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전문
[사도행전 5장 39~42절]
39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40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42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 설교요약
한홍 목사님의 [폭풍 속의 은혜]에 나오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나는 그날도 양재천을 산책하며 기도하고 있었다. 교회와 나라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데 눈물이 흘렀다. '주님, 우리나라가 이 위기를 잘 이겨낼 수 있을까요?' 한참을 기도하고 눈을 떴는데 순간 나는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구름을 뚫고 햇빛이 쏟아지는데 그대로 십자가의 모양이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은혜로 이 땅을, 그리고 한국 교회를 비춰주고 계심을 확신 할 수 있었다." 코로나의 시기, 폭풍 속에 놓인 것과 같은 지금의 시기에 우리가 바라보고 소망해야 할 길은, 이 폭풍의 위기에서 우리를 구해주실 주님을 바라보는 것 밖에 없다고 확신합니다. 오늘 본문도 4장에서 겪얶던 그리스도인들에게 대한 핍박이 이 5장에서 다시 반복될 때 그들이 보여준 모습니다. 이를 통해 폭풍 같은 코로나의 위기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역경을 극복하고 우리가 사도행전 29장을 써 갈 수 있으려면...
1. 어두운 밤이 아닌 새로운 새벽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도행전은 초대교회가 받은 핍박도 얘기해 주지만, 소망도 얘기해 줍니다. 5장 18절부터 21절입니다.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이르되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그들이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와서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 하니". 눈에 띄는 단어 중에 "밤"과 "새벽"이 있습니다. 밤이 지나면 반드시 새벽이 옵니다. 새벽은 새로운 소망, 새로운 희망을 의미합니다. 어두운 밤의 두려움 속에서 떨지만 말고 새로운 새벽을 소망하는 자가 현명한 자입니다. 지혜로운 자의 삶입니다. 12장 5절입니다.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기도는 새벽을 염원하는 자의 행동입니다. 그리고 10절입니다.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새벽을 소망하는 공동체의 기도에 옥문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출애굽의 여정에 두 지점이 나옵니다. 마라와 엘림입니다. 출애굽기 15장 23절입니다.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거기서 그들은 자신들을 이끌고 나온 모세를 원망하였습니다. 그리고 27절입니다.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마라를 지나면 곧 엘림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엘림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마라에 주저앉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엘림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지금의 우리 사정이 마라 같이 여겨질지라도 조금만 가면 엘림이 있음을 인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기 바랍니다.
스티브 도나휴의 [사막을 건너는 6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소개하자면 ① 지도가 아니라 나침판을 따라가라. ② 오아시스를 만날 때 쉬어가라. ③ 모래에 갇히면 타이어에서 바람을 빼라. ④ 함께 여행하라. ⑤ 캠파이어에서 한걸음 떨어져라. ⑥ 허상의 국경선에서 멈추지 말라. 지금은 사막을 지나가야 하는 듯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사막에서는 더 힘을 주고 악을 쓰면 안됩니다. 타이어에서 바람을 빼듯, 영적인 접촉면을 넓히고, 조용히 하나님을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을 더 많이 넓혀야 할 시간입니다. 그래야만 밤의 구속을 넘어 새벽을 소망할 수 있습니다.
2. 깨어있는 지성과 함께 분별의 영성이 있어야 합니다
유대 권력의 No1,2,3,4가 다 지켜보는 시기에, 그래도 유대인 중에 깨어있는 지성인이 있었습니다. 가말리엘입니다. 다들 죽이려고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을 때 그가 나섭니다. 당시에 양대 산맥이 있었습니다. 말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샴마이 학파'와 유연성을 갖고 해석하는 '힐렐 학파'입니다. 가말리엘은 힐렐 학파의 힐렐의 손자입니다. 그리고 그 산하에서 수학하고 영향을 받은 사람 중의 하나가 바울입니다. 서슬퍼런 권력들 앞에서 다들 어떻게 하면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을까만 생각하고 있을 때, 그래도 깨어있는 지성이 있어서 하나님의 손길을 행하게 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깨어있는 생각, 분별의 영성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SNS를 수단으로 수 없이 많은 가짜 뉴스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어떤 것을 믿어야 할 지 갈피를 잡기 어렵습니다. 예수님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로마서 12장 2절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려면 깨어있는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혼란 속에 놓여있는 이 코로나 시기에도 두려움으로 떨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우리 가정에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 교회에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내 인생에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영적 분별력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평소에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깨어있어야 합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겸손하게 기도하면서 지나야 할 때입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예배와 기도 앞에 깨어있을 때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교회가 권면하고 있는 '가정 예배'와 '한시간 깨어 기도하기'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도 깨어있는 지성이 되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자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3. 복음을 위한 멈추지 않는 전진이 있어야 합니다
41절과 42절입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예수님 때문에 모욕 당하고 핍박 받는 것을 오히려 영광으로 여기고 기뻐하며 그 길을 갔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어디에 있든지 멈추지 않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선포하였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부의 코로나 지침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 더불어 북음의 불꽃이 꺼지지 않게 지키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이 코로나 시기에 가장 걱정 되는 것이, 이 고난 때문에 복음에 대한 열정과 열망이 꺼질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같이 다짐해야 합니다. 예배에 집중하고, 복음을 사랑하고 깨어 기도하겠다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로마의 그리스도인에 대한 핍박이 심해지자 그들은 예배 할 곳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러다가 찾은 곳이 카타콤입니다. 카타콤은 로마 교외에 있는 공동묘지입니다. 공동 묘지 밑에 굴을 파고 그것에 은신하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때 사용한 문양이 '익투스'입니다. 익투스는 물고기라는 헬라어입니다. 익투스는 신앙고백의 의미와 더불어 예배 장소를 가리키는 방향을 표시합니다. 약속된 사람들과만 통하는 암호였습니다. 그 모진 박해 속에서도 그들의 예배와 복음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익투스 문양에는 다섯개의 문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I:Iesus (예수스-예수), X:Christus (크리스투스-그리스도), Θ:Theos (떼오스-하나님), Y:Huios (휘오스-아들), 그리고 ∑:Sojomete (소조메테-구원자)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를 새겨 놓은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오직 예수 밖에 없었고, 그것을 멈추지 않겠다는 몸부림이었습니다.
[실리시아 무덤 비문]에 나오는 카타콤의 비문에 있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종, 실리시아의 샙티머스 프래택타티스, 가치있는 삶을 살다 가다. 하나님 저는 당신을 이곳에서 섬긴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신의 이름에 감사드립니다. 삼십 삼년 육 개월을 살고 주님께 영혼을 드립니다". "우리는 보석을 싫어하는 자들이 아니다. 다만 영원한 보석을 원하는 자들이다. 우리는 재물을 싫어하는 자들이 아니다. 다만 썩지 않는 재물을 원하는 자들이다. 우리는 명예를 싫어하는 자들이 아니다. 다만 예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최고의 명예를 원하는 자들이다. 우리는 즐거움을 싫어하는 자들이 아니다. 다만 영생의 즐거움을 원하는 자들이다. 우리는 술을 싫어하는 자들이 아니다. 다만 천국에서 마실 최고급 포도주를 원하는 자들이다. 우리는 바보가 아니다. 다만 거룩한 신부이기에 잠시 바보처럼 보이는 길을 선택한 자들이다". 카타콤에 있으면서도 감사하다는 고백, 그것은 그들이 복음의 가치를 알았기 때문이며, 영적으로 하나님 안에 있었기 떄문에 행복했다는 고백입니다.
우리도 예배의 열정, 복음의 열정을 멈추지 않고 살아갈 때, 이 푹풍 속에서도 은혜를 잃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영원한 소망을 하나님께 둘 때, 우리 신동탄지구촌교회가 영원한 하나님께 소망을 둘 때, 우리는 온전히 회복되고 사도행전 29장을 아름답게 써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유일한 소망을 예수 그리스도께 두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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