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31224_설교정리_우리가 하나 되게 하옵소서

서정원 (JELOME) 2023. 12. 26. 09:19

○ 말씀전문

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 받은 말씀

오늘 주신 말씀을 정리하면서 문득 어제 저녁에 있었는 일이 생각이 납니다. 어제 12월 23일 저녁에 인근 카페에서 마을 주민들의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저녁 일곱시에 만나기로 되어 있어서 대부분 그 시간 전에 나와 있었습니다. 다들 간담회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주민대표가 "한 분이 10분 정도 늦어진다고 연락이 왔는데, 그 분이 도착하고 시작해도 되겠지요?" 하고는 기다리는 사람들이 지루할까 봐서 인지, "제가 제일 젊은 사람인듯 해서 여쭙습니다만, 다들 크리스마스가 되면 어떻게 보내세요?" 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 질문에 다들 멀뚱멀뚱 옆 사람들을 둘러보기만 할 뿐 아무런 말 없이 그냥 지나갔습니다.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이라 크리스마스라고 해서 특별한 일 없이 무덤덤하게 보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크리스마스는 연애하는 젊은 청춘들이나, 아이가 있는 가정에서나 찾는 날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런 나에게 성탄절을 앞 둔 오늘 주일 예배에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나에게 큰 깨우침을 주시는 말씀으로 다가왔습니다. 비록 평소에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23일 저녁에 주민들에게 이 말씀으로 전하지 못한 내 모습이 안타깝게 여겨졌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목사님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성탄에 대한 일깨움을 다시 한번 정리하면서 마음에 새겨봅니다.

 

주중에 필그림하우스에서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한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목회자에게 연말은 매우 분주한 시간입니다. 이 바쁜 시간에 굳이 가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결국 먼 길을 다녀왔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바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잘 다녀왔다 싶은 마음입니다. 세미나를 들으면서 하나님이 나를 참석하게 하신 분명한 이유가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세미나는 나에게 다음과 같은 점들을 되돌아 보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① 목회자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목회하기 전에 자기 자신에게부터 목회를 하라

② 입으로 하는 목회가 아니라 귀로 듣는 목회를 하라

③ 강단목회가 아니라 먼저 골방목회를 하라

그리고 한 강사 목사님의 짧은 메시지가 나에게 큰 울림이 된 것도 있습니다.

"기도 하지 않는 것 보다 더 위험한 것은 기도하는 것처럼 보이려는 것이다

거룩 하지 않는 것 보다 더 위험한 것은 거룩한 것처럼 보이려는 것이다"

우리는 성탄절이 되면 누구나 최소한 한번 이상은 축하 메시지를 받게 됩니다. 비록 그것이 가볍게 던지는 인사치레의 메시지일지라도 말입니다. 그만큼 익숙해진 성탄이고 무덤덤해진 성탄절입니다.

세미나에서 받은 깨우침을 되새기며, 해마다 거치는 이 성탄절에 과연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배워야 하나? 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익숙함을 내려놓고 다시 오늘의 본문을 주목해서 묵상했습니다. 그 주목을 통해 우리 가정, 우리 교회가 다시 한번 주목해야 할 점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2023년 성탄을 보내는 우리의 성탄 정신입니다. 그것은...

 

1. 낮은 곳을 바라보는 시선이 있어야 합니다.

성탄절은 예수님이 탄생하신 생일날입니다. 높고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신 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오신 모습은 낮고도 낮은 자의 모습이었습니다.

먼저 그분이 태어나신 장소입니다. 바로 베들레헴입니다. 베들레헴은 유대 고을 가운데 가장 작은 마을입니다. 삐까뻔쩍한 대도시에서가 아니라 우리의 면소재지 같은 작은 마을로 오셨습니다.

둘째는 그 분이 태어나신 구체적인 환경입니다. 잘 갖추어진 산부인과 병원이나 가족들이 함께 하는 따뜻한 집 안이 아니었습니다. 차가운 바람이 스치는 마구간의 말구유였습니다. 소위 여물통이었습니다.

세째는 그분이 침례를 받은 것은 요단강이었습니다. 요단강은 지정학적으로 지중해 해면보다 350~400미터가 더 낮은 곳입니다. 그래서 다들 지표면에서 가장 낮은 곳이라고들 합니다.

네째로는 그 분이 무엇보다도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고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다시 깨달아야 할 성탄의 정신은 바로 '낮아짐의 정신, 겸손' 입니다. 우리는 모두 높은 성공을 위해 달려갑니다. 하지만 이 성탄을 맞아 우리가 가장 기본적으로 기억해야 할 것은, 겸손의 열매를 맺기를 결단하는 시간에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장시간 이어진 세미나에서, 오래 전에 은퇴하신 이동원 목사님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가장 연장자이신 목사님은 세미나 내내 맨 앞줄에 자리하고 계셨고 처음부터 끝까지 후배들의 강의를 경청하셨습니다. 쉬는 시간이 되면 후배 목사들을 향해 "목회자는 열심히 배워야 한다"며 강조를 하셨고, 쉬는 시간이 끝나면 가장 먼저 자리로 돌아오셨습니다. 그 삶의 모습을 보면서 저게 내가 닮아야 할 모습, 사모해야 할 모습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이 성탄에 배워할 시선은 바로 낮은 곳을 바라보는 시선, 자신의 지식에 교만하지 않고 죽기 전까지도 후배들을 통해서도 배우려는 자세,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주는 관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성탄 정신으로 다시 우리 자신을 추스리는 이번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2. 가난한 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있어야 합니다.

누가복음은 특히, 가난한 자, 소외된 자를 향해 있는, 어찌 보면 마이널리티 복음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시면서 힘 있는 자, 권세 있는 무리들에게 자신을 먼저 보여드리지 않았습니다. 가장 먼저 보게 한 사람들은 바로 목동이었습니다. 그 목동들에게 예수 탄생을 축복하게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4장 18절과 19절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성탄 정신의 두번째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누리게 하시고 눈먼 자를 다시 보게 하시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시기 위함이라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그 분이 이 땅에 오신 것은 가난한 자를 돌보시고 회복시키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가족들과 크리스마스 선물을 나누어주고 케익을 자르며 축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예수님의 큰 뜻, 즉 가난한 자를 바라보는 시선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리처드 스턴스는 그의 저서 [구멍난 복음]에서, 성경의 내용에서 우리가 잘 실천하지 않고 있는 구절들을 가위로 오려내어 보았더니 구멍이 숭숭 난 책이 되더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우리가 지키고 싶은 것들만 지키려고 합니다. 새해 '올해의 말씀'을 받을 때도 권면의 말씀 보다는 축복의 말씀이 적힌 카드가 뽑히기를 은근히 바랍니다. 

우리는 내 행복, 내 축복만을 바라보고 살아갈 것이 아니라,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바라보고 그들에게 따뜻한 눈길과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주고 가신 성탄 정신을 제대로 실천하는 일입니다.

목회 사역을 시작하던 초창기에 본 한 장의 사진이 지금도 똑똑히 기억되고 있고, 그 기억이 나를 바로 세워가는 데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 사진은 한 마리의 아프리카 독수리가 한 굶주려 죽어가는 아이를 훔쳐보고 있는 모습의 사진입니다. 그 사진을 처음 봤을 때 나는,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누리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었었습니다. 지금도 그 사진이 문득문득 떠오르며 나에게 빚진 자의 마음을 잃지 않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성탄절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이땅에 오신 축복의 날입니다. 그 예수님을 찬양하고 그 예수님으로 인해 행복한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따뜻한 창문 밖에는 여전이 굶주리며 추위에 떨고 있는 가난한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입니다. 그들도 함께 따뜻하고 함께 행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성탄정신입니다.

 

3. 하나됨을 바라보는 시선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진듯 합니다만, 예전에는 크리스마스 이브와 성탄일 새벽에 성도들이 마을을 돌며 새벽송을 찬송했었습니다. 그 새벽송이 사라진 것에 늘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 때 부른 새벽송에 나오는 가사 중에 가장 많이 나오는 구절이 14절 내용이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예수님 시대의 사회적 특징을 보면 극히 이분법적 사회였습니다. 로마의 귀족신분이냐 노예냐로 구분되어 극과 극인 삶을 살았던 시대였습니다. 유대 사회에서는 유대인이냐 이방인이냐로 구분되어 서로 적대시 했습니다. 또한 부자냐 가난한 자냐로 잣대를 갖대 되며 살던 시대였습니다. 

이런 사회적 불평등을 허물고 양자 간의 막힌 담을 허시고자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 중의 중요한 하나가 바로 '하나'되게 하심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성탄 정신의 중요한 요소는 하나 되게 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이 땅을 떠나시면서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주신 구체적인 제사장 기도를 통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7장 11절입니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21절입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그리고 22절입니다.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마지막으로 23절에도 있습니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하나님과 마귀의 특징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시고, 마귀는 우리를 깨뜨리고 나누어지게 합니다. 우리가 마귀의 종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하나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를 위해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이 성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가정과 우리 교회, 한국 교회가 기도해야 할 것은 바로 이 하나 되는 축복입니다. 공동체가 하나가 되어 기도할 때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이 임합니다. 하늘 문을 열고 성령의 임재함을 보여주십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도 나라가 어수선합니다. 지금 이 시기 우리가 해야 할 성탄 정신은 바로, 하나 됨, 하나 되려는 노력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어 성탄으로 오신 주의 축복을 마음껏 누리는 복된 성탄절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