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25_설교정리_우리가 사모하는 공동체(7)_Faith Mission의 Vision (히 11:6)
○ 말씀전문
[히브리서 11장 6절]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 설교요약
Faith Mission은 일명 자비량 선교라 부릅니다. 자급자족을 하면서 선교를 한다는 의미입니다. 좀 더 세부적으로 정의를 해보면, '페이스 미션은 내 통장으로 매달 급여가 입금되느냐 안되느냐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돈을 누가 주는지 정확하게 고백하는 것에 달려있습니다. 교회에서 월급을 준다 해도 "이 돈은 하나님이 교회를 통해 제게 주시는 것입니다" 라는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이 바로 페이스 미셔너라고 생각합니다' 비단 교회에서 주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서 받는 것일지라도 '이것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주시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면 그는 페이스 미셔너입니다.
공동체의 사전적 의미는 '생활이나 행동 또는 목적 따위를 같이 하는 집단'이라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전적 의미 보다도 공동체로서 중요한 것은 Faith, 즉 신뢰, 믿음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교회도 갈수록 신뢰가 말라 가고 있습니다. 교회가 믿음 공동체로서 제 위상을 회복하려면 무엇 보다도 신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교회에 Faith Mission이 바로 서야 합니다. 신뢰와 믿음이 바탕이 된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럼 신뢰가 바탕이 된 공동체, 신뢰가 기반이 되는 인생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먼저 믿어야 할까요?
1.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프랑스 수도자인 샤를르 드 푸코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가장 어려운 것이고 가장 부족한 것이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반대로 얘기하면 하나님을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 보다도 하나님을 믿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언젠가 자녀들을 데리고 시골에 갔을 때입니다. 부모님과 이웃 분들과 인사를 나누다가 얼굴을 돌려 아이들을 찾으니, 어느새 이웃 집 옹벽 위에 올라가 있었습니다. 위험하기 그지 없는 곳이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나는 그곳으로 달려가면서 "ㅇㅇ야, 뛰어내려!" 라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큰 아이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향해 뛰어 내렸습니다. 그때 느꼈습니다. 이 아이가 정말 아빠를 믿는구나 라고 말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도 놀라게 한 진정한 믿음들이 있습니다. 그 본보기가 누가복음 7장 6절부터 9절에 나와 있습니다.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제자훈련 2학기 교재로 사용하고 있는 헨리 블랙가비의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벤쿠버 박람회를 2년 앞두고 박람회에 참석할 200만명 전도계획을 수립하였습니다. 당시 벤쿠버 전체의 교인 수는 고작 2,000명이었습니다. 2,000명이 다 동원되어도 200만명에게 전도를 한다는 계획은 어쩌면 무모한 계획이었습니다. 게다가 계획에 사용할 예산도 턱없이 모자랐습니다. 첫 해 수입은 겨우 9,000달러였고, 다음해 수입도 16,000달러에 그쳤습니다. 그리고 200만명 전도에 필요한 예산은 202,000달러였습니다. 현실에 맞추어 목표를 낮출까도 생각했지만 그들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밑기고 원래의 계획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다음은 그에 대한 고백입니다. "당신은 기도로 예산을 편성할 수 있습니까? 그 답은 '예'입니다. 그때 비로소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무언가를 시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개 어떻게 합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만 실제적인 예산을 세웁니다. 우리가 정말 믿고 사용하는 것은 역시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의 예산 정도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로 우리는 하나님이 정말 무엇을 해주시기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그 박람회 기간 동안 우리를 통해 인도하신 모든 것을 하게 하시고 그것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기를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해가 끝나갈 무렵, 저는 우리 회계에게 우리가 얼마만큼의 헌금을 받았는지 물었습니다. 캐나다, 미국, 그리고 세계 각지로부터 우리는 264,000달러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신뢰를 볼 수 있습니다. 누차 얘기 하지만 우리가 일하면 우리가 일하게 되지만,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할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입니다.
2.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한번은 일식집에서 큰 은혜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후배 한 사람이 저를 일식집으로 초대를 했습니다. 회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라고 정평이 나서, 나는 그 후배가 어떻게 주문하는지를 유심히 바라봤습니다. 그런데 그 후배가 주문한 것은, 그냥 단순한 한마디 뿐이었습니다. '오마카세' 였습니다. '오마카세'는 '주방장에게 모든 것을 믿고 맡깁니다' 라는 말입니다. 이 주문을 보고 저는 사람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좋은 대접을 하게 만드는지 깨달았습니다.
교회에는 사람에 대한 신뢰가 깨어져서 오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참으로 마음이 아플 때가 많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설교를 아무리 잘 해도 귀에 그 말씀이 들어올 리가 없습니다. 갈수록 마음이 매말라지고 영이 팍팍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우리가 보여주어야 할 것은 명확합니다.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약점을 파악해서 깨닫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진정으로 믿고 신뢰해 주고 격려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울에게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 더해 좋은 동역자를 가진 것이 큰 힘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의 복은 십자가의 복과 좋은 동역자의 복이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16장 1절과 2절입니다.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 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 라고 고백했습니다. 로마서 16장 3절과 4절에서도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성도들의 복은 좋은 목회자를 만나는 것입니다. 목회자의 복은 좋은 성도를 만나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총회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경주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아주 귀한 분을 만나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 분은 제가 신학교 1학년인 1992년에 잠시 사역을 했던 교회의 담임목사님이었습니다. 그 교회에서 섬길 때, 그 분은 제게 청소년부와 성가대 지휘를 맡기셨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지휘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그래서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고 연습도 엄청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성가대 앞에 서기만 하면 땀이 비오듯 했습니다. 사람들은 저보고 실력은 별로인데 정말 열심히는 한다고 수군거렸습니다. 제가 지휘하곤 거리가 멀다는 것을 그 분도 아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난관을 통해 인내심을 갖게 해주셨고 끊임없는 격려로 자신감을 갖도록 해주셨음을 항상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신뢰감 덕분에 오늘의 제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분과 저 사이에 있는 신뢰와 믿음이 저의 삶을 아름답게 기억하게 해줍니다. 이처럼 사람을 신뢰하며 생긴 관계는 우리의 삶의 아름다운 열매의 하나가 되어 남습니다.
며칠전에 TV에서 '골때리는 그녀들'이라는 여성 축구 프로를 본 적이 있습니다. 마침 그때는 올스타전이었습니다. 여러 팀들 속에서 가장 잘 하는 선수들을 뽑아 청백으로 나누어서 경기를 했습니다. Best Member들로 구성이 되어 있어서 결과는 막상막하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무려 10:1로 싱겁게 끝났습니다. 그때 한 해설자의 말이 머리에 와 닿았습니다. '실력이 아니라 신뢰의 문제, 진 팀에서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깨어졌기 때문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진 팀은 미드필드가 공격수를 믿지 못해서 자신있게 공격수에게 공을 패스하지 못했고, 공격수도 자기에게 온 공을 넣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자신감 부족으로 팀웍이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공격수가 넣지 못하자 수비수들은 더욱 더 공격수에게 공을 보내지 못하고, 우왕좌용하는 모습을 계속 연출했던 것입니다.
공동체의 힘은 개개인의 실력보다도 팀웍에 있습니다. 팀웍은 구성원 간의 신뢰에 기반을 둡니다. 여성 축구에서 이 신뢰가 없었기에 나약한 팀이 되어버렸고 10:1이라는 큰 점수차로 지게 된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믿어주고 밀어주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신축하고 있는 비전에 대해서도 한 사람 한 사람의 헌금이나, 노력이 중요한 것 보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믿어주고 힘을 보태주는 것입니다.
가정을 구성하는 것도 사람입니다.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것도 사람입니다. 일터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성원들 서로를 믿고 신뢰하는 것이, 건강한 가정을 만듭니다. 건강하고 힘있는 교회를 만들어갑니다. 믿고 함게 하는 사람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3.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이무석과 이인수씨가 쓴 [스펙보다 중요한 내 아이의 자존감]이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자존감은 행복과 직결되는 문제다. 제아무리 사회적 성공을 이루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위치에 올라 있어도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행복지수가 낮다. 반면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남들 보기에는 평범한 삶을 살아도 매사에 자신이 넘치고, 매일매일이 즐겁다. 그렇다면 자존감은 언제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저자는 '튼튼한 자존감은 유년기에 어머니가 키워준다'고 말한다. 그러나 유난히 사회적 압박이 심한 우리 사회에서 엄마 아빠들은 자녀가 낙오자가 될까 봐 초조하다. 부모가 초조해지면 아이와의 관계가 나빠진다. 부모와 관계가 나쁜 아이들은 자존감이 낮을 수 밖에 없다.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인생이 되기 쉽다. 이 땅의 부모들이, 아이의 스펙을 만들어주는 것보다 아이의 자존감을 키워주는 데 더 집중하는 이유다" 좋은 학원에 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강한 자존감을 키워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자존감이 좋은 사람은 자신에 대한 신뢰가 강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사 기드온은 처음엔 겁이 많은 소신남이었습니다. 사사기 6장 11절에서 보다시피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들키지 않으려고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을 하는 자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12절), 처럼 여호와의 사자가 그들 큰 용사라고 부추겨주고 신뢰해 주었더니 미디안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는 용사가 되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보면 크게 2종류의 삶이 있습니다. 하나는 홈(Home) 경기를 하는 것처럼 인생을 사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어웨이(Away) 경기를 하는 것처럼 인생을 사는 사람입니다. 홈경기는 내 지역, 내 나라 안에서 경기를 하는 것이고, 어웨이경기는 근거지를 떠나서 경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이들에게 비유를 하면, 홈경기는 칭찬과 지지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고, 어웨이경기는 늘 핀잔받고 비교 당하거나 학대 속에서 자라가는 아이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홈경기 속에서 자란 아이는 자존감이 높아지게 되고, 어웨이경기로 자라난 아이는 자존감은 낮고 자존심만 내세우는 사람이 되기 일수입니다. 그렇담 내 자녀는 어떤 경기 속에서 자라가고 있을까요? 한번쯤 되돌아 봐야 할 일이 아닐까요?
유투브에 올라와 있는 한 영상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미국 요리경연대회에서의 영상입니다. '고든램지와 시각장애인 애플파이'라는 영상입니다. 한번 같이 보도록 하겠습니다. 시각장애인 여성이 최종 경연에서 평가받는 모습입니다. 최종 경연에서 과제로 받은 것은 그녀가 한번도 만들어본 적이 없는 애플파이였습니다. 한번도 만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그녀는 무척 당황했고, 자기가 만든 음식에 자신이 없었습니다. 고든램지가 그녀에게 파이가 어떨 것 같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쓰레기 같을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고든램지는 그녀가 만든 파이가 정말 맛있게 보인다고 했고, 냄새도 고소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랫부분도 잘 익었으며, 맛도 아주 뛰어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자신을 그만 의심해라", "더 이상 스스로에게 화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평소 엄격하기 그지 없던 고든램지의 한마디 한마디에 그녀는 감동했고 얼굴에는 웃음과 눈물이 함께 했습니다. 영상을 보는 내내 눈물이 났습니다. 우리는 이런 격려, 이런 신뢰의 말을 하며 살아가는가? 늘 부족한 면만 찾아내서 닥달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도 너무 냉혹합니다. 오랫만에 떠난 휴가지에서도 불안합니다. 내가 없는 동안 회사에서는 아무 일도 없을까? 이렇게 마음놓고 휴가를 와도 되는가? 내 자리를 지키는데 머아너스가 되는 것은 아닌가? 자신을 신뢰하지 못합니다. 그런 우리 자신에게, "너 이제 네 자신을 의심하지 말라", "너도 가끔은 행복해도 괜찮아. 너도 가끔은 쉬어도 괜찮아. 너도 가끔은 좋은 것을 누려도 괜찮아" 하며 격려하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의심과 불신 속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신뢰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진짜 하나님을 신뢰하고, 곁에 있는 내 아내와 내 자녀들을 신뢰하고, 자기 자신을 신뢰하고 지지하며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