셨던 것입니다. 지극히 낮은 겸손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그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에게도 겸손의 열매가 맺힙니다. 인간은 사정이 나아지면 이 겸손을 잃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연로 목사님 중에도 처음 개척한 목사들에게 반말을 하며 하대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존경 받는 목사도 이렇게 겸손을 잃게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교만을 경계하고 겸손을 사모해야 합니다. 빌립보서 2장 7절입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라고 되어 있습니다. 미혼모를 섬기는 대표적인 목회자이신 박대원 목사님을 그래서 존경합니다. 사모께서 난소암으로 아이를 가지지 못하고 대신 아이들을 입양해서 키우고 계십니다. 그 분의 명성을 듣고는 TV에서 인간극장으로도 소개되었던 분입니다. 그 이후로 많은 프로그램에도 나오셔서 유명인이 되었지만, 그 분은 여전히 낮고 겸손함으로 미혼모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난 사람만이 이 겸손함을 얻고, 이 겸손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성탄절을 앞두고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 높은 것을 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더 낮은 자리를 바라보며 이려운 이웃을 돕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그 낮은 자리로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3. 믿음으로 인한 순종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로마가 다스리는 로마 제국의 수도에는 수많은 글로벌 인재들이 북적였을 것입니다. 수많은 미녀들이 넘쳐났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시골 구석에 살고 있던 낮고 비천한 마리아를 찾아오셨습니다. 그 또 한 이유는 그녀만이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시집도 안 간 처녀가 임신을 하면 부정한 여인으로 간주되어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시대였습니다. 성령으로 잉태 할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마리아는 이 돌팔매부터 생각나고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 말씀에 쉽게 순종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천사가 나타나 "천사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35절) 라고 했을 때, 마리아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38절) 라고 고백했으며,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45절) 라고 고백했습니다.

믿음으로 순종한 또 한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베드로입니다. 누가복음 5장 5절입니다.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고집이 센 어부였습니다. 보통 어부들은 한 두번 같은 자리에서 고기가 잡히지 않으면 그 자리를 옮기거나 그물을 접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몇 시간이나 걸리는 거물잡이를 밤새 계속했습니다. 고집이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도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예수님이 가르킨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리겠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그 센 고집을 접고 말씀에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그로 인해 거물이 찢어질 듯 고기를 거두었습니다.

이 성탄절에 우리에게도 이 말씀의 도전이 필요합니다. 빈 거물질이 반복된 것 같은 올 한 해, 잡은 것이 없어서 힘들고 지치지만, 다시 우리의 일터에서 교회에서 주의 말씀에 의지하여 거물을 내리는 가장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일어났던 것과 같은 풍성한 믿음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소망합니다.

 

다시 '네 번째 동방박사'의 내용을 살펴보며 오늘의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알타반은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베들레헴의 한 여인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때 갑작스런 말발굽 소리와 비명 소리 그리고 갓난아이의 울음소리에 놀라 소리 나는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헤롯왕이 갓 태어난 아기들을 죽이기 위하여 보낸 사람들이었습니다. 알타반은 그 여인의 아기를 구하기 위해 남은 두 가지 예물 중 청옥을 꺼내서 병사들의 대장에게 자신이 갖고 있던 루비를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이제 하나 남은 진주를 안고 아기 왕 예수님을 찾아 애굽으로 갔습니다. 여러 날을 애굽에서 헤매던 알타반은 가져간 돈이 바닥나 배고픔과 절망으로 고통 받았지만 새 왕을 경배하려 준비한 하나 남은 예물인 진주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새 왕께 드려야 한다고 결심하고 고이 간직하였습니다.
어느덧 예수를 찾아헤멘지 어언 33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는 이제 순례의 여정을 정리하면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날이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박히는 날이었습니다. 그때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오늘 골고다에서 군인들이 예수를 사형시킨다지!?" 알타반은 깜짝 놀라 골고다 언덕으로 뛰어갔습니다. '내가 33년이나 찾아 헤맨 왕이 돌아가시다니... 내 진주를 주고서 그를 구해야지.'
예수님의 소식을 전해들은 그가 예수님을 만나러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을 때 노예로 팔려가던 한 소녀가 알타반의 다리를 끌어안고 살려달라고 애절하게 소리치며 애원했습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예수님께 바치려던 마지막 보물인 진주를 그 불쌍한 소녀의 몸값으로 주고 그 소녀를 구해 주었습니다. 이제 알타반에게는 아무런 예물도 없었습니다.
'이제 왕을 무슨 면목으로 보나!' 걱정하며 걸음을 옮기는 순간 갑자기 예루살렘에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하늘이 어두워졌고 집들이 흔들리면서 무너져 내린 기왓장이 알타반을 덮쳤습니다. 70세를 넘긴 알타반은 피를 흘리며 그 자리에 쓰러졌습니다. 그는 죽어가면서 마지막 힘을 다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새로운 왕 메시아를 만나 경배하려 평생을 찾아 다녔지만 그분을 만나지 못한 채 이렇게 죽게 되었고 그분을 경배하려 준비한 보석들마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기도하는 그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알타반 ! 너는 정말 훌륭한 나의 아들이다. 난 이미 너의 경배를 세 번씩이나 기쁘게 받았다. 네가 작은 소자들에게 한 것이 바로 내게 한 것이니라. 네가 만난 불쌍한 사람들이 곧 나이이었느니라." 알타반이 그렇게 오랫동안 찾아 헤메었던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그는 이 음성을 들으며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숨을 거두었답니다.
과연 알타반은 그렇게 찾아 헤매고 다닌 구세주를 어디에서 만났을까요? 우리는 과연 구세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언제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요?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정작 우리가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크리스마스의 의미일 것입니다. 그 의미 있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