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QT_C/신앙_QT_C_시편

231211_QT_C_시편10편_여호와여 어찌하여

서정원 (JELOME) 2023. 12. 11. 07:35

○ 말씀전문

1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2 악한 자가 교만하여 가련한 자를 심히 압박하오니 그들이 자기가 베푼 꾀에 빠지게 하소서

3 악인은 그의 마음의 욕심을 자랑하며 탐욕을 부리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

4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5 그의 길은 언제든지 견고하고 주의 심판은 높아서 그에게 미치지 못하오니 그는 그의 모든 대적들을 멸시하며

6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나는 흔들리지 아니하며 대대로 환난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나이다

7 그의 입에는 저주와 거짓과 포악이 충만하며 그의 혀 밑에는 잔해와 죄악이 있나이다

8 그가 마을 구석진 곳에 앉으며 그 은밀한 곳에서 무죄한 자를 죽이며 그의 눈은 가련한 자를 엿보나이다

9 사자가 자기의 굴에 엎드림 같이 그가 은밀한 곳에 엎드려 가련한 자를 잡으려고 기다리며 자기 그물을 끌어당겨 가련한 자를 잡나이다

10 그가 구푸려 엎드리니 그의 포악으로 말미암아 가련한 자들이 넘어지나이다

11 그가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의 얼굴을 가리셨으니 영원히 보지 아니하시리라 하나이다

12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가난한 자들을 잊지 마옵소서

13 어찌하여 악인이 하나님을 멸시하여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주는 감찰하지 아니하리라 하나이까

14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주는 재앙과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이시니이다

15 악인의 팔을 꺾으소서 악한 자의 악을 더 이상 찾아낼 수 없을 때까지 찾으소서

16 여호와께서는 영원무궁하도록 왕이시니 이방 나라들이 주의 땅에서 멸망하였나이다

17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사오니 그들의 마음을 준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18 고아와 압제 당하는 자를 위하여 심판하사 세상에 속한 자가 다시는 위협하지 못하게 하시리이다

 

○ 묵상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셔서 다스리시고, 환란 때에 그 다스리시는 하나님께로 피하는 자는 복이 있다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여전히 악한 자들이 활개를 치는 것처럼 보입니다. 악한 자들이 더 떵떵거리며 살고 악인들이 더 높은 권세를 얻어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본문에서 다윗이 부르짖는 소리만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세상도 그런 세상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다윗이 기도합니다. 1절입니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라며 마치 하나님이 숨으시고 안 보이는 것 같다고 합니다. 악이 판을 치고 악한 자들이 활개를 치는 세상을 바라보면 우리도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이 말을 할 때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아 체념하고 만 것일까요? 아닙니다. '여호와여 어찌하여'라는 말을 잘 음미해 보면 한탄하고 체념하는 말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이여 이제라도 부디 얼굴을 내밀고 이 세상을 다스려 달라는 간절한 소망이 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어찌하여'라는 원어의 뜻과 그 원어를 사용하셨던 분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어찌하여'라는 단어의 원어는 '라마'입니다. 이 '라마'라는 단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부르짖으셨던 단어 중의 하나입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주여 주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니이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정말 하나님께 실망하고 체념하며 한 말이었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을 끝까지 믿고 자신을 버리지 말라고 울부짖은 말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다윗이 악인들의 속성들을 속속들이 나열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다윗이 이렇게 소상하게 악인들의 심성을 잘 알고 있을까요? 여기서 우리가 묵상해 봐야 할 것은, 정말 다윗은 세상의 악한 모습만을 보고 한탄하고 울부짖은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세상의 악한 모습 보다는 오히려 다윗 자신을 되돌아 보고, 자신의 신앙의 상태를 돌아보고, 스스로에게 한탄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는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께로 피하면 복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누누히 설파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시각각 그의 진실한 내면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교만한 모습을 바라봤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골리앗을 무너뜨렸던 것도 어쩌면 때로는 자신이 잘 해서 이긴 것이라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사울 대신에 왕이 된 것도 입으로는 하나님의 기름부어주신 은혜라고 고백하지만, 때때로는 자기가 능력이 있어서, 자기가 잘 나서 왕이 된 것이라는 마음이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다윗은 자기가 말하고 행동하는 신앙과, 실제로 자기 내면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시시각각 꿈틀거리는 교만한 마음으로 갈등하고, 그 이중적인 자기 모습을 악한 자, 악인이라며, 그런 자기를 다시 세워주시기를 갈망하는 마음으로 부르짖은 '여호와여 어찌하여'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도 이런 모습으로 신앙 생활을 하고 있지 않는지 돌아보고 한탄해야 할 것입니다. 남이 보기에는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아침 저녁으로 큐티도 하고, 기도도 열심히 하고, 봉사도 열심히 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정작 내 내면의 신앙은 불신과 악심으로 가득 차 가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누구나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다윗도 이처럼 완벽하지 않아서 한탄하고 주님을 갈망하며 살았습니다. 자신의 악함을 깨닫고 그것으로부터 탈피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 그것이 신앙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이러한 모습을 깨닫고 몸부림친 방법은 '주야로 주의 말씀을 묵상하는도다' 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부족한 내 신앙을 다시 세워가는 수단으로 다윗이 했던 '주야로 주의 말씀을 묵상하는도다'를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내 부족함 내 악함으로 좌절하고 체념 할 것이 아니라, 주님을 더욱 강하게 갈망하는 '여호와여 어찌하여'를 부르짖기를 소망합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제가 제 내면을 바라보고 깨닫는 것 보다는, 하나님께서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실 것을 믿습니다. 저의 부족함과 악함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교만함으로 채워져 가는 제 삶의 모습을 깨닫게 하시고, 다시 눈을 하나님께로 돌려 선한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저의 내면의 더러움을 바라보는 거울로 성경을 더욱 가까이 하게 하시고, 나를 살피고 회개할 수 있는 기도에 더욱 많은 시간과 마음을 두게 하옵소서.

악한 마음의 뿌리까지 뽑게 하시고, 마음과 성품이 온전히 예수님을 닮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