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06_QT_C_욥기3장_어찌하여, 거기서는
○ 말씀전문
1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
2 욥이 입을 열어 이르되
3 내가 난 날이 멸망하였더라면, 사내 아이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더라면,
4 그 날이 캄캄하였더라면, 하나님이 위에서 돌아보지 않으셨더라면, 빛도 그 날을 비추지 않았더라면,
5 어둠과 죽음의 그늘이 그 날을 자기의 것이라 주장하였더라면, 구름이 그 위에 덮였더라면, 흑암이 그 날을 덮었더라면,
6 그 밤이 캄캄한 어둠에 잡혔더라면, 해의 날 수와 달의 수에 들지 않았더라면,
7 그 밤에 자식을 배지 못하였더라면, 그 밤에 즐거운 소리가 나지 않았더라면,
8 날을 저주하는 자들 곧 리워야단을 격동시키기에 익숙한 자들이 그 밤을 저주하였더라면,
9 그 밤에 새벽 별들이 어두웠더라면, 그 밤이 광명을 바랄지라도 얻지 못하며 동틈을 보지 못하였더라면 좋았을 것을,
10 이는 내 모태의 문을 닫지 아니하여 내 눈으로 환난을 보게 하였음이로구나
11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내 어머니가 해산할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
12 어찌하여 무릎이 나를 받았던가 어찌하여 내가 젖을 빨았던가
13 그렇지 아니하였던들 이제는 내가 평안히 누워서 자고 쉬었을 것이니
14 자기를 위하여 폐허를 일으킨 세상 임금들과 모사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요
15 혹시 금을 가지며 은으로 집을 채운 고관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며
16 또는 낙태되어 땅에 묻힌 아이처럼 나는 존재하지 않았겠고 빛을 보지 못한 아이들 같았을 것이라
17 거기서는 악한 자가 소요를 그치며 거기서는 피곤한 자가 쉼을 얻으며
18 거기서는 갇힌 자가 다 함께 평안히 있어 감독자의 호통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19 거기서는 작은 자와 큰 자가 함께 있고 종이 상전에게서 놓이느니라
20 어찌하여 고난 당하는 자에게 빛을 주셨으며 마음이 아픈 자에게 생명을 주셨는고
21 이러한 자는 죽기를 바라도 오지 아니하니 땅을 파고 숨긴 보배를 찾음보다 죽음을 구하는 것을 더하다가
22 무덤을 찾아 얻으면 심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나니
23 하나님에게 둘러 싸여 길이 아득한 사람에게 어찌하여 빛을 주셨는고
24 나는 음식 앞에서도 탄식이 나며 내가 앓는 소리는 물이 쏟아지는 소리 같구나
25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26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
○ 묵상
욥의 울부짖음입니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아픈지를 잘 나타내주는 단어를 11절과 12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내 어머니가 해산할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무릎이 나를 받았던가 어찌하여 내가 젖을 빨았던가" 바로 '어찌하여'입니다. 4번이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이런 경우를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욥 정도는 아니더라도 아프고 힘든 고난을 맞이 할 수도 있고, 욥 보다도 더한 고통 속에 놓일 때도 있습니다. 아무리 잘 나가고 운이 좋은 인생을 사는 사람일지라도 평생 아프고 힘든 상황을 피해 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한 '어찌하여' 라는 환경에 놓였을 때, 사람마다 반응이 다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역임했던 김은경교수의 가정사가 세상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이 어떻게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부부싸움 결과 순간적인 감정으로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죽었다는 사실을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 회사를 운영하는 사장이었고, 부인은 유명 대학의 교수였던, 누가 봐도 잘 사는 가정 안에서도 이렇게 순간적인 극단선택을 하게 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인간은 '어찌하여'라는 환경에 직면할 때 극단적인 방법으로 치닫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몇 년 전에 직원 성희롱 문제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전 서울시장 박원순 시장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이목을 두려워하여 그는 야산으로 올라가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어찌하여'라는 환경 앞에서 극단적인 길로 치닫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구든 '어찌하여'라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이러한 한탄과 울부짖음을 내 뱉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욥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을 빼앗아 가고, 온 몸에 종기가 나서 사기조각으로 몸을 긁어야 하는 아픔 속에서 그가 내뱉는 울부짖음은 인간으로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예수님도 그 울부짖음을 터뜨린 적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7장 46절입니다.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한탄과 울부짖음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 상황에 대한 돌파구를 어디서 찾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욥은 친구들 앞에서 이러한 한탄을 울부짖고, 그 돌파구를 '거기서는'에서 찾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17절부터 19절에서 '거기서는' 이라는 것을 4번 거듭 부릅니다. "거기서는 악한 자가 소요를 그치며 거기서는 피곤한 자가 쉼을 얻으며 거기서는 갇힌 자가 다 함께 평안히 있어 감독자의 호통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거기서는 작은 자와 큰 자가 함께 있고 종이 상전에게서 놓이느니라"
당연히 '거기서는' 이라는 곳은 내세이며, 하나님 앞입니다. 그는 자신의 신세를 실컷 한탄하고는 결국은 하나님이 피할 곳이요 소망할 곳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도 욥의 이러한 신앙을 보고, 아무리 힘든 '어찌하여'하는 고난이 찾아오더라도, 극단적인 선택으로 치달을 것이 아니라, '거기서는'이라는 곳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부르고 찾아야 하겠습니다. 오직 하나님 만이 우리의 날개요 바위요 은신처가 됩니다.
○ 묵상
하나님 아버지!살아가면서 '케세라세라'(될대로 되라) 라는 마음을 가졌던 적이 수없이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어떨 때는 그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원망하는 마음으로 사는 경우도 있었고, 하나님을 생각하고 다시 일어선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용기와 힘을 주셨던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드립니다.앞으로도 그 어떠한 '어찌하여'라는 상황이 닥쳐 오더라도, 극단적인 생각으로 흐르지 않고, '거기서는' 이라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도와주옵소서. 모든 것을 용서하시고 지켜주실 것을 믿게 하옵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