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14_설교정리_우리가 사모하는 공동체 (1)_두 날개의 비전 (행 2:43~47)
○ 말씀전문
[사도행전 2장 43~47절]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 설교요약
데이비드 브룩스의 [두 번째 산]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사람은 인생이라는 산을 오른다고 비유했습니다. 그 첫번째 산은 '자아의 산'입니다. 성공과 부, 그리고 명예를 이루려고 노력하는 산입니다. 이 산에 오른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이게 전부인가?' 라는 허무감을 토로합니다. 그래서 다시 도전하는 것이 두 번째 산입니다. 두번째 산은 '공동체의 산' 혹은 '더불어 사는 산'입니다. 직업적 성공, 그것만이 다가 아니라는 것, 더 큰 만족감과 행복감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관심과 노력'을 선택할 때 맛볼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오늘 말씀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런 '두 번째 산'을 살아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봅니다. 함께 하는 초대교회의 모습을 회복하라는 말씀입니다. 교회가 어려울 때 돌아갈 곳은 바로 초대교회 모습입니다. 교회다운 교회, 성도다운 성도의 샘플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개척한지 벌써 5년이 되었습니다. 외형적으로는 많은 부흥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교회 개척의 첫번째 산을 잘 넘었다고 봅니다. 이제 우리가 영적, 공동체적으로 도전해야 할 것은 초대교회의 모습이라고 봅니다. 두번째 산에 올라야 하겠습니다. 그럼 우리가 향해야 하는 교회공동체로서의 도전은...
1. 초대교회는 두 날개로 비상하는 교회였습니다.
초대교회에는 커다란 두 축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대그룹 성전예배'였고, 또 하나는 '소그룹 가정예배'였습니다. 46절입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성전에서, 또 집에서 열심히 예배를 드렸습니다. 당시는 예수님이 붙잡혀 십자가에서 죽은지 50여일 밖에 되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그리스도인에 대한 핍박이 살벌했던 그 때, 성전에 모인다는 것은 어지간한 용기가 아니면 불가능한 때였습니다. 더구나 모인 사람들의 대부분은 시간의 속박 속에 있었던 노예나 종들이었습니다. 성전이든 가정이든 모이려면 큰 대가가 필요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성전과 가정에서 성실하게 모였고, 나누며 기도했습니다. 초대교회의 이 모습이 던지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교회다운 교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헌신과 수고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1984년 LA올림픽이 결정되고 난 후, 조직위원회에서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구상했고 열심히 준비를 했습니다. 흰머리 독수리를 훈련시켜서, 개막식 때 그 독수리가 운동장 가운데로 내려와 오륜기 위에 사뿐히 앉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디어는 실현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원하던 흰 독수리는 구했습니다. 그 독수리의 이름을 단비라고 지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훈련을 시켰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연습비행을 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단비는 멋진 곡선을 그리며 운동장 가운데로 날아내렸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몸이 흔들리더니 오륜기 위로 내리지 못하고 그냥 땅바닥으로 내리꽂혀 죽었습니다. 그 이유는 애지중지 하던 단비에게 좋은 것을 많이 먹여 과잉 섭취를 일으켰고, 그로 인한 비만으로 날개가 균형을 잡지 못했던 것입니다.
지금의 한국 교회, 각자 자기들만 생각하는 이기심으로 비만해져 있지 않나 싶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 사랑 간에 균형이 흐트러져 있는 것은 아닌지, 성전예배와 가정예배 간의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람은 늘어나도 함께 일하고 헌신하는 일꾼은 부족한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지구촌교회에서는 이러한 한국 교회의 실상을 깨닫고 셀교회의 활성화를 꽤했습니다.
우리 교회도 개척 5년 만에 숫자 상으로는 큰 부흥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숫자만 커지는 교회가 아니라 건강한 교회가 되도록 다시 한번 결단해야 하겠습니다. 이제 성장 지향에서 공동체의 산, 두번째 산을 향하여 발길을 옮겨야 하겠습니다. 오늘부터 목장교회 재편성이 있습니다.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두번째 산을 향해 동참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부탁드립니다.
2. 진정한 코이노니아가 살아있는 교회였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박해를 견뎌낼 수 있었던 데는, 두 가지 산이라는 구조적 특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에 더해, 코이노니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42절입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코이노니아는 교제, 사귐, 함께 함의 뜻입니다. 코이노나아의 형태에 대해 44절과 45절에 잘 나와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자기 소유를 아까워하지 않고 필요에 따라 통용했습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중요한 힘이었습니다. 함께 기도하며 마음을 나누면 물질이 그에 따라옵니다.
사람만 많이 늘어난다고 좋은 교회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함께 있음이 있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코로나 시기에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다들 코로나 때문에 몸을 사리던 때, 빵이나 피자를 사들고 교회에 들러 웃으면서 "목사님, 살아계세요?" 하던 성도들로 인해 나누어주는 마음을 많이 받았습니다. 카톡을 통해 수시로 격려를 해주시던 성도님들 덕분에 상큼한 마음을 회복할 때가 많았습니다.
함께 함, 나누는 삶, 그것이 우리에게 살만한 세상이라고 느끼게 해줍니다. 그것이 주저앉고 싶었던 마음을 추스리고 다시 일어서게 만듭니다.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코이노니아, 그것이 좋은 교회를 만드는 주요한 요소입니다.
타임지에 게재되었던 쌍둥이 얘기입니다. "태어난지 얼마 안된 쌍둥이. 동생은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인큐베이터 속에서 혼자 죽음을 맞이할 수 밖 없었습니다. 이 아이를 불쌍히 여긴 한 간호사는 병원의 규칙을 어겨가며 두 아이를 한 인큐베이터 속에 넣어 두었습니다. 그러자 건강한 언니 아이가 자신의 팔을 뻗어 아파하는 동생을 포옹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동생의 심장 박동도, 체온도 모두 정상으로 돌아오고 건강을 되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삶에서 필요한 것이 건강한 포옹과 나눔입니다. 셀목장을 하다 보면 작은 것 하나에도 감동받을 때가 있습니다. 목장교회를 이끌고 있는 목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힘든 것은 목장원들의 무관심과 무반응이라고 합니다. 작은 답글 하나가 목자들을 힘내게 만듭니다. 아무런 반응이 없으면 온갖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내가 잘못한 게 있나? 내가 섭섭하게 한 게 있나? 라며 의기소침해진다고 합니다. 목장원들의 잠깐의 답신이 그들을 힘내게 합니다. 답글이 희생이고 배려이고 섬김입니다. 적극적으로 목장에 참여하고 목자에게 힘을 실어줍시다. 그것이 코이노니아를 회복하는 길입니다.
3. 진정한 하나님이 살아있는 교회였습니다.
47절입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박해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미하니 사람을 날마다 더해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한다는 것은 형식적인 예배와는 다른 것입니다. 일반적인 환경에서 찬송가를 부르는 것과 선교지에서 부르는 것이 다른 것과 유사합니다. 그들의 신앙이 다른 사람들의 칭송을 받고 그 칭송이 성도들을 더하게 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예배도 남들과 달랐지만, 그들의 삶이 달랐습니다. 그들의 입술에 달려있는 그 감사의 얼굴을 보고 사람들은 "어찌 저들 입술에 감사가 있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은혜만 추구하고 구하다 보면, 교회를 묶어주는 Unity를 놓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만 바라보는 신앙으로 인해 건강한 하나됨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9월이 되면 신동탄지구촌교회를 개척한 지 만 5년이 됩니다. 그때는 이곳 동탄 뿐만 아니라 서울, 수지, 수원, 분당 등 다양한 곳에서 오신 분들로 이루졌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수지나 분당에서 오신 분들이 대부분 목자 역할을 맡았었습니다. 그러다가 3년만에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사람에게는 양가감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목장도 지금 같이 함께 하는 사람들과 그냥 계속하는 것이 편하다는 사람이 있고, 나는 왜 교회에서 알고 지내는 사람이 늘지 않는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근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목장교회의 근본 목적은 교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도와 선교입니다. 만남을 위한 만남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제대로 된 가치에 맞게 만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목장교회의 목적인 전도와 선교에 그 가치를 두어야 합니다. 내 부족을 채우는 목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는 목장이 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하나님이 그 안에 살아있어야 합니다.
얼마전에 폭우로 수도의 중심에 물난리가 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신림동 반지하에 살던 일가족 3명이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은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이라고 알려져서 우리를 더욱 숙연하게 만들었습니다. 물이 잠기고 그들이 갖혀지는 것을 본 이웃 사람들이 달려들어 창살을 뜯고 그들을 구하려고 애를 썼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때 시민 한분이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서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한 분만 더 도와주셨으면 이 창살을 뜯어낼 수 있었는데... 한 분만 더 도와주셨으면 이 창문을 부수고 건져낼 수 있었는데... 최선을 다하지 못한 마음에 너무 자책감이 듭니다."
우리는 지금도 삶의 물난리 속에 놓여 있습니다. 가슴에 엉어리채 안고 가는 아픔이 있습니다. 하루라도 쉴 수 있었으면 하는 육아모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그 아픈 사정을 어디 가서 얘기 하겠습니까? 우리 교회에서, 우리 목장에서 그 아픔, 그 힘듦, 그 엉어리를 보듬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속에 진정한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소원합니다. 우리 함께 하고 함께 섬깁시다.
초대교회의 건강한 밑거름을 회복하여, 아름답고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 갑시다.
염평안 시인의 "교회"라는 시를 함께 보면서 마치고자 합니다.
"사람이 넘치기 보다 사랑이 넘치는 교회
섬김을 원하기 보다 섬김의 기쁨을 알아가는 교회
세상이 주목하기 보다 주님이 주목하는 교회
화려한 겉모습 보다 중심이 주를 향한 교회
내 작은 생각 보다도 하나됨의 소중함을 아는 교회
세상에 알려지기 보다 서로가 깊이 아는 교회
주님이 피로 사신 아름다운 교회
서로 사랑함으로 하나되는 교회
주님이 머리 되신 거룩한 교회
우리 함께 만들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