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40512_설교정리_믿음의 각론을 다시 점검하라 (약2:24~26)

서정원 (JELOME) 2024. 5. 13. 08:59

○ 말씀 전문

[야고보서 2장 24~26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 받은 말씀

인터넷을 떠도는 우스게 소리입니다. 어떤 교회 목사님이 신장이식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목사님을 대신해서 설교를 하게 된 강사 목사님이 설교 도중에 이 소식을 교인들에게 알리고 자기의 신장을 내어주실 분이 있으면 아멘으로 화답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모두가 한목소리로 '아멘'으로 화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강사 목사님은 신장이식은 한사람이면 충분하다고 하시면서 누구는 하게 하고 누구는 하지 못하게 하기가 어렵다며, 모두가 함께 통성기도를 하자고 하시면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오리털을 날려서 그 오리털이 내리는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 이식을 할 수 있게 하자고 했습니다. 목사님이 오리털을 후 불어서 공중으로 불어 날렸습니다. 그리고 오리털이 한 사람의 얼굴 위로 날아내렸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기도 중에 그것을 바라보고는 '주여!' 하고 외치면서 후 하고 불었습니다. 그러자 그 오리털이 다시 공중으로 날아 가다가 다른 사람 앞으로 날아 내렸습니다. 이번에는 그 사람이 그것을 눈치채고는 '주여!' 하면서 후 하고 불어 날렸습니다. 그와 같은 모습은 다음에서 그 다음으로 계속되었다는 우스게 이야기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말은 쉽지만 실천은 어렵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주 듣는 '믿음' 이라는 것도 Detail을 살펴보면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믿음이라는 것이 어떻게 자라고 완성되는 것인지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믿음에는 살아있는 믿음이 있고 죽은 믿음이 있다고 합니다. 그럼 우리가 살아있는 믿음을 가지려면...

 

1. 믿음은 검증되어져야 할 영역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검증해 보지 않고 하는 일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결혼이 아닐까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부부 됨이 어떤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보지 않고, 그렇게 살 수 있다고 확신하는지 스스로를 검증해 보지 않고 결혼을 하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한번도 읽지 않고 믿음의 삶을 살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믿음은 점검해 봐야 하는 것입니다. 14절과 17절입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14절)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17절)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두 가지 점에서 놀라움을 발견했습니다. 첫째는 보이는 것 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무서울 수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믿음에 대한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것은 비단 목회자만이 아니라 성도들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신앙에 갈피를 못잡는 엉터리 믿음이었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내 믿음을 잘 자라게 할 수 있고, 내 믿음을 검증할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붙잡은 것이 바로 '영성 일기'입니다. 그때 시작한 영성일기를 지금도 매일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내가 하나님과 잘 동행 하고 있는지 일상으로 검증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반드시 검증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검증할 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은 믿음은 '행함으로 검증되어져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참된 믿음이 아닌 것을 가르쳐 줍니다.

참된 믿음이 아닌 것은 첫째, 말로만 하는 믿음입니다. 15절부터 17절입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헌신이 없는 믿음, 예배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둘째, 단순한 지식적 동의만 있는 믿음입니다. 18절과 19절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사실은 귀신도 알고는 있다는 것입니다. 이 지식이 진정한 믿음이 되려면 그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셔서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해 주실 수 있다는 믿음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 살아있는 믿음은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한 예시를 통해 이해를 돕도록 하겠습니다. 한 농촌에 심각한 가뭄이 계속되어 모든 주민들의 가슴이 타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을 필두로 기우제 기도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한 소녀가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기우제 기도를 드리면 진짜 비가 오나요?" 목사님을 포함해서 주민들이 한 목소리도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신 분이므로 반드시 비를 내려주실 것이란다" 그리곤 모두가 기우제에 참여해서 한목소리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정말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덩실덩실 춤을 추며 기뻐하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리곤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려고 기우제장 밖으로 나섰다가 난감해 했습니다. 아무도 우산을 가져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직 한 사람, 질문을 하고 참석했던 그 소녀만이 우산을 들고 함박웃음을 웃고 있었습니다. 그녀만이 진짜 기도하면 비가 올 것이라는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믿고 우산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말로만 믿는다 하고 사는 건 아닌지, 정작 내 믿음은 살아있는 믿음인가를 검증하며 살아가는지 살펴보는 것이 믿음의 각론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각론을 다시 한번 점검하는 복된 한 주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믿음은 전적인 위탁으로 검증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성경에서 보여주는 믿음에 대한 예시 두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첫째는 아브라함입니다. 21절과 22절입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이는 창세기 22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리기 위해 모리아 산으로 데리고 가서 칼로 아들을 죽이려는 찰나에 여호와의 사자가 황급하게 외칩니다. 창세기 22장 11절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연거푸 두 번을 부릅니다. 사자가 그만큼 황급해 한 것은 아브라함이 아들인 이삭을 죽이려는 시늉만 한 것이 아니라 진짜 죽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믿음에 진정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기생 라합입니다. 본문 25절입니다.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그녀가 한 것이라곤 정탐꾼 몇명을 한 번 숨겨준 것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믿음의 사람으로 예시하고 있습니다. 신학자들은 그런 라합에 대해, 최소의 정보로 최고의 믿음을 산 사람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에 대해 들은 정도는 소문 정도였지만 그녀는 전적으로 믿음의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자기의 목숨까지도 내놓은 행동을 했습니다. 전적으로 목숨까지 위탁하는 그녀의 믿음을 높이 사고 있습니다. 배운 것 부족했던 우리의 부모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못배운 그 분들이 우리보다 더 큰 믿음의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믿되, 행함이 따르는 믿음이 진짜 믿음입니다. 그 행함이 나를 전적으로 위탁할 수 있는 믿음까지 가야 살아있는 믿음이 됩니다.

전도폭발훈련에서 믿음에 대한 예시로 들고 있는 '의자 예화'를 되새겨 보았습니다. 예화 내용입니다.

'여러분, 여기에 의자가 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대단히 송구스럽지만 이 의자를 예수님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한동안 저는 이 의자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믿은 것처럼 예수님이 실제로 살아계시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또한 제가 이 의자에 앉으면 편안히 쉴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은 것처럼, 예수님이 저를 도와주실 수 있다는 것도 믿었습니다. 그래서 제 자신에게 일어나는 문제들, 건강문제, 재정문제, 자녀문제 등 일시적이고 현세적인 문제들이 생길 때마다 그 문제들만 예수님께 맏겼습니다. 그러나 저는 온전히 제 자신을 밑기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저는 저의 구원을 위해 이 모든 문제를 안은 채, 제 자신을 예수님께 맡겼습니다. ..."

우리가 우리를 전적으로 맡길 때 그것이 진정한 믿음이 됩니다. 베드로전서 5장 7절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전적으로 맡기는 것은 계획과 방법과 결과까지를 전적으로 맡기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맡기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점검하며 믿음의 각론을 든든히 하며 살아가는 복된 삶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