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41215_설교정리_사람을 준비하시는 하나님 (삼상2:22~26)_박은조목사

서정원 (JELOME) 2024. 12. 15. 18:06

○ 말씀전문

[사무엘상 2장 22절~26절]

22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의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23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24 내 아들들아 그리하지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죄하게 하는도다

25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만일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그를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 그들이 자기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더라

26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 받은 말씀

1895년 일본이 청일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조선에 대한 우월권을 확보하고 청으로부터 요동반도 등지를 할양받아 대륙 침략의 발판을 마련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독주를 우려한 열강, 즉 러시아가 주동하고 프랑스·독일이 연합한 이른바 삼국간섭으로 일본은 요동반도를 청에 반환하였습니다.

이러한 러시아의 영향력에 자극되어 조선에서는 배일친러적 경향이 싹트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친일 세력에 눌려 있던 민비와 함께 구미 공관과 밀접한 접촉을 가지며 친미·친러적 경향을 보이던 정동파 인사들이 득세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일본은 1895년 음력 8월 20일 일본인 낭인과 훈련대를 경복궁에 침입시켜 민비를 시해하는 을미사변을 일으켰습니다. 한 나라의 국모를 비참하게 살해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고종은 심한 두려움으로 잠못 이루는 밤을 지새곤 했습니다. 이때 미국과 캐나다, 호주 등지에서 온 선교사들이 고종의 침실 옆방에서 당번을 섰습니다. 선교사들이 든든한 무장한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그들을 죽이게 되면 그 소식이 즉각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904년과 1905년에 걸친 노일전쟁에서마저 일본이 승기를 잡기 시작하자, 조선의 멸망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다가왔고 격국 1907년 치욕의 한일합방을 당하게 됩니다. 

이때 이땅에 사애리시라는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캐나다 출신의 선교사로서 1903년 31살 나이에 한국으로 선교하러 왔습니다. 연약하기 그지없는 한 여선교사가 당시의 조선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녀는 역시 이땅에 선교사로 와 있던 로버트 샤프와 결혼을 했고, 그녀의 남편은 3년만에 죽게 되었지만 그녀는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공주를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계속했습니다. 

그녀는 공주에서부터 천안지역까지 두루 돌아다니면서 전도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1910년 그녀는 채 여덟살 밖에 되지 않았던 유관순을 만나게 되고, 유관순의 부모에게 그녀를 양딸로 달라고 했습니다. 어떤 힘에 의해서인지는 모르지만 유관순의 부모는 딸을 순순히 양녀로 내주었습니다. 사애리시는 5년간 그녀를 돌보고 있다가 이화학당으로 공부하러 보냅니다. 그녀가 바로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유관순열사입니다.

그녀는 1919년 삼일만세운동을 일으키게 됩니다. 100% 자발적 운동임에도 불구하고 223만명이 동참한 독림운동이었습니다. 비폭력운동임에도 불구하고 무려 7,500여명이 끓려가 죽었습니다. 유관순의 부모도 총에 맞아 죽임을 당했습니다. 당시에 조선은 이름도 없는 조그만 나라였습니다. 서구에서는 조선이 청국말이나 일본말을 사용하는, 그들의 지배하에 있는 한 작은 지역 정도로 알고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조선을 전 세계적 관심 국으로 알린 운동이 바로 삼일운동이었습니다.

작고 힘없던 당시의 조선이라는 곳에, 어떻게 사애리시 같은 선교사가 왔고, 거기서 여덟살 밖에 되지 않았던 유관순을 만났을까? 정말 우연일까? 우연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드라마틱한 역사가 아닐까요? 많은 사람들은 그것은 바로 고통받는 한 민족을 위해 보내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습니다. 지금 우리가 한 나라를 이루고 부강한 나라로 살 수 있게 된 데는 유관순과 같이 목숨걸고 외친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유관순 뿐만 아니라, 김구도 도산 안창호도 신앙에서 시작했습니다. 이 나라의 존속과 부강을 이 같은 그리스도인 없이 생각할 순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 나라를 위해 그리스도인을 리더로 세웠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사였던 엘리 가정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당시 사사라면 엄청난 영향력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는 하나님이 보낸 사람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그들 아들들의 잘못에 대해 단호한 조치를 내리지 못했습니다. 아들들은 제사에 올릴 제물에 대해 먼저 자기 먹을 것부터 강제로 챙기고, 성전에서 일하는 여인들과 음란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아들들에게 그러면 안된다는 말만 하고는 그대로 내버려두었습니다. 그러자 이를 보신 하나님이 다시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게 됩니다. 바로 사무엘입니다.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 하나님이 보낸 뜻을 제대로 지키지 못할 때,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준비하십니다.

사무엘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뜻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어머니인 한나의 눈물의 기도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한나와 브린나라는 두 여인을 아내로 두고 있었습니다. 브린나는 자식이 있었지만 한나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당시에 아들이 있느냐 없느냐는 죽고 사는 문제였습니다. 만약 남편이 일찍 죽게 되면 모든 재산은 아들에게로 유산됩니다. 그러므로 자식이 없는 아내에게는 재산이 한 푼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먹고 살 방도가 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한나는 울면서 기도했고, 그로 인해 태어난 사람이 바로 사무엘입니다. 기도로 사무엘을 얻은 한나는 기도에서 약속한 대로 사무엘을 하나님에게 바쳤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준 사람은 하나님이 보내신 뜻으로 살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기릅니다. 우리는 우리가 좋아서 결혼한 것처럼 여기지만 우리의 머리카락 숫자까지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 맺어준 결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당연히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녀를 내 뜻으로 완벽히 키울 수 있다고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기도로 키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뜻에 합당한 자가 되게 길러야 합니다. 

하나님은 구약 시대에만 하나님의 사람을 부르고, 하나님의 사람을 보낸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여전히 사람을 부르십니다. 그 부르신 자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갑니다. 그 부르심의 사람이 되어야 하고,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애리시를 부르고 유관순을 부르신 것처럼 우리도 그 부르심을 기억하고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사람이 되고, 자녀들을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녀로 길러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눈을 돌리고 또 다른 사람을 부르십니다. 은혜의 손길이 떠나가게 됩니다.

 

나라가 어수선합니다. 솔선수범 해야 할 위정자들이 법을 우습게 압니다. 법질서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최고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 계엄령을 발포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조리게 합니다. 이쪽 저쪽의 선동에 휘들리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 우려스렵습니다. 어수선한 틈을 타 적의 도발이 있을까 염려도 됩니다. 힘들게 구축한 세계적 산업 경쟁력이 무너질까 걱정이 됩니다. 마치 1900년대 초의 조선의 불안한 정국처럼 느껴집니다.

우리의 자녀와 손주들에게 무엇을 물려줄까 걱정이 됩니다. 전쟁을 물려줄 수도 있습니다. 기아와 가난을 물려줄 수도 있습니다. 부강한 나라를 물려줄 수도 있고, 희망찬 나라를 물려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그러려면 위정자들이 그들을 보낸 하나님의 뜻으로 이 땅을 다스리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선동에 휘말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르는 지혜로운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경거망동이 위정자들에게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도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이 이 시기를 위해 이땅에 보낸 사람임을 기억하고 잠잠히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도록 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다시 이땅에 풍성한 축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