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30312_설교정리_사탄이 쏘는 불화살을 방어하라 (느 4:1~3)

서정원 (JELOME) 2023. 3. 13. 08:28

○ 말씀전문

1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들을 비웃으며

2 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 앞에서 일러 말하되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일을 마치려는가 불탄 돌을 흙 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하고

3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있다가 이르되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하더라

 

○ 받은 말씀

인생은 전쟁이라고들 합니다. 그 만큼 세상을 살아가기가 치열하고 힘들다는 얘기일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삶을 전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과는 좀 다릅니다. 성경은 삶을 영적 전쟁이라고 합니다. 육체적 싸움을 넘어서는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메세지 성경에서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싸움은 잠깐 출전해서 쉽게 이기고 금세 잊고 마는 한나절의 운동 경기가 아닙니다. 이 싸움은 지구전, 곧 마귀와 그 수하들을 상대로 끝까지 싸우는 사느냐 죽느냐의 싸움입니다." 이기고 지는 운동경기가 아니라 끝까지 싸우는 사느냐 죽느냐의 싸움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영적 전쟁에서 지면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이 영적전쟁에서 승리하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성을 재건하는 느헤미야에게 산발랏과 도비야가 본격적으로 방해를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영적인 도전입니다. 이 영적 도전에 대해 느헤미야가 어떻게 대응하는가를 보면서, 우리도 어떻게 사단의 영적 도전을 이겨낼 지 깨닫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성경이 말해주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1. 사단이 쏘는 영적인 불화살들을 잘 막아내야 합니다

영적 도전 앞에서 우리는 무작정 두려워하기만 해서는 않됩니다. 그렇다고 무관심해서도 안됩니다. 1절과 2절에서 어떠한 모습의 사단의 공격이 있는지 그 예를 보여 줍니다. 사단의 공격은 조롱하고 비웃고 갑작스럽게 화를 내는 모습으로 우리를 공격합니다. 이러한 공격을 잘 대처하지 못하면 우리를 낙심하게 하고, 낙담하게 하고 절망하고 좌절하게 합니다. 우리의 영에 틈이 생기기 시작하게 됩니다. 

틈이 생기기 시작하면 가까운 곳부터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쉬운성경 10절과 11절입니다. "그 때, 유다 백성이 이렇게 말했다. 일꾼들이 지쳐 가고 있다. 온통 먼지와 흙더미뿐이다. 우린 이제 성벽 쌓는 일에 지쳤다. 더구나 우리의 원수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아무도 모르게 유다 사람들을 죽여 버리고 그들이 하던 일을 그만두게 할 것이다" 사단의 공격을 받으면 우리 입술에 "지쳤다. 피곤하다. 죽겠다" 라는 말이 붙어다닙니다. 이런 마음이 들 때, 이런 말이 저절로 튀어나오면 우리는 사단의 영적 공격 앞에 서 있지 않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이러한 사단의 공격을 성경은 '악한 자의 불화살'이라 합니다. 에베소서 6장 16절입니다.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당시 로마에서는 3종류의 화살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일반적인 화살입니다. 두번째는 화살 촉의 끝에 화약을 묻혀서, 화살이 과녁에 부딪히면 터지게 되어 있는 화살입니다. 세번째는 화살 촉에 불을 붙여서 쏘는 화살입니다. 이것이 적진에 꽂히면 온 적진을 불태워버립니다. 사단의 화살을 이 불화살에 비유한 것은, 사단의 화살에 맞으면 공동체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은 불화살을 '의심, 낙담, 참소, 불순종, 배반, 탐욕, 악의, 두려움'을 쏱아붓는 화살로 그 정체성을 표현 했습니다. 이 땅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뭐라고', '집사가 무슨 힘이 있나' 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 불화살을 잘 막아내지 못하면 이와 같은 상처를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불화살을 잘 막아내야 합니다.

치열한 영적 전투장에서 우리는 불화살의 타겟이 되기도 하지만 불화살을 옮기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사단이 쏜 불화살에 맞아 두려워하는 말, 낙심시키는 말을 전염시키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비웃는 말, 조롱하는 말을 퍼뜨리는 사단의 동조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말 때문에 무너지는 성도들이 부지기수로 많음은 우리가 불화살을 잘 막아내지 못하고, 잘 대응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단의 불화살을 잘 막아내려면 마음의 전쟁터를 튼튼히 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전쟁터는 마음에 있습니다. 잠언 4장 23절입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비웃는 말이든 조롱하는 말이든, 사단의 공격에 휘둘리지 않는 마음 판이 되지 않도록 단단히 해야 하겠습니다. 단단한 마음 판으로 그 어떤 사단의 불화살도 거뜬히 이겨내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영적인 불화살을 막는 믿음의 방패가 있어야 합니다

영적 싸움에서 사단의 불화살을 잘 막아내려면 단단한 마음 판을 가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 단단한 마음판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그것은 믿음의 방패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로마시대에는 두 종류의 방패가 있었습니다. 의전용 혹은 전시용 방패가 있었고, 또 하나는 실전용 방패가 있었습니다. 실전용 방패는 전쟁에서 목숨을 막아주는 방패였습니다. 이 실전용 방패는 높이 1.2m정도에 폭이 70Cm 정도 되는 네모난 모양의 방패였습니다. 맨 안쪽은 나무 판재로 되어 있고, 그 겉에 6겹 정도의 가족을 입혔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방패 관리였습니다. 관리를 소홀히 하여 방치하면 갈라지거나 터져서 방패로서의 구실을 제대로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병사들은 평소에도 늘 올리브 기름을 바르고 수없이 문지러는 작업을 했습니다. 이렇게 잘 관리를 해야만 전시에 자기의 목숨을 지켜주게 됩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전쟁이 일어나면 기습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는 드물고, 언제쯤 싸움이 시작될 것이라는 것을 대충 알았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사전에 10시간 정도 방패를 물에 담궈두었습니다. 젖은 방패라야 적의 불화살에 맞더라고 그 불이 방패의 물기로 인해 인해 꺼지기 때문입니다. 

이 방패가 우리에게 주는 메세지는 '우리의 영적인 삶도 평소에 잘 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단의 불화살이 날아왔을 때를 대비하여 철저하게 전쟁할 준비를 해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산발랏과 도비야의 영적 공격을 맞아 어떤 방패를 준비했을까요? 4절입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하건대 그들이 욕하는 것을 자기들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어땧습니까?  시선을 하나님께 두었습니다. 조롱 앞에서도 시선을 오직 하나님께 두었습니다. 20절입니다. "너희는 어디서든지 나팔 소리를 듣거든 그리로 모여서 우리에게로 나아오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울 것을 믿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방패는 바로 시선이고 믿음입니다. 우리의 마음 판을 단단히 하는 것은 믿음을 단단히 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그 어떤 불화살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3. 깨어있는 영성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 전쟁의 특징은 한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4장 중에서도 산발랏과 도비야의 도전은 한번에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공격해 왔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한번 물리쳤다 해서 해이해지는 것이 아니라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어떻게 산발랏과 도비야를 대응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4장 16절과 17절입니다. "그 때로부터 내 수하 사람들의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가졌고 민장은 유다 온 족속의 뒤에 있었으며, 성을 건축하는 자와 짐을 나르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성을 건축하는 일을 하면서도 한손으로는 병기를 잡고 일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말하는 병기는 영적인 병기, 즉 하나님을 붙잡는 마음이라고 보면 됩니다.

또한 21절부터 23절에서도 "우리가 이같이 공사하는데 무리의 절반은 동틀 때부터 별이 나기까지 창을 잡았으며, 그 때에 내가 또 백성에게 말하기를 사람마다 그 종자와 함께 예루살렘 안에서 잘지니 밤에는 우리를 위하여 파수하겠고 낮에는 일하리라 하고, 나나 내 형제들이나 종자들이나 나를 따라 파수하는 사람들이나 우리가 다 우리의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각각 병기를 잡았느니라"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습니다. 늘 깨어 있었습니다.

이 시대 우리도 느헤미야가 그랬던 것처럼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삶, 말씀 앞에서, 예배 앞에서, 기도 앞에서 깨어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깨어 있는 삶을 사는 이 한주가 되기를 바랍니다.

'깨어 있어라' 라는 뜻을 존 오웬은 이렇게 정의를 했습니다. "사단의 파고듬을 잘 살피는 것, 사단의 놀음에 얽혀들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너지는 것은 순간입니다. 그러므로 늘 깨어 있어서, 사단에게 틈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의 이 시대, 우리는 특별히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넷플릭스를 통해 '나는 신이다' 라는 프로에서 보았듯, 이단들의 무서운 도전 아래 놓여 있는 이 시대입니다. 지난해 대구에서는 이단인 신천지가 대구 운동장에 모여 십만성도 수료식을 가졌습니다. 그 영상을 보면서 머리가 쭈삣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그냥 무심하게 넘어가도 될 것입니까? 이런 세상이 도래해도 우리 자녀들에게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런 시대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지 고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브란은 목회자로서 "나는 태어날 때부터 심장에 화살을 꽂고 태어났나 보다 빼려고 해도 아프고 가만히 둬도 아프다" 라고 했습니다. 이 시대 목회자들의 마음을 아주 잘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목회자 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마음에 담아야 하는 현실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하는 사명이 아닌가요?

베드로전서 4장 7절입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라고 했습니다. 이 한주 깨어 기도하는 한주가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