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20501_설교정리_하나님 그 손에 너의 삶을 맡긴다 (출 2:1~4)

서정원 (JELOME) 2022. 5. 2. 08:45

○ 말씀전문

[출애굽기 2장 1절~4절]

1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어

2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3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4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니

 

○ 설교요약

독특한 창법과 스타일로 새로운 장르를 선보이며, 2021년 싱어게인에서 30호 가수로 발탁되어, 장안의 화제로 떠오른 가수 이승윤씨, 그의 아버지가 '주님의 교회'와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를 담임한 이재철 목사임을 알고는 고개를 갸우뚱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재철 목사님의 자녀교육에 대한 철학에 대해 알고는, 음,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 이재철 목사님은 자녀들에 대한 교육관으로 '독창적인 삶'을 제시했었습니다. 또한 이 목사님은 자신의 어머니가 “너만이 살 수 있는 인생을 살지 않으면 평생 남 따라다니다 인생 못 산다”고 말씀하셨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분은 “그리스도인 부모라도 하나님께서 내 자식에게 주신 독창적인 삶을 살도록 도와준다면, 자식들을 시험의 노예로 병들게 하는 일에서 탈피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재철 목사님의 '자녀교육의 5가지 철학'을 다시 한번 더듬어 보았습니다. ① 사람이 되도록 가르쳐라. ② 솔선수범하라. ③ 자립심을 키워라. ④ 아이에게 배워라. ⑤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라. 이재철 목사님은 "대부분 사람이 자식을 직선 위에서 키운다. 직선 위에서는 아무리 앞서가도, 나보다 앞선 사람이 또 있다. 그러니 직선 위에서는 어느 지점에서든 항상 낙오하는 사람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자식을 360도 원 위에 세우고 바라는 길로 가게 하면, 직선 위가 항상 누군가 이미 갔던 길인 것과는 달리, 원 위의 바깥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다. 그만이 걸어가는 길 위에서는 그가 항상 1등으로 살아간다." 라고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며 '유투버 이승국'으로 활동하는 이승윤씨의 둘째 형 이승국씨의 삶이 남다른 삶 임도 이해가 됩니다. 

오늘 말씀 본문도 어떻게 보면 자녀 양육에 대한 좋은 레슨이 될 듯 합니다. 모세를 낳은 부모님의 얘기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며, 위대한 모세를 그 부모님이 어떻게 키웠으며, 우리는 우리의 자녀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에 대해, 깊이 묵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럼 그리스도인은 자녀 양육을 어떻게 해야 할까...

 

1. 믿음으로 키우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모세의 삶은 그의 부모의 믿음의 결단에서 출발합니다. 히브리서 11장 23절입니다.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by faith 믿음으로' 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믿음으로 키운다는 것은 ① 이 아이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임을 믿는 것입니다. ② 믿음의 부모로서 최선을 다해 키우는 것입니다. ③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하나님의 잣대로 키우는 것입니다. 

그럼 모세의 부모가 모세를 그렇게 키웠는지 본문 2절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본문에 '잘 생긴 것을 보고' 라고 되어 있습니다. 실상은 아기가 갓 태어나면 쭈굴쭈굴 하고 이상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부모의 눈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쁘기 그지 없습니다. 특히 모세의 부모가 '잘 생긴 것을 보고'라고 한 것은, 그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뿐만아니라 하나님의 눈에도 아름다운 아이로 보였습니다. 사도행전 7장 20절입니다.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의 아버지의 집에서 석 달 동안 길리더니". 환영받지 못하고 축복받지 못한채 태어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자녀를 잘 양육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그 자녀가 우리에게 딱 맞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선물로 주신, 아름다운 아이라고 여기는 것이 가장 기본적이고 우선시 되어야 하는 점입니다. '석 달 동안' 숨겨서 키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나일강 강에 던져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아이 뿐만 아니라 부모까지도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모세의 부모님은 아이를 더 이상 숨길 수 없을 때까지 목숨을 걸고 아이를 키웠습니다. 부모로서 최선을 다해 키웠던 것입니다. 또한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고' 키웠습니다. 눈에 보이는 바로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이처럼 모세의 부모는 모세를 믿음으로 키웠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두 아들을 가진 어떤 장로님과 권사님이 생각났습니다. 그분들의 큰 아들은 서울대에 다녔고, 작은 아들은 고려대 지방 캠퍼스를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 장로님은 지인들을 만나면 늘 큰 아들을 소개시키고 자랑을 했습니다. 반면에 작은 아들은 소개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 작은 아들을 상담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에게는 큰 상처가 가슴 깊이 박혀 있었습니다. 부모가 준 아픔이 있었던 것입니다. 장로와 권사님 조차 우리에게는 이런 잘못된 자녀 양육이 은연중에 있습니다.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자녀를 탓하기 이전에 우리의 자녀 양육이 믿음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 깊이 성찰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세상의 잣대,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치를 기준으로 키워야 하겠습니다. 

이승윤씨의 형, 이승국씨가 고등학교 때, 한 달간 해외 캠프에 참석을 했는데, 그의 능력을 본 옥스포드대학에서 장학생으로 남아있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그 아들이 이재철 목사님에게 상의를 하자, 깊이 고민하신 이재철 목사님은 한국으로 들어올 것을 권했다고 합니다. 그 내용이 목사님의 [자녀교육에 대한 이야기]에 실려 있습니다. "저는 한 사람이 살아가는데 외적인 스팩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봅니다. 그건 그 사람의 성품과 인격, 그리고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들은 집안에서 가족과 함께 살면서 배양되는 거라고 봅니다. 옥스포드 대학을 나오면 좋겠지요. 더구나 고등학교 학비도 학교측에서 대겠다고 하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외적인 스펙들 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걸어갈 때는 가족과 함께 한 시간이 더 중요할 거라 봅니다. 제 믿음은 그렇습니다. 비록 교등학교 때 옥스포드에 쉽게 갈 길을, 하나님의 법대로 살기 위해 포기했다 할지라도, 그 공부가 만약 뜻이라면 하나님께서 이루시리라 믿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도 자녀를 믿음으로, 또 신앙으로, 말씀으로 키우겠다는 고백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결단이 주어지는 가정의 달 5월을 시작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하나님의 섭리 앞에 내어 맡기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 말씀 3절과 4절입니다.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니". 최선을 다한 그의 부모는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방수처리를 한 갈대상자에 모세를 넣고 나일강물에 띄워보냈습니다. 갈대상자는 '테바'라고 하는데 노아의 방주에서 방주도 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무동력체 라는 의미입니다. 모든 결정을 하나님의 손에 맡긴다는 것입니다. 

이 이후에 일어난 부분은 새번역성경이 더 잘 설명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새번역성경 5절과 7절입니다. "마침 바로의 딸이 목욕을 하려고 강으로 내려왔다. 시녀들이 강가를 거닐고 있을 때에, 공주가 갈대 숲 속에 있는 상자를 보고, 시녀 한 명을 보내서 그것을 가져 오게 하였다"(5절). "그 때에 그 아이의 누이가 나서서 바로의 딸에게 말하였다. "제가 가서, 히브리 여인 가운데서 아기에게 젖을 먹일 유모를 데려다 드릴까요?""(7절). 애굽에는 많은 강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마침 공주가 목욕하러 나온 그 강, 그 타이밍이었습니다. 어찌 우연이라고만 하겠습니까? 그리고 공주가 상자를 열고 그 안에 아기가 있음을 본 '그 때에' 모세의 누이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친모의 품에서 모세가 자랄 수 있었습니다. 어찌 우연이라고만 하겠습니까? 성경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는, 하나님께 믿고 맡겼을 때, 하나님이 섭리하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 헌아식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주에 헌아식을 하기로 했는데, 많은 부모님들이 아이에게 헌아식을 해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신청자가 너무 많아서 2주에 걸쳐 나누어서 하기로 했습니다. 참으로 축복할 일이요 하나님이 기뻐허실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른들은 신앙고백을 하는 침례식을 하지만, 아이는 아직 스스로 신앙고백을 할 수 없는 나이이므로, 침례식 대신에 부모가 아이를 하나님의 자녀로 양육하겠다고 고백하는 헌아식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아이에게 어떤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한 기회라고 여기시면 안됩니다. 두 가지를 명심하며 헌아식에 참여해야 합니다. 하나는 이 아이를 믿음으로 잘 키우겠다는 약속입니다. 둘째는, 이 자녀의 인생을 하나님의 손에 맡긴다는 의탁의 약속입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제 아내가 제 자녀들을 양육하는 과정에서 하는 기도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저 아이 때문에 너무 힘듭니다. 저를 데려가시든 저 아이를 데려가시든 양단 간에 해결을 해 주세요. 그렇지 않다면 저 아이에게 새엄마를 데려다 주세요" 얼마나 힘들면 이런 기도가 튀어나왔겠습니까? 그리고 자녀를 돌보미에게 맡긴다든지, 어린이집에 보내놓고는 해를 당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신경쓰도 아이를 제대로 양육하기가 어려운에 맡기라니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 제 아내에게 하나님의 분명한 음성이 들려왔다고 합니다. "네 딸에게서 네 손을 내려놓아라. 네가 할 수 있다는 생각, 네가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내려놓아라" 그 말씀에 순종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수고했다. 이제부터는 내가 하겠다" 라고 하셨습니다. 

자녀에게 최선을 다하되, 그 다음엔 하나님의 섭리에 내어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키우는 것보다 훨씬 크고 깊게 잘 키워주실 하나님을 믿고 맡기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3. 기도를 멈추지 않는다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에는 모세 부모님의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1절에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어"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6장에 가서야 그들의 이름이 아므람과 요게벳이라고 기록됩니다. "아므람은 자기의 고모 요게벳을 아내로 맞아 아론과 모세를 낳았다. 아므람은 백삼십칠 년을 살았다"(6장 20절). 그냥 처음부터 이름을 기록하면 될텐데 굳이 6장에 가서야 이름을 밝힐까가 궁금했습니다. 

아마도 중요한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그들이 결혼했을 때와는 달리, 모세를 낳고 키우면서 영적으로 또 신앙적으로 큰 변화, 성숙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들키지 않도록 날마다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 기도를 통해 자연히 그들의 신앙과 믿음이 성숙해 갔을 것입니다. 그 신앙적 성숙을 본 하나님이 그들의 이름을 드러내도록 하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리의 교만이 누그러지는 시기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녀를 키우게 되면서 겸손해집니다. 자녀 문제 앞에는 꼼짝할 수도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내 생각대로 도저히 안되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에게 그것을 깨닫게 해주시는 도구가 바로 자녀인 것입니다. 자녀를 위한 끝없는 기도는 그 자녀를 승리하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신앙도 성숙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를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이 자녀에게도 내게도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

지금은 자녀를 위해 기도할 때입니다. 우리는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 기도가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잘 계속됩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고 나면 대부분 그 기도가 식습니다. 그래서 많은 청년들이 대부분 이 시기에 교회를 떠납니다. 반면에 이때부터 더욱 큰 영적 유혹 앞에 놓이는 시기입니다. 직장에 들어가서는 더욱 치열한 영적 싸움 앞에 노출됩니다. 결혼도 잘못 시작된 결혼은 평생 자식의 발목을 잡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녀가 대학에 들어가고 나면 기도를 멈추거나 등한시 합니다. 이 때가 더 많이 집중해서 기도할 때입니다. 기도를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늘 감동과 은혜를 느끼는 찬양이 있습니다. '요게벳의 노래'입니다. 이 요게벳의 노래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습니다. 작곡가는 쌍둥이를 임신했으며 조산의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5주 동안을 가만히 누워서 지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29주 5일만에 출산을 했는데 하나는 1.38Kg, 하나는 1.41Kg 밖에 되지 않는 미숙아였습니다.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폐혈증 등과 같은 수많은 병을 안고 태어났습니다. 부모는 그 아이를 보면서, 내가 이들의 참 부모가 될 수는 없겠구나, 참 부모이신 하나님께 맡길 수 밖에 없겠구나 라고 느꼈습니다. 노래 가사 중의 이 '하나님의 손에 맡긴다'는 귀절에 눈물이 납니다. 

오늘 듣게 될 '요게벳의 노래'는 조찬미씨가 부른 노래입니다. 아시다시피 조찬미씨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싱글입니다. 아이를 낳아 길러보지 않은 사람이 이 노래의 진실한 감정을 살릴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그녀의 노래를 들은 많은 사람들이 깊은 울림의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노래를 부르고 난 조찬미씨는 자기의 과거를 고백했습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그녀가 커 가는 동안 아버지는 그녀 곁에 없었습니다. 홀로 조찬미씨를 키워온 그녀의 어머니는 두렵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늘 교회에 나가 기도하며 그녀를 키웠습니다. '이 아이를 지켜주소서'라고 기도하는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자라온 조찬미는 이 노래를 자기 엄마의 마음으로 불렀다고 했습니다. 

멈추지 않는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에 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가 임합니다. 우리 모두 자녀를 위해 끝까지 기도를 멈추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요게벳의 노래]

너의 삶의 참 주인 너의 참 부모이신

하나님 그 손에 너의 삶을 맡긴다

너의 삶의 참 주인 너를 이끄시는 주

하나님 그 손에 너의 삶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