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19_설교정리_내가 만든 신 (2)- 성공 SUCCESS (열하 5:1~3)
○ 말씀전문
[열왕기하 5장 1절~3절]
1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2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3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 설교요약
팀 켈러의 [내가 만든 신]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세계적으로 성공하여 전설적인 가수가 된 마돈나 이야기입니다. 그 내용의 일부를 살펴보겠습니다. "내 삶의 동력은 평범함에 대한 아찔한 두려움에서 온다. 그것이 늘 나를 몰아가고 또 몰아간다. 이미 대단한 존재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내가 대단한 존재임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 고뇌는 끝난 적이 없으며 아마 영영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엄청난 의지의 소유자이지만, 여태껏 내 모든 의지는 늘 끔찍한 열등감을 극복하는데 있었다. 열등감의 주문을 깨면 당장은 특별한 사람이 되지만, 다시 무대에 서면 내가 평범하고 재미없어 보인다. 늘 그 반복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추구하는 성공이란 것의 유혹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성공과 성취를 이룬 사람 나아만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의 시리아 지역에 해당하는 아람 사람이었으며 그의 이름인 나아만은 '즐거움, 기쁨' 이라는 뜻입니다. 지금의 국방부 장관에 해당하는 군대 장관까지 오르는 성공과 성취를 이룬 그였지만, 이름과는 달리 그는 우울한 삶을 살았습니다. 인간은 소위 세상이 말하는 성공과 성취를 이루어도 기쁨과 즐거움 대신 아픔과 슬픔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그것은 그 속에 그릇된 우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나아만 속에 행여 내 우상도 공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투영해 보시기를 원합니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이 창조의 섭리대로 아름답게 살아가기를 기대합니다. 내 속에 나아만의 우상이 깨어지고 그 자리가 하나님으로 채워질 때 비로소 우리는 기쁨과 즐거움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럼 본문의 나아만은...
1. 인간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인생에는 실패한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에는 사업에는 성공했지만 부부 사이가 엉망인 사람들도 많습니다. 국회위원에 당선되거나 큰 권력을 얻어 사회적으로 성공했지만 자식들로부터 인간적으로 비난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린 이런 사람을 인간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인생에서는 실패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반대인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적으로는 내세울 것 없는 삶을 살지만 자식들이 든든하게 자라고, 사람들의 존중과 가족들의 존경을 받으며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입니다. 어느 인생이 진정으로 성공한 인생으로 보이는지요?
1절에서 나아만이 이룬 인간적인 성공을 보여줍니다.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군대장관은 지금의 국방부 장관에 해당합니다. 권력의 성공을 나타냅니다.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라고 했습니다. 왕의 마음을 얻은 자, 즉 절대적인 신임을 얻고 있어서 지속 가능한 성공임을 나타냅니다. 일시적인 성공이 아니라 장수하는 성공을 얻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성공이 아타까움을 주는 것은 그에게 나병이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성공이 무색해진 인생이었습니다. 나병환자는 격리당하여 살아가야 했습니다. 왕과 대신들이 모여 떠들석하게 즐기는 자리에도 그는 함께 할 수가 없었습니다. 따돌림 당하고 있는 마음이었습니다.
인간에게는 '내부인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핵심집단'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 유명한 사람을 만나 식사를 했다든지, 어느 유명한 호텔에서 누구와 식사를 했다라는 것을 드러내고 싶어합니다. 요즘 말로 '인싸', 즉 내부인이 되고 싶어합니다.
그럼에도 나아만은 격리되어 살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합법적으로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 나가지 못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성공했지만, 핵심집단의 인싸가 될 수 없는 허탈감이 있었습니다.
올림픽 금메달 자인 에릭 리들은 누군가가 자기에게, '왜 달리는가?' 라는 질문을 했을 때, "나는 좋아서 달리는 것이 아니라, 중독이 되어서 달린다. 그리고 결코 만족해 본 적이 없다" 라고 했다 합니다. 이것도 일종의 우상숭배입니다. 자기의 능력을 성공으로만 입증해 보이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1등에서 이탈하면 스스로 존재감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자살하는 사람 중에 성공했던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살 이유가 없다는 것이지요. 이런 사람에게는 성공이 오히려 저주가 되어버리지요. 우리는 인간적으로는 다소 실패했더라도 인생에서 성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성공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성공이 주는 우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 거짓된 안정이라는 것입니다. 성공하면, 사업만 잘 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것이라는 헛된 망상입니다. 둘째는 성공하지 못하면 인생이 무가치 하다는 잘못된 목표의식입니다. 셋째는 자신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성공하면 자기가 모든 것을 알고 가르쳐줄 수도 있다는 과대망상입니다. 그래서 자꾸 남을 가르치려고 듭니다.
나아만이 왕의 친서를 받아들고 이스라엘을 찾아옵니다. 엘리사를 찾아온 것입니다. 그는 군대장관이라는 자신의 신분, 왕의 친서를 가지고 왔다는 자부심으로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고, 엘리사가 버선발로 뛰어나와 반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엘리사는 나아만이 가진 신의 개념부터 먼저 깨뜨려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9절과 10절입니다.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나아만에게 예상치 못한 요구를 했습니다. 그것도 자신이 직접 말한 것이 아니라 종을 내세워서 전했습니다. 그는 황당하고 당황스러웠습니다. 심사가 뒤틀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기대했던 모습이 11절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나아만이 생각했던 것은 '철저히 성공한 사람에게는 모든 사람이 허리를 숙인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아만이 섬겼던 신은 그랬습니다. 신 자체가 왕을 위해 기도하고, 성공한 사람을 칭찬해주는 신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신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길들여지지 않는 신, 이스라엘의 신을 만난 것입니다. 그 신은 결코 성공한 사람이라고 해도 허리를 굽히지 않습니다. 나아만이 느꼈던 것은 '이스라엘 신에게는 성공도 무의미 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성공이라는 타이틀도 결정적 순간에는 배신할 수도 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성공한 사람은 자기 성공을 부풀려서 받아들이고, 자기 성공으로 자신이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업에 성공한 사람을 만나면 그 사업에 관해서만 아니라, 인생살이에 대해서도 박사라는 듯 떠듭니다. 세상만사의 이치에 대해서도 자기가 다 알고 있는 듯 떠듭니다. 11절을 묵상하면 나아만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떤 대형교회 목사님을 어느 모임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모임에서는 그 분이 좌중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분은 사람들 앞에서 정치, 교육, 건강, 인생문제 처방 등, 온갖 것에 대해 자기가 확실하게 꿰뚫고 있다는 냥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분을 보면서, '대형교회라는 성취가 우상이 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 모임에서 만나는 기업체 사장 중에도 이런 사람이 참 많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성공의 우상이 아니라 영적 각성입니다. 영적인 눈을 뜨는 것입니다.
큰 성공을 이룬 사람들은 작은 일은 시시하게 여기는 경향도 있습니다. 13절과 14절을 보겠습니다.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화가 나서 돌아서는 나아만을 종들이 만류했습니다. 나아만이 힘들어 한 것은 어쩌면 자기 분수에 어울리지 않는 단순한 것을 하라고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그에게는 너무 쉬운 것이었습니다. 자기 품위에 맞지 않아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엘리야는 나아만의 이것부터 깨뜨려야 하겠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내 수준에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해야 할 때를 만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겸손히 그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러면 은혜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기 위함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은혜는 무슨 대단한 일을 해야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는 오히려 나의 결핍, 나의 무자격에서 받는 것입니다. 내게 부족함이 있지만 순수한 마음으로 순종했을 때 그 위에 부어집니다.
유명한 작가이자 성경학자이며 목회자인 F. B. 마이어 목사님은 겸손과 은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이 높은 산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성공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의 산물이 담겨있는 선반은 위쪽이 아닌 아래쪽을 향해 내려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을 받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나를 굽히고 내려가고 또 내려가야 합니다.”
엘리사에게 반응하는 나아만의 모습을 보고, 우리는 성공이 모든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가 모든 것을 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을 믿고 순종하여 승리하는 한 주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성공이 아닌 섬김의 은혜를 경험했던 사람입니다.
앞의 두 가지는 나아만의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 세 번째는 우리가 닮아야 하는 나아만의 모습입니다. 거기에는 핵심적인 역할을 해준 사람이 있습니다. 다름아닌 여종입니다. 전쟁에서 붙잡혀 와서 종이 되었다면 인생이 끝장나고 원망으로 가득한 사람이어야 맞습니다. 자기를 끌고 온 주인이 나병환자가 되었다면 속으로 박수를 치며 좋아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그녀는 주인의 치유를 소망했습니다. 자신을 종으로 삼은 주인을 용서하고 희생과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나아만이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귀중한 모습입니다. 우리는 피해를 당하면 보상을 요구하고 앙갚음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러면 자신도 상대방도 은혜를 경험하기 어렵습니다. 포기하고 헌신하고 용서하고 희생했을 때, 나아만이 치유를 경험했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팀 켈러는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 방법]에서 이 여종의 모습 속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보인다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굳이 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치욕을 당하고 헌신한 분입니다. 그래서 팀 켈러는 이 여종의 구약 속에서 신약의 예수님이 드러난다고 찬양했습니다. 당시에 종은 짐승 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런 사람에게서 성경의 진리가 이루어짐을 보게 됩니다. 진리는 배운 사람, 잘 난 사람에게서만 나온다고 생각하지만, 아닙니다. 세상의 결핍 속에 있는 사람에게서도 성경의 진리는 흘러나옵니다.
성공과 돈이 인생의 전부라고 여기며 살아온 어떤 사람이 폐암에 걸려 20년 만에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분은 '성공은 있는 존재 만으로도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지 무엇을 가져서가 아닌 것을 깨달았습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짓된 안정감을 줄 것이라며 붙잡고 있는 그 성공을 버리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사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라는 것을 깨닫고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넉넉하지 못한 가정에서 태어난 저는 어릴 때부터 성공 학습을 거치면서 자랐습니다. 주변, 특히 아버지부터 그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아버지는 내게 이왕 가려면 대형교회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게 대형교회에서 섬기는 것을 자랑으로 삼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성공 학습 환경 속에서 자랍니다. 그래서 이 사고를 버리는 것이 정말 힘듭니다. 우리 마음 깊숙히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깨닫게 되었고 그것을 끊어낼 수 있었습니다. 인생의 결핍 속에서도 하나님을 알게 되고, 부족함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성공이 진정한 성공임을 맛보며 살고 있습니다. 은혜를 담는 그릇은 부족한 마음입니다. 다른 것을 찾아 준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인터넷에서 하나님을 아주 잘 표현한 구절을 보았습니다. Not Success but Service.
마태복음 20장 28장을 보며 오늘의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성공 못해도 승리하는 삶, 성공이 아니라 섬김을 위해 불러주신 그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