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20227_설교정리_우리의 멈춤! 쉬지 않으시는 주님! (룻 3:1~5)

서정원 (JELOME) 2022. 2. 28. 07:49

○ 말씀전문

[룻기 3장 1~5절]

1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2 네가 함께 하던 하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보라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3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4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가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네 할 일을 네게 알게 하리라 하니

5 룻이 시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

 

○ 말씀요약

룻기 2장에서 우리가 구해야 할 은혜로 ① 이삭줍기의 은혜, ② 고엘의 은혜, ③ 주를 가까이 하는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고엘은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이고 주를 가까이 하는 은혜도 늘 예수님을 바라보고 가까이 하는 은혜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예수님을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는지 3장을 통해 살펴보고, 그 예수님을 더욱 선명하게 인식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럼 우리가 예수님을 선명하게 인식할 점은...

 

1. 부족한 결정에도 너그러이 품어주시는 예수님을 인식해야 합니다.

보아스가 룻을 좋게 보고 그의 밭에서 이삭을 줍게 했을 뿐만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에게 일부러 이삭을 넉넉히 떨어뜨려주라고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보리추수부터 밀추수까지는 근 50일이 걸립니다. 그 50여일 동안 매일 같이 룻이 보아스의 밭에 나가 이삭을 주웠기에 그 사이에 보아스도 자주 만났을 텐데, 두 사람 사이에는 더 이상 진척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답답함을 느낀 나오미가 무리수를 둡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을 시킵니다. 타작마당에서 보리를 까부는 날, 몰래 보아스가 누운 곳으로 들어가 그의 발치에 누워 있으라고 합니다. 자다가 일어난 보아스는 깜짝 놀랐습니다. 하지만 룻을 내치지 않고 그녀를 감싸주었습니다. 이 보아스의 모습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보아스와 같이 부족하고 무리한 우리지만 너그러이 받아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받아주시는 것은 우리가 똑똑하거나 완벽해서가 아닙니다. 부족하더라도 포용하고 감싸주시는 분입니다. 

마가복음 5장 25절부터 28절에서 혈루병을 앓고 있는 여인의 얘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에 혈루병은 부정한 병이고 그것을 만지거나 만짐을 당하면 덩달아 부정하게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예수님의 옷에 손이라도 대변 은혜를 받을까 해서 손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그녀의 욕심에 의한 터치였지만 예수님은 그런 그 여인을 너그러이 받아주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판단이나 결정이 부족하거나 실수 투성이 일지라도 너그러이 받아주시고 보호해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주저하지 말고 언제든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인식하고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도 됩니다. 직장과 일터에서 리더로서 항상 바른 판단, 올바른 결정을 해야 한다는 부담을 너무 가지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족함 속에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십니다. 코로나로 인해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평상의 모습으로 살아가면 됩니다. 부족함에도 너그러이 품어주시는 예수님이 계심을 인식하면 됩니다.

 

2. 구겨진 인생임에도 보배롭게 여겨주시는 예수님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 지역에서는 타작은 밤에 했습니다. 낮은 너무 덥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타작하는 곳에는 여인들은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다만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창녀들만 예외로 허용되었습니다. 그런 그곳에 들어가라고 나오미가 룻에게 말했습니다. 충분히 부정한 여자나 창녀로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일이었지만 룻은 시어머니의 말씀에 따랐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이 구겨질대로 구겨져 더 이상 구겨질 것도 없다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그녀에게 보아스가 대한 모습을 10절과 11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가난하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그리고 이제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오해가 아니라 그녀의 진실을 이해해 주었습니다. 평소에 현숙한 여자임을 익히 보고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깊은 감동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 이해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그녀가 남의 눈에 띄어 난처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배려해주었습니다. 13절과 14절입니다.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워 있을지니라 하는지라 룻이 새벽까지 그의 발치에 누웠다가 사람이 서로 알아보기 어려울 때에 일어났으니 보아스가 말하기를 여인이 타작 마당에 들어온 것을 사람이 알지 못하여야 할 것이라 하였음이라"

보아스가 예수님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도 살다보면 세상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당해 손가락질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너무 속상해 하고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사람들은 알아주지 않아도 예수님만은 알아주실 뿐만 아니라 존귀히 대해주십니다. 이사야 43장 4절입니다.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라고 하셨습니다. You are precious and honored in my sight how much I loved.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하다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늘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늘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겨주시는 예수님을 인식하여 주 예수님을 가까이 하여 늘 은혜 속에서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페이지 처치는 "구겨진 종이에도 최고의 이야기를 쓰시는 하나님"에서 '하나님은 쓰시는 분이다.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판에 거룩한 십계명을 쓰셨고, 꾸깃한 파피루스에 율법을 쓰게 하셨고, 예언을 쓰게 하셨고, 말씀을 쓰게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겨진 삶에도 최고의 이야기를 쓰시는 분이다. 그동안 나는 구겨진 삶을 살았다. 현실의 어려움, 보폭 큰 내면의 방황, 여전히 사춘기로 힘겨운 20대와 30대를 보냈다. 평안함이 구겨져 불안함이 되었고, 온유함이 구겨져 냉철함이 되었고, 평화가 구겨져 화가 되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구겨진 종이 같은 삶에서 늘 최고의 이야기를 쓰셨다. 노예로 팔려간 요셉의 구겨짐에서 최고의 이야기가 나왔다. 실패로 구겨진 베드로의 삶에서 최고의 제자의 이야기가 쓰였다. 담겨있는 이야기가 최고라면 구겨진 종이여도 그 책은 가치 있는 책이다.'

 

3. 우리가 멈춘 사이에도 쉬지 않으시는 예수님을 인식해야 합니다.

보아스는 룻을 남이 보지 않도록 타작마당에서 내어 보낸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녀에게 보리 여섯 되를 자루에 담아주었습니다. 기업 무를 자가 되겠다는 언약의 증표였습니다. 돌아온 룻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고, 또 가지고 온 보리를 본 나오미는 룻에게 이제 안심하고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남아 있는 모든 것은 보이스가 다 알아서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18절입니다. "이에 시어머니가 이르되 내 딸아 (안심하라) 이 사건이 어떻게 될지 알기까지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당시에는 결혼식 못지 않게 언약식이 중요했습니다. 언약을 하게 되면 남편 측에서 언약의 증표를 주고, 그때부터 여자는 방에 들어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치장만 하면 되었습니다. 반면에 남자는 초막 하나를 짓고 아내를 맞이할 모든 준비를 했습니다. 나오미가 말 한 것처럼 4장에서 모든 것을 보아스가 다 처리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신랑 되시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우리가 거할 처소를 준비하러 승천하셨습니다. 보아스를 통해 그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예수님을 인식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쉬지 않고 일하시고 계십니다. 비록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황망하게 앉아 있을 때라도 오늘도 쉬지 않고 일하시는 분은 우리의 주 예수님이십니다. 

코로나로 인해 모든 것이 멈추어진 것처럼 여겨지는 지금, 예수님은 여전히 멈추시지 않고 일하고 계십니다. 오미크론으로 코로나 확진자들이 급증하여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지라도, 이 어려운 시기에 내가 어떻게 결정해야 할 지 몰라 멈추어 있을 지라도, 예수님은 오직 우리의 기도에만 귀를 여시고, 하시는 일을 멈추시지 않으십니다. 그 예수님을 인식하고 죄절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신뢰하며 기도함으로 나아가 승리하는 이 한 주가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