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어스름이 남아 있는 겨울 이른 새벽에 어머니가 준비한 이른 밥상이 좁은 큰방에 차려지고, 윗목엔 등잔불이 희미하게 켜져서 밥그릇과 반찬그릇을 비추어 긴 그림자를 만들었다. 아버지와 할머니는 맨 안쪽에 있는 벽 곁에서 상을 받으셨고 우리는 모두 방바닥에 펼쳐진 반찬들 주변으로 한 공기씩의 밥공기와 씨레기를 넣은 된장국 한 그릇씩을 받아 마지막으로 배부될 한 장의 김을 기다렸다. 아침 밥을 끓여내고 남은 부엌의 재 위에서 어머니는 마지막 반찬인 김을 한장한장 구우셨다. 간혹 김에 타다 남은 나뭇가지가 붙어 있어서 김에 제법 큰 구멍을 내기도 했지만, 그 날 하루 우리에게 주어지는 별미의 하나가 김이었다. 어머니는 김을 썰지 않고 그냥 한 사람에게 한 장씩을 나누어 주셨다. 그러면 우리는 겨우 밥 한 숟갈이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잘게 쪼개고 그 위해 밥 한 숟갈을 얹고는 간장을 그 위해 얹어 입 속으로 집어 넣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한 내 어릴 적 정월 대보름날 아침의 모습이다. 그 김이 있는 밥상이 우리의 일년 중의 특식이었다.
우리 집에서 정월 대보름 날이 특별한 것은 또한 그날이 우리 아버지 생신이라는 것이었다. 정월 대보름이라 기억하기 쉬운 아버지의 생신이었다. 아침을 먹고 나면 동네 각 집을 돌아다니며 오곡밥을 얻어 먹는 날이다. 그 때 대학생이었던 막내 숙부님이 거지 옷으로 분장하고 온 동네를 다니며 오곡밥을 얻어서는 나중에 분장을 풀고 온 동네를 웃게 한 기억도 난다.
햇살이 중천에 떠 오르면 동네 젊은이들은 집집마다 다니며 집단을 거두고 마을 뒷산으로부터 큰 대나무 세 개를 베어왔다. 그리고 소나무 몇 개를 베어 와서는 타작마당 아래에 있는 원식이 아저씨네 논에 달집을 만들었다가 어둠이 깃들면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달집을 태웠다. 훨훨 타는 불빛을 바라보며 한 해 액운이 그 불빛과 함께 날아가기를 소원했었다.
오늘이 그 정월 대보름 날이다. 그런데 아침부터 대설 주의보가 내렸고 밤새 내린 눈은 아직도 내리고 있다. 어릴 때의 아련한 추억과는 많이 다른 날씨라 아쉬움도 있지만, 아직도 아버지를 생각할 수 있는 날이라 다행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한동안은 자주 생각나곤 했었는데 세월이 더 흘러가면서 아버지를 생각하는 시간도 뜸해진다. 그래도 아버지 생신이 정월대보름 날이라서 다행이다. 고마우신 아버지를 일년에 한번은 꼭 생각하게 해 주니까. 희미한 등잔불 아래에서 정월 대보름날 아침 상을 같이 했던 아버지, 그날도 새벽 일찍 들에 나가서 일하시고 오셔서 우리와 함께 아침을 드셨던 아버지, 그 아버지가 있어서 참 든든한 어린 시절이었다. 유독 내게 공부하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시려고 애쓰셨던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 감사하게 느껴지는 정월 대보름날 아침이다.
아버지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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