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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0_설교정리_잘못된 위치 선정을 경계하라 (삼하11:1~3)

서정원 (JELOME) 2024. 3. 11. 07:25

○ 말씀 전문

1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

2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3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

 

○ 받은 말씀

신원하 교수는 그의 저서 [죽음에 이르는 7가지 죄]에서 교만, 시기, 분노, 나태, 탐욕, 탐식, 정욕 이라는 일곱 가지 죄에 대해 신학적으로 성찰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높이는 ‘교만’, 다른 사람의 행복을 슬퍼하는 ‘시기’, 통제해야 할 악 ‘분노’, 의욕과 활력을 잃어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 빠진 ‘나태’, 필요 이상의 재물을 탐하는 ‘탐욕’, 음식을 탐닉하는 ‘탐식’, 상대를 자신의 즐거움을 위한 대상으로 취급하는 ‘정욕’은 현실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와 사람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파괴하고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는 실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신교수는 현대 사회의 실상을 반영하여 또 다른 하나의 죄로 허영을 추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갖가지 죄의 요소들에 의해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누구 보다도 충성스러웠던 다윗이 죄악과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진 밧세바 사건에 대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사건으로 그는 그동안 쌓아왔던 모든 것을 무너뜨리게 됩니다. 다윗도 이러 했을진대 우리들 어느 누구도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이 경고를 거울 삼고 우리 인생에 알람이 될 수 있는 교훈으로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럼 다윗이 갑자기 실패하게 된 이유는…

 

1. 잘못 선정된 자리 (Location) 때문이었습니다.

1절입니다.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 이 때는 다윗 시대에서 내부적으로 다소 안정을 회복했던 시기였습니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초기의 긴장이 어느 정도 풀어져 있던 시기였습니다. 암몬과의 전쟁이 있었지만, 그리고 모든 왕들이 다 출정하였지만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습니다.

당시 중동지역에서는 전쟁이 일어나면 왕이 그 선두에 나서서 진두지휘를 했습니다. 다시 말해 그 때 다윗이 있어야 했던 자리는 전쟁터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쟁터에 나가지 않고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평소의 다윗 답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았던 이 일이 비극의 시작이 된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이 남편 자리를 지키지 않고 아내가 아내 자리에 있지 않을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사장이 사장 자리에 있지 않고 골프장이나 술집 같은 잘못된 곳에 가 있을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학생이 학교에 있을 시간에 다른 곳에 가 있으면 문제가 일어납니다. 누구든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지 못할 때 타락의 길로 가게 됩니다.

예배 시간에 보면 사람마다 같은 시간에 예배를 드리러 옵니다 그리고 예배당의 같은 위치 같은 자리에 대부분 앉아서 예배를 드림을 보게 됩니다. 자기 자리를 지키는 이 자리가 귀한 자리입니다. 거룩의 시작입니다.

우리 인생이 거룩한 삶이 되기 위해서는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김다위 목사는 그의 저서 [영혼을 위한 싸움]에서 7가지 죄를 재조명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나태를 ‘충실한 삶을 무너뜨리는 죄’라고 했습니다. 충실하게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는 것, 그것이 죄를 짓지 않는 방법입니다.

 

2. 잘못 남용된 파워 (Power)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은 사람을 보내서 밧세바의 남편이 누구인지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압 장군에게 편지를 보내 우리아를 전쟁터의 선두에 세워 죽게 하라고 했습니다. 밧세바를 취하기 위해 자기의 권력과 지위를 남용했습니다. 통제되지 않는 힘이 위험을 촉발하고 실패의 자리로 가게 만듭니다.

파워의 남용은 권력을 가졌을 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권력을 가진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있을 때도 일어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2절입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그 자리에 미처 서지도 않았는데 선 줄로 착각하면 넘어진다고 했습니다. 실패는 어려울 때 넘어지는 것 보다, 성공했다고 착각할 때 일어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때가 더 조심해야 할 때인 것입니다.

리더십을 망치는 3가지 유혹이 있다고 합니다.

① 군림하고자 하는 욕구

② 쾌락을 추구하는 욕구

③ 존경 받고 싶은 욕구입니다. 

이 욕구들이 우리에게 이미 선 것 같은 조급한 마음을 갖게 합니다. 이미 승리했다고 성공했다고 자만하게 만듭니다. 이 조급한 마음과 자만이 우리에게 파워의 남용을 부추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모로서, 남편으로서, 고참으로서, 혹은 선배라는 생각에서 내가 가진 파워를 남용하지 않는지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늘 청지기로서의 삶을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럴 때 파워의 남용으로 인한 죄악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3. 잘못 오용된 감각 (Sense)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이 옥상을 거닐다가 마침 그때 밧세바가 목욕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옥상에서 목욕을 하는 밧세바의 행위도 분명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다윗에게도 분명 문제가 있었습니다. 2절입니다.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밧세바가 객관적으로 정말 아름다웠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 것은 다윗의 눈에 아름답게 보였다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다윗의 관점에서 본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창세기 3장 6절입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하와가 보기에 먹음직스러워 보인 것입니다. 죄를 짓게 된 발단은 하와의 감각 (Sense)의 문제였습니다. 

문제는 겉으로 나타나는 것 보다도, 우리 영혼 속에 내재하는 구심이 밖으로 드러날 때 일어납니다. 내 안에서 이미 죄의 원인이 되는 것이 촉발되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감각의 오용과 무절제로 인해 죄를 범하게 됩니다. 성경은 음욕을 품는 것 만으로도 여자를 간음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감각은 지금 내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무엇을 듣고 있는가?에 의해 발생합니다. 지금은 과도하게 보고 듣는 것을 유혹하는 시대입니다. 유투브에서 정치 영상을 보게 되면 그 아래로 계속해서 정치 뉴스를 보게끔 유도하는 알고리즘의 시대입니다. 그래서 한번 유투브에 빠지면 헤어나기 어렵습니다. 기성 세대인 우리도 이런데 아이들은 어떻겠습니까? 그 유혹을 스스로 떨쳐낼 수 있겠습니까?  앞으로 아마도 세상은 뭘 보는가의 싸움 속에 놓일 것입니다. 

감각의 오용을 호시탐탐 노리는 자가 있습니다. 바로 사탄입니다. 사탄은 끝없이 삼킬자를 찾고 있습니다. 그 사탄의 침투에 가장 연약한 곳이 바로 감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승리하기 위해 감각의 올바른 통제, 남용을 물리치는 것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다윗이 밧세바의 목욕 장면에서 아름다움이라를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실패의 역사를 쓴 것 같이, 우리도 죄를 범하게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