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222_설교정리_죽고 싶을 만큼 힘들 때 (왕상19:3~8)_장재기목사
○ 말씀 전문
3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4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5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6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7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8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 받은 말씀
성탄절을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집집마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꺼내 치장하기도 하고 가족들과의 송년회를 꿈꾸기도 합니다. 날씨는 춥고 힘들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즐겁고 기쁩니다.
하지만, 이런 시기에도 힘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들처럼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 때문에 오히려 더 힘들게 느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고, 누군가의 위로를 통한 회복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어둠의 시간은 누구에게든 찾아올 수 있습니다. 언젠가 한 형제가 찾아와 '목사님 저 죽고 싶어요' 라고 했습니다.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하면서 대출을 받아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렸는데, 그 집이 6억에서 3억으로 떨어지고 200만원 남짓 받는 월급으로 이자를 내고나면 아예 생활 자체가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누구나 한번쯤 죽고싶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게 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본문은 엘리야가 이세밸을 피해 도망가 있는 도중에 하나님을 통해 다시 회복되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야에게도 이런 어둠의 시간이 찾아옵니다. 너를 반드시 죽이겠다는 이세벨이 두려워서 도망친 엘리야, 우리도 우리에게 닥친 어둠의 삶에서 죽음 속으로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해도 해도 안 되는구나 싶은 좌절과 패배의식이 찾아올 때, 내곁에 아무도 없다고 느껴질 때, 죽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힘들 때, 하나님이 우리를 구하시고 회복해 주십니다. 어떻게 회복시켜 주시는지 오늘 본문의 엘리야를 보면서 깨닫고 그 은혜를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릴 어떻게 회복시킬까요?
1. 하나님은 지친 우리의 체력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바알의 선지자 800명과 겨루어 비를 내리게 한 엘리야는 완전 번아웃이 된 상태였습니다. 거기다가 이세벨이 그를 반드시 죽이겠다고 하자 정신적으로도 극단의 상태에 몰려 있었습니다. 이세밸을 피해 도망친 그는 잠도 자기 어렵고, 입맛도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큰 걱정에 휩싸이면 잠도 안오고 입맛도 없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이 먼저 자게 하시고 먹게 하셨습니다. 5절과 6절입니다.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대수술을 하기 전에 의사는 체력부터 회복하라고 합니다. 기력이 쇠하면 수술도 받지 못합니다. 그 어떤 고난의 회복도 체력의 회복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 때, 우리의 체력부터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번아웃 된 이웃에게 먼저 먹을 것을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크리스마스라고 흥청망청 내 기쁨만 취할 것이 아니라, 힘들고 지친 이웃을 돌보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우리의 심령도 강건하게 회복케 하십니다.
2. 하나님은 곤고한 우리의 영혼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자고 먹여 체력을 회복케 하신 하나님은 엘리야를 호렙산으로 보내십니다. 8절입니다.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호렙산은 하나님의 산이고,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의 죽고 싶을 만큼 외로운 마음의 근원은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 때문입니다. 엘리야가 두려움으로 도망친 것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깨어졌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교제가 없으면 무너집니다.
9절과 10절입니다.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왜 여기 있느냐고 물었을 때, 엘리야는 있는 그대로를 다 토해 놓습니다.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왜 여기 있느냐고 물으신 것은 그의 기도를 듣기 위함이었습니다. 그의 고백을 듣기 위함이었습니다. 고백과 기도만이 엘리야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의 관계, 교제를 통해 우리로부터 두려움의 바람을 빼 내십니다. 부드럽고 고요한 속삭임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11절과 1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죽고 싶을 만큼 힘들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반응이 자극적이고 화끈하기를 바라지만 하나님의 음성은 세미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QT입니다. QT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게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리고 무너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시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체력의 회복 후에, 이 하나님의 회복의 음성에 귀 기울일 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회복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 은혜가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하나님은 우리의 잃어버린 사명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엘리야의 원 위치는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이 그에게 주어진 사명이었습니다. 체력을 회복시키시고, 영혼을 회복시키신 하나님은 그에게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가게 하십니다. 15절부터 17절입니다. "15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그에게 다시 하나님의 일을 맡기셨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깨닫고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한 것은 엘리야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18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모든 것은 '내가' 할테니 하시면서 하나님만을 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패배의식을 느끼고 영적 침체를 겪게 되는 것은, 모든 것을 자신이 하려고 하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우리는 내가 의지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의지할 때, 하나님이 회복시키시고, 하나님의 사역을 다시 할 수 있게 맡겨주십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용기를 주시고 담대함을 주십니다.
언젠가 본 뮤지컬 루카스가 생각납니다. 회사에서도 짤리고 결혼에서도 파토가 난 현우에게 친구가 캐나다 휴양지를 예약해서 가서 몸과 마음을 추스리라고 했습니다. 말이 휴양지지 그곳은 정신연령이 7살 밖에 되지 않는 발달 장애인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뮤지컬은 루카스라는 아이가 태어나면서 시작됩니다. 뇌 기형으로 태어난 루카스는 태어나자마자 죽을 운명이었지만, 기적적으로 17일간 부모의 품에서 사랑받으며 살았다는 사실을 이야기의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부모에게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사랑과 슬픔의 시간이었고, 그 시간 속에서 가족의 진정한 사랑과 화해를 경험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들도 돌보기 어려운 상태에서 아기를 낳겠다는 그들 부부에게, 의사도 아기가 태어나더라도 15시간 정도 밖에 살 수 있다는 아기를 낳겠다는 그 부부에게 현우는 면박을 주기도 했습니다.
15시간이 하루가 되고, 이틀이 되고, 17일간이나 아이는 살았습니다. 아들을 떠나보내면서 아이의 아빠 앤디는 "네게 너무나 고마워. 아빠 되게 해줘서 정말 고마워" 라며 아이를 꼭 안아 주었습니다.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꼭 안고 속삭여주십니다. "너의 나의 루카스". 힘겨운 세상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루카스라고 불러주실 때, 우리도 누군가를 마음에 안고 "너는 내 루카스" 라고 하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회복시켜 주실 사명이 아닐까요? 성탄절을 앞두고 우리가 다시 회복해야 할 사명이 아닐까요?
죽고 싶을만큼 힘들다고 느껴질 때, 회복의 하나님을 붙잡고, 체력과 환경과 영혼이 건강하게 회복되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