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13_설교정리_내 이름 아시죠 (눅 19:1~4)
○ 말씀전문
[누가복음 19장 1절~4절]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 말씀요약
이율구님의 [세상을 사는 지혜] 라는 찬양시가 있습니다.
하늘을 볼 겨를도 없이
정신없이 세상을 살다가
마음의 먹먹함이 내 삶을 짓누를 때
그제서야 주님을 찾습니다
행복을 느낄 겨를도 없이
분주하게 세상을 살다가
인생의 허무함이 내 삶을 짓누를 때
그제서야 주님을 찾습니다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열심히는 사는데, 행복을 느낄 새도 없이 분주하게 살다가, 어느날 문득 허무함을 느끼게 되는 삶, 우리의 삶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말씀은, 세리장으로 열심히 살았던 삭개오, 같은 민족으로부터 매국놈, 도둑놈, 로마에 빌붙어서 동족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놈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살아온 그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계기를 맞이하는 장면입니다. 돈 밖에 모르던 그가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고, 다른 사람들을 섬기게 되는 변화의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우리는 '사람은 안 변한다'고 들어왔습니다. 잠깐 변한 척 해 보일 수는 있어도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고들 합니다.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겠다고 작정하며 수년간 신앙생활을 한 자신이, 어느날 또 옛날 성격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도 '사람은 참 변하지 않는다' 라는 것을 실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릅니다. 성경은 변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예수 안에서 변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예가 오늘 삭개오입니다. 그럼 인생의 변화를 위한 출발, 그것을 어떻게 가능할 수 있게 하는지 본문 말씀을 묵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성경은 예수 안에서 변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 변화를 가능케 하시는 예수님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을 잘 이해하기 위해 삭개오가 새로운 변화의 출발을 하게 된 배경을 보겠습니다. 삭개오란 '순수하다, 거룩하다' 라는 의미의 이름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비난을 받는 세리장이었습니다. 오직 돈만 우선시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돈만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악랄하게 세금을 거두었던 세리의 장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는 늘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돈은 긁어 모았지만 행복과 감사와 기쁨이 없었습니다. 열심히 살았지만 허무함이 찾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들려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예수라는 사람은 가진 것이 없는 데도 참평안을 누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 예수가 궁금해졌습니다. 3,4절입니다.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예수님이 어떤 사람인가가 궁금했습니다. 얼굴이라도 보고싶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에 대해 알고 싶음이었습니다. 이 삭개오의 사모함, 영적 사모함이 그에게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인간의 만족하지 못하는 갈망]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만족하지 못하는 갈망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이정표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영적인 존재이기에 우리의 갈망은 하나님에 의해서만이 만족이 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외면하고 세상이 가리키는 '잘못된 이정표'를 따르게 된다. 그 잘못된 이정표 중의 대표적인 것이 돈이다"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살았지만 허무함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해소시켜주실 수 있는 예수님에게 관심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예수님에 대해 귀를 열고 오늘 교회에 나오게 된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가만히 그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자 하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이 분들에게 분명 변화의 시작이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삶이 시작될 것을 믿습니다. 반면에 교회에 다니면서도 아직도 돈, 좋은 아파트, 토지, 아이를 위한 좋은 학원... 등에만 귀를 열고, 예수님에 대한 진정한 관심이 무디어져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는 변화의 삶은 요원하게 됩니다. 다시 예수님에 대한 갈망을 회복해야 합니다.
imbc의 대표이사를 지낸 조정만 목사님은 [왜 예수인가]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신비는 돈 벌기 위해서 건강 버리고 건강 되찾기 위해서 그 돈을 다 쓰는 거라고 합니다. 세상은 이처럼 부조리한 삶을 정상적인 삶이라고 주장합니다. 세상 풍조나 세상의 방식, 세상의 길이 답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몰려간다고 답이 아닙니다. 활짝 뚫린 대로가 빨리 갈 것 같지만 그 끝이 절벽이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는 진리가 답입니다. 성경이 답입니다" 또 이렇게 얘기 했습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예수님입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이 전부입니다. 예수님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면 신앙은 쉽고 단순해지지만 예수님을 모르면 신앙이 힘들고 복잡해집니다. 예수님에게 직접 들으면 신앙은 너무 쉽고 분명해지지만 예수님을 안다는 사람들에게서 들으며 들을수록 복잡하고 불분명합니다" 이 분은 처음부터 예수님을 믿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교회에 빠져있는 아내가 걱정이 되어 아내를 교회로부터 구출해야겠다고 교회에 발을 들였던 사람입니다. 아내를 구출하려면 예수가 누구인가를 알아야 설득이 될 것이라 생각해서 예수님에 대해 알아보고자 교회에 나간 사람이었습니다.
무신론자들의 대부분이,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들로 예수님을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배척합니다. 성경을 완독해 보지 않고 예수님을 거부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구원의 자리로 나오지 못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갈망으로 교회에 나오는 자, 그는 반드시 새로운 변화, 행복한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2.예수님과의 만남의 장애를 극복해야 합니다.
갈망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이 이루어져야지 갈망 그 자체만으로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갈망하는 것을 이루는 데는 장애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장애물이 있다면 그 장애를 극복해야만 목적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삭개오에게도 예수님을 만나는 데 장애가 있었습니다. 첫번째 장애물은 군중이었습니다. 수많은 군중 때문에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또 다른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키가 작다는 것이었습니다. 군중과 작는 키 때문에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주변에 있는 돌무화과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세리장이었던 그의 신분에 의하면 참으로 민망한 수단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장애물을 극복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있었습니다. 이 의지가 사람들의 시선에 위축되지 않게 해주었고, 그에게 예수님을 만나는 결과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도 그것을 막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시간이 안 난다. 죄가 많아서 나설 용기가 없다. 그간의 체면 때문에 나서기가 주저된다. 갖가지 장애물이 걸림돌이 되어 주저하게 만듭니다. 이것을 잘 극복해야만 우리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장애물은 잘만 극복하면 오히려 디딤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주저함을 극복한 한 여인이 생각이 납니다. 언젠가 지인의 초청으로 [마리아, 마리아] 라는 뮤지컬을 본 일이 생각납니다. 주인공인 마리아는 귀신에 씌인 여인이자 거리의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출신과 배경이 부끄러워서 감히 예수님 앞에 나서기를 망설였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마음을 굳게 먹고 예수님께 다가가 마음을 고백했습니다. "어찌 밝은 빛 앞에서 내 마음을 벗길까요? 당신의 감은 눈 앞에서 내 마음을 벗깁니다. 나의 예수님이여 나의 모든 것 나의 모든 생각 알고 있었던 나의 주님, 이젠 알아요 날 향한 그 마음 죽어 있던 내 영혼 위에 오셨죠. 당신 앞에선 그저 길 잃은 양일뿐, 몸 열어서 웃음 파는 그런 여자 아니죠. 더 이상 숨길 것도 없고 더 이상 꾸밀 것도 없고 이 모습 이대로 난 마리아죠"
우린 누구에게 마음을 열어 보일 수 있나요? 부부 간에도 마음을 열고 입을 떼기가 쉽지 않지 않나요? 진급에 누락되었다고, 회사가 어려운 지경에 놓여있다고 쉽게 입을 열어 말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힘든 일은 내려놓지 못하면 병이 됩니다. 세상 어느 누구에게 내려놓기 어려운 일도, 예수님은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그 분 앞에 나가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 됩니다. 장애물로 여기면 안됩니다. 장애물이라고 생각하면 그 어떤 문제도, 어려움도, 고민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주저함이 걸림돌일 뿐입니다. 주님 앞에 나가 내려놓으면 그것들이 오히려 예수님을 만나는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3.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모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장애물도 극복하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진정한 변화의 삶을 이룰 수 있을까요? 그것은 만난 그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내가 누구인지 어떤 상태인지 다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돌무화과 나무 위로 올라가 있는 삭개오를 예수님이 쳐다 보셨습니다. 그리고는 삭개오의 이름을 부르시며 내려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처음 만나는 삭개오의 이름까지도 알고 계셨습니다. 어디서 들은 이름도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삭개오를 '삭개오'라 부르지 않고, 도둑놈, 매국노, 로마에 빌붙어서 고혈을 빨아먹는 놈이라고 불렀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삭개오'라고 부르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들어서 아실 리가 없었습니다. 그런 삭개오에게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5절과 6절)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신 예수님을 그는 기쁜 마음으로 영접을 하였습니다. 그간 돈과 명예에 의지했던 삶을 버리고 온전히 예수님을 최고로 마음에 영접했습니다. 이것이 삭개오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하일라이트입니다.
우리에게도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이름을 불러주시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마음으로 그 주님을 영접하고 구주로 삼으시는 은혜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에 열심히 나가면 구원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교회에 열심히 나가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내 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영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다음 4가지로 정의해 볼 수 있습니다.
① 신뢰의 대상을 옮깁니다. 자신에게서 하나님, 예수님께로 옮기는 것입니다.
② 부활하여 살아계신 예수님을 마음 깊이 믿는 것입니다.
③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④ 회개하는 것입니다. 삶의 방향을 Turn 하는 것입니다.
이 4가지를 결심하고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영접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기다리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기독교 음악가인 토미 워크는 필리핀의 한 고아원에서 한 소년을 만났습니다.
"내 이름은 토미야, 반가워"
"제 이름은 제리에요. 우린 친구 맞죠?"
그가 그곳에 가서 그 아이를 만날 때마다 그는
"제 이름은 제리에요. 우린 친구 맞죠?'
그는 왜 이 아이가 자기를 만날 때마다 이처럼 '제 이름은 제리에요. 우린 친구 맞죠?' 라고 묻는지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곤 그 아이에게 있어서 자기 이름이 자기 존재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곤 그에게 말했습니다. "제리야! 나도 네 이름을 알지만, 나보다 훨씬 위대하신 분이 제리의 이름을 알고 계신단다. 그 분은 네 이름을 결코 잊어버리지 않는, 너를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란다. 하나님은 너를 그의 손바닥에 새겼고 너를 결코 잊지 않으신단다" 그에게 이사야 49장 16절을 생각났습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이 때의 영감으로 그는 찬송가를 지었습니다. 바로 "내 이름 아시죠 He knows my name" 입니다.
나를 지으신 주님 내 안에 계셔
처음부터 내 삶은 그의 손에 있었죠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내 흐르는 눈물 그가 닦아주셨죠
그는 내 아버지 난 그의 소유
내가 어딜 가든지 날 떠나지 않죠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아바라 부를 때 그가 들으시죠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예수님을 정확히 영접했을 때 사람은 변할 수 있다고. 우리는 완벽하지 않은 우리 자신, 부족한 내 모습을 깨닫고 새롭게 변하기를 원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변할 수 있음은 바로 예수님을 갈망하고, 그 예수님을 만나고, 그 예수님을 영접할 때 분명히 변하게 됩니다. 그 소망을 안고 새롭게 성숙해져 가는 이 한 주를 승리하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