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413_설교정리_가장 인간적인 기도가 가장 위대한 기도이다 (막14:32~36)
○ 말씀 전문
[마가복음 14장 32~36절]
32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34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35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 받은 말씀
김환영 시인의 동시 [울 곳]이 생각납니다.
할머니 어디 가요?
-예배당 간다
근데 왜 울면서 가요?
-울려고 간다
왜 예배당 가서 울어요?
-울 데가 없다
할머니와 손자의 대화 같은 이 시를 보면서, 문득 우리에게도 울 데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울고싶은 마음보다 속상함으로 삼킬 때가 더 많고, 울고 싶어도 보는 눈이 부담스러워서 속으로 삼키고 마는 경우가 더 많기만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 그 예수님께도 울고 싶은 때가 많았습니다. 자신이 고난의 십자가에서 죽을 것을 알고는 참고 참았던 울음을 쏟기 위해, 아버지 하나님을 향해 울고 싶은 마음으로 겟세마네 동산을 찾으셨습니다. 그 울 곳에서 울면서 드린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를 통해 우리도 어떤 기도를 드리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되돌아 보기를 원합니다.
2,000년 예수님이 가셨던 울 곳, 그 겟세마네 동산은 어떤 자리였을까요?
1. 가장 인간적인 기도를 드렸던 자리였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드린 기도의 내용을 보겠습니다. 32절부터 34절입니다.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놀라시고 슬퍼하시고 고민이 가득한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35절입니다.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그 고난이 그냥 지나가기를 바랐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길이었지만 그것을 피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마음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예수님이 전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를 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라고 마무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표본으로 삼아야 하는 가장 위대한 기도는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그 예수님의 오늘 기도는 우리에게 어떤 기도가 가장 위대한 기도인지를 보여줍니다. 바로 솔직하고 인간적인 기도입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토로하는 기도입니다.
다윗을 통해서도 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편 곳곳을 통해 다윗의 기도를 볼 수 있습니다. 시편 대부분에서는 '고난 중에도 내가 주를 바라보나이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아픈 마음만 드러내며 끝낸 노래 한 곳이 있습니다. 바로 시편 88편입니다. 어디에도 소망이 없다고만 하고 마칩니다. 마지막인 16절부터 18절입니다. "주의 진노가 내게 넘치고 주의 두려움이 나를 끊었나이다. 이런 일이 물 같이 종일 나를 에우며 함께 나를 둘러쌌나이다. 주는 내게서 사랑하는 자와 친구를 멀리 떠나게 하시며 내가 아는 자를 흑암에 두셨나이다"
데렉키드는 성경 주석을 통해 이 시편 88편을 '하나님의 헤아리심에 대한 증거'라고 했습니다. 인간적인 고뇌, 아픔을 토로할 때, 하나님은 그 마음을 기도로 헤아려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30대의 가장이 중병이 들고, 그 아내마저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어찌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찬양의 노래만을 부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감사와 찬양으로 드리는 기도만이 아니라 토로도 헤아리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 기도를 바라보면서, 새롭게 시작하는 이 한 주, 우리가 드려야 하는 예배와 기도를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지를 알게 되는 복된 주일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2. 깨어있음을 당부하셨던 자리였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기도를 드리려 올라가면서 제자들에게 당부를 했습니다. 32절부터 34절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그러나 주님이 돌아왔을 때 제자들은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통곡하며 기도할 때 제자들은 그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37절과 38절입니다.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당부는 바로 지금 우리를 향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 나라, 이 세상, 그리고 우리 가정을 위해 지금이 그 어느때 보다도 깨어있어야 할 때입니다. 깨어 기도 할 때인 줄로 압니다. 내 가정을 살리려면, 자녀 양육을 제대로 하려면, 시작한 사업을 제대로 하려면, 진정한 주의 제자가 되려면, 그 무엇 보다도 먼저 깨어 있어야 합니다. 지금이 주님께 기도려야 하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중보하시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하루의 가장 중요한 시간에,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간에, 먼저 깨어 기도하는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그 분 앞에 내 뜻을 내어드린 자리였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는, 가장 인간적인 기도를 드렸던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깨어 있고, 깨어 기도하라고 하신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으로 드렸던 그 기도의 핵심은 '내 뜻과 소망이 아니라 주의 뜻으로 하시라'는 기도였습니다. 36절입니다.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가장 위대한 기도는 내 뜻을 관철시키는 기도가 아니라, 내 뜻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의 기도입니다.
지난주 세미나에서의 Main 강사는 제 대학 선배였습니다. 우수한 성적을 내셨던 그 선배는 일찌기 미국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곳 작은 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목사 안수를 받고도 전혀 기뻐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백여명이 되던 그 교회는 문제가 생겨서 교인들이 떠나기 시작했고, 반토막이 나더니 결국 열 명도 채 남지 않게 되었으며, 담임 목사까지도 도망가듯 떠나면서 그 교회를 맡기기 위해 그 선배에게 목사 안수를 주셨던 것입니다. 안수 받은 그날 집으로 돌아온 선배는 집으로 들어서자 마자 가방을 집어던지고는 침대 위로 쓰러졌었다고 했습니다. 엎드려 펑펑 울면서, 내가 왜 여기에 있어야 하냐고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그 하소연 같은 기도를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제 내가 네게 영혼을 맡긴다'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이 많습니다. 그 소망이 이루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복된 인생은 주님의 뜻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안 되는 것을 다 되게 되는 것이 성령충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게 보여서 거기에 순종하게 되는 것, 하나님의 뜻이 너무도 잘 보여서 순종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 그것이 성령충만입니다. 성령충만의 대표격인 스데반이 그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가장 위대한 기도는 내 마음과 소망을 주께 아뢰지만, 그 분 앞에 내 뜻을 내어드리고, 그 주님의 뜻을 발견하고 순종흐는 기도입니다. 그 기도를 드리는 복된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