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30409_설교정리_식어진 열정을 다시 회복하려면 (눅 24:31~34)

서정원 (JELOME) 2023. 4. 9. 20:40

○ 말씀 전문

[누가복음 24장 31~34절]

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33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 받은 말씀

우리는 [엠마오 마을로 가는 두 제자]라는 찬양을 자주 듣곤 합니다.

오늘은 그 찬양을 같이 읽고 시작하고자 합니다.

 

엠마오 마을로 가는 두 제자

절망과 공포에 잠겨 있을때

주예수 우리들에게 나타 나시사

참되신 소망을 보여주셨네 

이세상 사는길 엠마오의 길

끝없는 슬픔이 앞길을 막으나

주예수 우리들에게 나타나시사

새소망 주심을 믿사옵니다.

 

엠마오를 향해 가던 두 제자의 첫 모습은 '슬픈 빛'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7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그들이 가는 길은 절망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확인한 후의 그들의 모습은 '마음이 뜨겁지 않더냐'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32절입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마음이 뜨겁다는 다는 것은 '불탄다', '가슴이 뛴다' 라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그들이 가는 길은 가슴이 뜨겁게 뛰는 길로 바뀌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깨닫고자 하는 것은,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내려가는 그들의 얼굴에는 왜 슬픈 빛이 가득했으며, 그 슬픈 빛의 얼굴이 언제 뜨겁게 변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왜 슬픈 빛을 띄고 있었을까요?

 

1. 영적인 눈이 어두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예수님의 열 두 제자는 아니지만,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면서 예수님을 봐 왔고 예수님이 사흘 만에 부활할 것이라고 들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소망을 잃고 예루살렘을 떠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이 허무하게 끝나버린 것 같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절망하고 낙담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는 그 길에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동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예수님을 알아보지 보지 못하고, 여전히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가까이서 동행했으나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함께 하고 있음을 알았다면 그들은 그들이 하고 있던 슬픈 빛을 벗었을 것입니다. 

왜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성경은 그들의 눈이 가리워져서 라고 했습니다. 13절부터 16절입니다.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가리워져서'라는 말은 에크라툰토 인데 '억제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탄 마귀에 의해 보는 눈이 가리워졌다는 뜻입니다. 영적인 눈이 어두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적 눈이 어두워져 있으면 하나님이 곁에 계셔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늘 힘들거나 절망적으로 됩니다. 얼굴에 슬픈 빛이 가득한 삶을 살게 됩니다. 

종교개혁가인 마틴 루터가 낙심하여 주저앉아 있을 때, 그의 아내가 상복을 입고 그의 앞에 앉았습니다. 의아해 하는 루터에게 그녀는 "하나님께서 돌아가신게 틀림없습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당신이 그렇게 낙담해 있을 리가 없습니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제서야 루터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첫째는 세상일에 바빠서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둘째는 사탄 마귀에 놀아나서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힘들고, 암울하고, 낙심하여 얼굴에 근심이 가득합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창세기 28장 15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신명기 31장 8절도 보겠습니다. "그리하면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그렇습니다. 주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습니다. 그 주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주님이 항상 내 곁에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영적인 눈을 뜨고 있어야 합니다. 

 

2. (슬픈 빛을 벗고 다시 뜨거워지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입니다.

누가복음 24장 30~31절입니다.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날이 저물어 그들은 예수님께 강권하여 함께 유숙하게 됩니다. 식사시간에 예수님이 떡을 가지고 축사한 후 떼어서 그들에게 줄 때, 비로소 그들은 그가 예수님임을 깨닫게 되지만 그때는 이미 예수님이 보이시지 않았습니다. 

그제서야 그들은 낮의 일을 상기했습니다. 32절입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슬픈 빛을 띄고 있던 그들의 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던 낮의 일을 기억해 내었습니다. 언제 뜨거워지기 시작했을까? 25절부터 27절입니다.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그것은 예수님이 성경 말씀을 주실 때였습니다. 말씀이 다시 들리기 시작했을 때였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도 복음을 읽고 들을 때, 다시 뜨거워집니다. 

그렇다면 듣는다는 것은 어떤 상태를 의미할까요? 골로새서 1장 6절이 잘 설명해 줍니다.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다'가 될 때를 의미합니다. 말씀을 듣고, 저게 이런 뜻이구나, 내게 이런 말씀을 주시는구나 라고 느낄 때 비로소 듣게 된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내 마음판에 새겨지는 것을 '레마'라고 합니다. 다시 뜨거워지려면 들은 말씀이 내게 레마의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좌절 할 때도 있습니다. 무기력해질 때도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 일터에서 물러나게 되면 마치 죽음을 기다리는 인생처럼 느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얼굴에는 기쁨이 사라지고 늘 슬픈 기색으로 가득할 수도 있습니다. 무의미한 삶으로 떨어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건 낭비의 인생입니다. 다시 뜨거워져야 합니다. 그러려면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통해 기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3. (이제는) 다시 한번 사명을 발견할 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뜨거워진 그 제자들은 엠마오로 가던 길을 멈추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게 됩니다. 33절부터 35절입니다.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이미 마음이 뜨거워진 그들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전에 예수님으로부터 받았던 '사람 낚는 어부'의 사명을 떠올렸습니다. 45절부터 48절입니다.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그들은 그들의 미션과 사명과 비전을 바라보게 됩니다. 

미션과 사명과 비전을 바라본 그들은 52절부터 53절과 같이 변화되었습니다.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슬픈 빛을 지녔던 그들이 큰 기쁨을 되찾고 늘 하나님을 섬기고 찬양하는 삶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오프라 윈프리는 [이것이 사명이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첫째, 남들보다 더 가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이다.
둘째, 남들보다 더 아픈 상처가 있다면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사명이다.
셋째, 남들보다 더 설레는 꿈이 있다면 그것은 망상이 아니라 사명이다.
넷째, 남들보다 더 부담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강요가 아니라 사명이다.

우리가 어떤 환경, 어떤 상황에 놓여 있더라도, 그 속에서 내 사명을 찾아내고 인식하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우울하거나 낙담하여 슬픈 빛을 띄우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주신 뜨거운 마음이 바탕이 된, 가슴 뛰는 사명을 향해 달려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낙담은 인생의 낭비입니다. 슬픈 빛은 실패자의 길로 인도합니다. 그 길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다시 뜨거움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뜨거움으로 내게 주어진 사명을 찾아내고 그 사명을 향해 질주 할 때, 우리는 가치있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