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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8_QT_C_욥기5장_나라면

서정원 (JELOME) 2023. 9. 8. 09:20

○ 말씀전문

1 너는 부르짖어 보라 네게 응답할 자가 있겠느냐 거룩한 자 중에 네가 누구에게로 향하겠느냐

2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하느니라

3 내가 미련한 자가 뿌리 내리는 것을 보고 그의 집을 당장에 저주하였노라

4 그의 자식들은 구원에서 멀고 성문에서 억눌리나 구하는 자가 없으며

5 그가 추수한 것은 주린 자가 먹되 덫에 걸린 것도 빼앗으며 올무가 그의 재산을 향하여 입을 벌리느니라

6 재난은 티끌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고생은 흙에서 나는 것이 아니니라

7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으니 불꽃이 위로 날아 가는 것 같으니라

8 나라면 하나님을 찾겠고 내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리라

9 하나님은 헤아릴 수 없이 큰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시나니

10 비를 땅에 내리시고 물을 밭에 보내시며

11 낮은 자를 높이 드시고 애곡하는 자를 일으키사 구원에 이르게 하시느니라

12 하나님은 교활한 자의 계교를 꺾으사 그들의 손이 성공하지 못하게 하시며

13 지혜로운 자가 자기의 계략에 빠지게 하시며 간교한 자의 계략을 무너뜨리시므로

14 그들은 낮에도 어두움을 만나고 대낮에도 더듬기를 밤과 같이 하느니라

15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강한 자의 칼과 그 입에서, 또한 그들의 손에서 구출하여 주시나니

16 그러므로 가난한 자가 희망이 있고 악행이 스스로 입을 다무느니라

17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18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의 손으로 고치시나니

19 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

20 기근 때에 죽음에서, 전쟁 때에 칼의 위협에서 너를 구원하실 터인즉

21 네가 혀의 채찍을 피하여 숨을 수가 있고 멸망이 올 때에도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22 너는 멸망과 기근을 비웃으며 들짐승을 두려워하지 말라

23 들에 있는 돌이 너와 언약을 맺겠고 들짐승이 너와 화목하게 살 것이니라

24 네가 네 장막의 평안함을 알고 네 우리를 살펴도 잃은 것이 없을 것이며

25 네 자손이 많아지며 네 후손이 땅의 풀과 같이 될 줄을 네가 알 것이라

26 네가 장수하다가 무덤에 이르리니 마치 곡식단을 제 때에 들어올림 같으니라

27 볼지어다 우리가 연구한 바가 이와 같으니 너는 들어 보라 그러면 네가 알리라

 

○ 묵상

욥의 친구인 엘리바스의 말이 4장에 이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내용은 모두 맞는 말입니다. 우리가 새겨 들어야 할 좋은 말씀입니다. 세상살이를 하면서 또 신앙생활을 하면서 도움이 되고 길잡이가 될 수 있는 말씀들입니다. 

이런 좋은 말씀을 들려주는 것이 주요한 주제라면, 왜 엘리바스기라고 하지 않고 욥기라고 했을까요? 거기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또 다른 목적과 의도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그런 면에서 오늘의 말씀을 엘리바스가 아닌 욥의 입장에서 깊이 생각헤 보았습니다.

얼마전에 늦게 귀가하여 잠시 TV를 틀었더니 '돌아온 SOLO' 인가 라는 프로를 잠시 본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혼 경력이 있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서로 서로 대화를 해 보게 하며, 호감을 갖게 되는 사람을 만나게 하는 프로그램 같았습니다. 내가 본 때는 영숙이라는 사람과 영식이라는 사람, 그리고 광수라는 사람이 나왔습니다. 영식이라는 사람은 영숙이에게 관심을 갖고 있었고, 영숙은 오히려 광식이라는 사람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광식이라는 사람도 영숙이에게 호감이 있었고요. 그런데 프로그램에 따라 그날은 영숙과 영식이 만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영식이는 어떻게든 영숙의 관심을 끌어보려고 애를 쓰다가, 오히려 영숙의 상처를 건드리게 되었고, 영숙은 화가 나서 택시를 불러서 타고는 홀로 숙소로 돌아가 울고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옥숙이라는 사람과 대화를 하고 있던 광식은 자신이 호감을 가지고 있던 영숙이 심상치 않은 모습으로 숙소로 들어가자, 옥숙과의 대화를 일찍 끝내고 숙소에 있는 영숙을 찾아가 위로를 했습니다. 그런데 영숙이 힘들어 하는 이유를 듣고는 영식이가 한 말을, 광식의 말을 고깝게 여기지 않고 들어면 그닥 기분나쁜 얘기가 아닐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영숙은 그게 자기를 위로하는 말이냐고 받아쳤습니다. 그러자 광식은 옳지 않은 행동에 대해서는 바로 고쳐주어 깨닫게 해주는 것이 맞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결국 광식은 곧바로 영숙에게서 쫓겨났습니다.

아내가 귀가하여, 대인 관계로 속상해 할 때, 우리는 냉정한 기준에서 오히려 아내에게 훈시를 하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차후에 또다시 그런 속상함을 당하지 않게 예방해 주려는 마음에서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발단이 되어 오히려 부부사이에 냉냉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끔 부부간에 다툼을 하고 나서 아내가 하는 말이 있습니다. 당신 말은 다 맞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그렇게 말해야만 하느냐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엘리바스가 하는 말은 다 맞습니다. 그러나 지금 욥에게 필요한 위로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욥은 엘리바스가 하는 그 말씀처럼 살아왔고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칭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교육을 통해서, 경험을 통해서 많은 지식을 쌓게 됩니다. 그리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삶이 바람직한 삶이라는 것을 깨닫고 살아갑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의 논리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이 세상의 논리가 맞다고 여기면 신앙이라는 것은 필요 없을 것입니다. 신앙이 필요하고 하나님이 필요한 것은, 세상의 논리와 합리를 뛰어넘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세상의 논리 위에 있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논리입니다.

세상의 지식과 논리에 가장 강한 사람들이 엔지니어들입니다. 엔지니어들은 수학 공식처럼 삶을 생각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래서 공학도 출신들에게 전도하는 것이 제일 어렵다고 합니다. 나도 공학도 출신이라서 아직도 공학적이고 과학적인 관점에서 신앙을 바라보는 경향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내가 빨리 벗아나야 할 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상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만 사는 곳이 아닙니다. 논리로 깨우쳐주는 것 보다, 사랑으로 위로하고 감싸주는 것이 필요할 때가 많습니다. 그것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고집스럽게 버티던 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불러서 하나님 자녀되게 해주신 은혜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세상의 이치와 합리성을 기반으로 생각하고, 위로보다는 깨우쳐주려는 모습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엘리바스처럼 내 지식과 세상지혜를 드러내어, 아픈 자를 더 아프게 하는 자로 살지 않게 하옵소서.

가족과 이웃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시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