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208_설교정리_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눅8:22~25)_박성훈목사
○ 말씀 전문
22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매 이에 떠나
23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
24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25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그들이 두려워하고 놀랍게 여겨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 하더라
○ 받은 말씀
'고인 물'과 '고인물'이 있다고 합니다. 띄어쓰기 없이 된 '고인물'은 신조어로서 어떤 한 분야에서 누구든 넘볼 수 없는 경지에 이른 전문가, 실력자, 고수 혹은 그들의 집단을 뜻한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집단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선망의 대상이라 합니다. 반면 '고인 물'은 정체되고 쇠퇴된 상태에서 활력과 탄력이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우리 신앙에도 '고인물'이 되기 위해 불철주야 애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습관적으로 주일 예배에 참석하고, 그 반복된 일상에 익숙해져 있는 '고인 물'과 같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자각하고 다시 마음을 추스리다가도 어느새 또 '고인 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개척 멤버로 참여하여 7년 동안 섬겨오면서, 하나님의 큰 은혜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해 오면서 내게는 일정한 신앙의 패턴이 형성되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순종'하면 거기에 반드시 '하나님의 일하심'이 있음을 경험했습니다. 믿음, 순종, 하나님의 일하심, 이를 반복하게 되니 내게 변화가 일어나고, 내 신앙이 조금씩 자라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믿음'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고, 내 자신의 변화를 경험하는 첫 Keyward임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믿음이 나를 '고인 물'이 되지 않게 하고, '고인물'의 위상으로 이끌어 주는 핵심임을 여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믿음에는 '세상적 믿음'과 '기독교적 믿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적 믿음은 자신을 믿는 것입니다. 자신을 믿고 노력하면 더 많은 것이 내게 주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믿음입니다. 이 세상적 믿음은 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더해지는 능력도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반면에 기독교적 믿음은 내 삶의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자꾸만 꿈틀거리는 내 심령의 주도권을 날마다 주님께 내어드리는 삶입니다. 이는 내 계획 보다도 훨씬 큰 하나님의 놀라운 변화를 이루게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의 믿음을 바라보고 그 현주소를 점검하게 해줍니다. 어떤 믿음의 성도가 되어야 할 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그럼 예수님이 기대하는 우리 믿음의 참 모습은 ...
1. 내가 탄 배의 선장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오늘 배경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갈릴리호수를 건너 건너편으로 가는 뱃길입니다. 가는 도중에 예수님은 잠이 드셨고, 밖에는 세찬 광풍이 몰아쳤습니다. 이때 제자들인 보인 반응입니다. 24a입니다.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그들은 배가 뒤집힐 것 같다고 스스로 판단했습니다. 삶의 끝을 스스로 판단했습니다. 오늘 이 배로 건너편으로 가자고 한 예수님이 배의 주도권을 쥔 선장임을 잊어버렸습니다.
제자들은 대부분이 어부였고, 이 갈리리를 중심으로 고기잡이를 해 왔습니다. 그들에게는 누구보다도 익숙한 곳이었습니다. 그들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여겼을 정도라면 몰아친 광풍이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주님은 우리에게 항해의 주도권을 쥔 선장은 예수님이라는 것을 기억하라고 요구하십니다.
배를 타고 건너가자고 하신 분은 예수님입니다. 반드시 건너편에 도착하게 하겠다고 결정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선장이신 예수님은 중간에 겪게 될 상황도 이미 알고 계시고, 반드시 그 뜻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느긋하게 잠도 주무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나를 믿는 믿음이 아닙니다. 배의 선장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세상의 거친 풍랑 속에서 내 소견대로, 내 의지대로 내 삶의 방향을 정하고만 있지 않나 되돌아 봐야 합니다.
처음 이 교회를 개척할 때, 100%의 확신과 0%의 불안감으로 동참한 것이 아닙니다. 어린 자녀들도 있었고, 이곳으로 오면 거주할 집도 새로 마련해야 했습니다. 수지에서 이곳으로 다니려면 새벽 4시에는 일어나야 했습니다. 100% 대 0%가 아니라 51% 대 49% 마음에서도 하나님의 판단을 믿고 순종하는 것, 그것이 믿음이고 그것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마음에 여전히 두려움과 염려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의 선장은 예수님이라는 믿음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결국 내 삶에 변화와 은혜의 물결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26절입니다. "그들이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러" 선장의 뜻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2. 내가 탄 배의 선장이 어떤 분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탄 배의 선장이 누구인지를 알기만 하고 머무르면 우리의 신앙이 성숙해 가기 어렵습니다. 그 선장에 대해 알면 알수록 우리는 그 선장에 대한 믿음을 더해 갈 수 있습니다.
광풍을 만나 두려워하던 그들은 비로소 배의 주인이 예수님임을 깨닫게 되었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자고 계신 그 예수님을 깨우는 일이었습니다. 24절입니다.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잔잔해진 호수를 바라본 그들의 반응이 25절입니다.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그들이 두려워하고 놀랍게 여겨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 하더라" 그동안 누구보다도 예수님과 오래 다녔고, 가까이서 봐 왔지만, 오늘 그들은 예수님을 전혀 새로운 분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하나님에 대해 얼마나 아느냐에 따라 반응하게 됩니다. 끊임없이 알아가야 합니다. 지난주에 들은 말씀처럼 믿음의 성장판이 닫히지 않도록 예배의 자리로 나아와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3장 18절입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오늘 본문에서나, 예수님을 부인할 때의 베드로의 모습을 보면, 믿음이 약한 자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해 알아가려는 지난한 삶을 통해 목숨까지 바치는 순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전서 1장 5절부터 7절입니다.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예배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자리입니다. 이 예배에 충실한 삶을 살 때, 우리의 신앙은 날로 성숙해가고, 더욱 복된 인생으로 인도될 것입니다.
3. 선장의 말씀만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세찬 광풍으로 그들은 지금 곧 죽게 될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 광풍에게 예수님이 일어나셔서 말로 다스리셨습니다. 24절입니다.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사역의 목적은 가르치고, 전파하고, 치유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사역을 예수님은 말씀으로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가장 우선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사단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그 방해꾼을 뜷고 들어야 합니다.
A.W 토니는 그의 저서 "말씀이 힘이다"에서 믿음을 방해하는 주요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줍니다. 믿음을 방해하는 첫번째 거짓 권위는 '전통'이라고 했습니다. 오랜 역사를 통해 쌓아온 지식과 전통이 옳다고 믿는 사고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장애요소가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 전통의 굴레를 뚫고 믿음을 키워갈 수 있어야 합니다. 두번째 거짓 권위는 '숫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한목소리를 내는가에 지배당합니다. 믿음은 다수결의 원칙에 지배되는 것이 아닙니다.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제자들이 다 두려워했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건너편으로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이 전통과 숫자의 방해에 휩쓸리는 것은 그것들이 우리에게 안정감을 줄 것이라는 착각 때문입니다. 우리기 기억해야 할 것은, 지금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미래에서 반드시 일어나게 하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아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갈 때 우리는 이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에베소서 4장 21절부터 24절입니다.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진리가 예수 안에 있고, 말씀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복된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목사인 저도 현실에 안주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이곳에 담임목사님을 도와 개척을 하고, 이만큼 안정이 되었고, 또 새로운 교회 건물도 지었으니, 이제는 좀 쉬엄쉬엄 해도 되지 않겠나 라는 마음도 들 때가 솔직히 있습니다. 그런 나를 '고인 물'이 되지 않도록 날마다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가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하여 '고인 물'이 되지 않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