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424_설교정리_부활절 다음날 (성령)
○ 말씀전문
[마택복음 7장 7절~11절]
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 설교요약
유기성 목사님의 컬럼 [부활절 다음 날이 중요하다]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진정 부활절 예배를 잘 드렸는지는 부활절 예배 때, 부활 찬송을 부르고 부활 설교를 듣는 것 만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부활절 '다음 날' 알 수 있습니다. 부활절 '다음 날' 예전과 변함이 없고 낙심하고 무너지고 매마르다면 부활 신앙이 없는 것입니다. 올해 부활절 예배는 활기가 넘쳤습니다. 교회마다 교인들이 많이 모였다고 들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처음 거리두기가 해제 되면서 교회에 나온 교인들이 많았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부활절 예배에 얼마나 많은 교인이 모였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부활절 '다음 날', 부활의 능력으로 이전과 다른 삶을 사는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만이 부활의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이 컬럼은 우리에게 부활절 이후에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일깨워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부활절을 보낸 후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새겨보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부활절 다음 날 잘 살아가는 비결은 요한복음 16장 7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비결은 보혜사 성령님이 우리 마음 가운데 오셔서 그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가 부활절 다음 날 힘있게 잘 살기 위해 구체적으로 해야 할 것은...
1. 예수님이 생각하는 좋은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목사님에 따라 가장 잘 하는 십팔번 설교가 있습니다. 예수님에게도 가장 잘 하는 십팔번 설교가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가장 잘 하신 십팔번 설교는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의 산상수훈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애착을 가지고 말씀하신 것이 오늘 본문의 9절부터 11절이라고 생각합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예수님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려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일까요?
한번은 심방을 갔는데 그 집에 장난감 벤츠 승용차가 있었습니다. 자동차 중에서 보편적으로 가장 좋다고들 하는 차가 벤츠라고 합니다. 아이의 부모님은 아직 아이가 차를 가지고 다닐 나이는 아니지만, 가장 좋은 벤츠를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부모도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고싶어 합니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 싶어하는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일까요? 마태복음에는 없지만 누가복음 11장 13절에 그것이 나타나 있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그 가장 좋은 것은 성령 하나님이라고 하십니다. 늘 예수님을 의지하며 살다가 그 예수님이 없어지자 제자들은 무척 당황스러웠을 것입니다. 이런 그들에게 예수님이 약속으로 보내주신 분이 성령 하나님입니다.
가장 좋은 것을 돈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을 집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값바싼 차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옛날엔 무엇이든 뚝딱하면 얻을 수 있는 도깨비 방망이를 최고로 치는 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그 어떤 일이든 해결해 주시고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시는 도깨비 방망이 같은 성령 하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어찌 가장 좋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성령을 보혜사라고 번역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라며 보혜사는 보호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가르쳐주시는 분의 약자입니다. 보혜사는 헬라어로 '파라클레트스'입니다.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그 가르치심과 생각나게 하는 성령의 음성을 많은 사람들이 육성으로 들으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성령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성령은 우리 마음 안에 계신데 왜 굳이 육성으로 들려주겠습니까. 성령은 생각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주파수에 우리의 주파수를 맞추면 됩니다. 제가 경험한 성령의 음성을 예를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울진 산불이 한창일 때 지인이 그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서 보내온 적이 있습니다. 그 영상을 본 후, 기도를 할 때마다 자꾸 울진 산불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내 마음에 좀 도와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성령께서 생각나게 하시는 일이라고 봅니다.
좋은 아우디 자동차를 이동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밀고 가는 방법이고, 또 다른 방법은 기름을 넣어서 운행하는 것입니다. 밀고 가는 것 보다는 후자의 방법이 더욱 좋은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삶을 살아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힘으로 억지로 헤쳐나가고자 하는 방법이 있고, 차에 기름을 넣고 운행하는 것처럼 성령으로 채워서 살아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어려운 것은 열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신 그 성령을 받고 그 성령의 도움으로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2. 구할 때 주시는 성령님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충만이라는 개념을 좀 더 확실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을 받는 데는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이 있습니다. 성령세례는 성령님을 내 주로 영접한다는 것이며 평생에 한 번만 일어납니다. 반면에 성령충만은 반복적이고도 지속적으로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찌 보면 매일 구해야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 성령은 누가복음 11장 13절에서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구하는 자에게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또 "나도 구하는데?" 라고 합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내가 구한다고 하는 것과 성경에서 나타내는 구한다는 것의 차이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7절과 8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문맥에서 어떤 느낌을 받습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구한다는 것은 기도 뿐만 아니라 절박성과 지속성, 그리고 현재형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성령 아니면 안된다는 절박함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모습과 유사한지 제가 지구촌교회에서 대학부 사역을 맡고 있던 11월 수능시험 기도장을 인도할 때의 경험을 통해 비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녀들이 시험장에 들어가고 나면 부모님들이 기도장에서 기도를 했습니다. 1교시 80분 동안 모두가 미동도 없이 간절함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2교시는 수학으로 100분이었습니다. 그 100분도 오로지 기도에 몰입했습니다. 3교시, 4교시, 시험이 계속되었지만, 부모님들은 그 자리에서 조금도 벗어나지도 않고 그 시간 내내 집중적으로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이 간절함이 자녀의 시험에만이 아니라, 우리가 성령을 구할 때도 필요한 것입니다.
이 간절함과 절박함, 그리고 지속적인 구함이 있을 때, 성령님이 찾아오시고 성령님이 역사하십니다. 2000년부터 대학부 수장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가 큰 부담이 되었습니다. 전임 사역자는 침신대를 수석으로 입학해서 수석으로 졸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전의 사역자들은 5명 중에서 3명이 서울대를 나온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부담은 잘 해 보겠다는 열심으로 이어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지 배우기 위해 세미나가 있다면 부산까지도 달려가 배웠습니다. 관련 서적도 엄청나게 많이 모우고 읽었습니다. 그것도 부족하여 불신자로 가장하여 불신자의 입장에서 다른 교회에 참석하여 예배를 드려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눈에 띄는 성경 말씀이 보였습니다. 스가랴 4장 6절입니다.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내 노력보다 더 중요한 것, 그것은 여호와의 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내 열심의 방향이 달라졌습니다. 토요일 저녁 열심히 기도하며 성령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심방에서 만난 아이들이 교회에 나오고자 마음을 갖게 해 달라고, 참석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을 열어달라고 구하고 구했습니다. 이 구함으로 대학부 공동체의 숫자가 급속도로 늘어나 1,000명을 기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성령 없이 일하면 탈진 될 수 있고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령으로 일하면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 성령을 간절함으로 지속적으로 구해서, 진정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부활절 다음 날의 변화된 모습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성령에 눈뜨는 삶]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행전 5정 30절부터 32절을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우리가 성령충만하면 순종하게 되지만 반대로 순종하는 사람에게도 성령이 주어집니다. 그것도 깨달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이 순종하게 되는 것은 성령의 뜻이 분명히 들려지기 때문입니다. 분명하게 들려지기 때문에 순종할 수 밖에 없습니다. 스데반은 복음을 전하지 말라고 경고를 받았지만 성령 충만하여 성령의 뜻을 분명히 들었기 때문에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순종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순종하다 보면 성령 충만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 교회에서 중복기도 교육 교재로 사용하고 있는 유기성 목사님의 책 [예수님의 사람]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순종하는 것이 힘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쳐서 복종하는 마음으로 순종할 때 성령 충만이 온다는 사실도 꺠달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하면 전도합니다. 반대로 전도하다가 성령 충만을 받을 때도 많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찬양하게 됩니다. 반대로 순종함으로 찬양하다가 성령 충만을 경험할 때도 많습니다"
이 또한 제 경험을 통해 이해를 돕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보수적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교회 가는 것은 즐거웠으나 예배 시작 시간에 찬양과 함께 하는 율동이 늘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런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찬양 인도자는 갈수록 더 많은 율동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섬뜩하게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너 이것 하나도 순종 못하면서...' 라는 음성이었습니다. 율동 앞에서 쭈삣쭈삣한 것은 내 고집, 내 아집, 내 교만이라는 마음을 주신 것입니다. 그때부터 막혔던 둑이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작은 마음 하나로도 내 눈에서는 눈물이 비오듯 흘렀습니다. 그날 누구보다도 나는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찬양하고 순종하다 보면 성령 충만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2년 넘게 현장 예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부활절 전후를 기해 거리두기 규제도 해제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코로나 이후의 삶, 부활절 이후의 삶을 맞이 했습니다. 이 부활절 다음 날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깊이 생각해야 할 시점이고 현실입니다. 스가랴 4장 6절을 다시 굳게 부여잡기를 권면합니다.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힘으로, 능력으로 안 되는 일이 있습니까? 성령을 구하고 그 성령님의 놀라우신 능력으로 가정과 일터와 신앙을 다시 회복하는, 부활절 다음 날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