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123_아버지 생각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뚜렷한 하나의 얘기 줄거리가 아니라
찔끔찔끔 엉켜서 생각난다.
이러다가는 점점 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사라져버릴까 두려워진다.
오늘은 내 공부를 뒷바라지 해 주셨던 기억을 더듬어 기록하여
날아가버리려는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붙잡아 두고 싶다.
우리가 커는 시절엔 먹고 살기도 빠듯했을텐데
중고등학교 다닐 때
교과서든 자습서든 문제집이든
사달라고 했던 교제들에 대해
한번도 안된다고 했던 적이 없이 마련해 주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금 생각하면 그 돈이 어디서 나올 수 있었을까 하는 의아함이
들기도 할 정도이니.
아버지의 공부에 대한 뒷바라지는 대단하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6남매를 키우시면서 다른 형제자매들과는 다르게 유독 내게 공부를
시키시려 했을까 하는 아버지의 본심은 알 수가 없지만
아마도 내가 명석함을 보였기에 큰 기대를 하셨던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은 할 수 있다.
아버지가 몇 번인가 판검사가 되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던 것 같다.
그것이 아버지의 기대였다면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는 위치에 와 있지만
아버지의 그 기대와 뒷받침 때문에
오늘 우리 가정을 꾸려가고 행복하게 살 수 있었던 것으로 믿는다.
내가 공부하는 과정에 아버지가 가장 기뻐하셨던 때는
진주고등학교에 합격한 소식을 접했을 때였던 같다.
그 당시는 중학교든 고등학교든 입학시험을 치루어야 하는 시대였다.
진주 인근에서 진주고에 합격한다는 것은 대단한 자랑거리였었다.
시험을 치루고 나면 발표자 수험번호와 명단을 지역 방송국인
KBS와 MBC 방송에서 해 주던 때였는데 예정되었던 시간보다
채점이 일찍 끝나서 조기 방송이 되는 바람에
나는 직접 합격자 발표를 들을 수 없었었다.
그날 아버지와 함께 리어카에 생강을 싣고 중앙시장 도매상에 넘기러
갔었는데 이웃 사람들이 내 이름이 합격자 명단에 있었다고 전해 주었다.
아버지와 나는 생강을 넘기고는 부랴부랴 진주고로 달려갔는데
이미 모두 합격증을 받아가고 난 후였다.
교무실에 들러 조마조마 긴가민가 하는 마음으로 합격증 받으러 왔다고
하니 미처 받아가지 못한 합격증 사이에서 내 것을 찾아 주었었다.
그 때 본 아버지의 글성이는 눈물이 아직도 기억된다.
그렇게 좋아하셨고
손님들이 집에 오면 꼭 진고에 다니는 우리 둘째라고 소개하시며
자랑하시기를 좋아하셨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 생전에 제대로 효도한 것이 그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 살만한 우리 집에 오셔서 나의 사는 모습도 보시고
좋아하시던 약주도 한 잔 드리고 싶은데
그렇게 해 드릴 아버지가 없음이 너무 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