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128_설교정리_영적인 목마름을 회복하라 (요 7:37~39)
○ 말씀전문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 말씀요약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삶과 신앙 상태를 고백한 이어령 교수님의 시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는 당신의 제단에 꽃 한 송이 촛불 하나도
올린 적이 없으니 날 기억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모든 사람이 잠든 깊은 밤에는
당신의 낮은 숨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너무 적적할 때 아주 가끔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기도 합니다.
사람은 별을 볼 수는 있어도
그것을 만들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별 사탕이나 혹은 풍선을 만들 수는 있지만
그렇게 높이 날아갈 수는 없습니다.
너무 얇아서 작은 바람에도 찢기고 마는 까닭입니다.
바람개비를 만들 수는 있어도
바람이 불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습니다.
보셨지요. 하나님
바람이 불 때를 기다리다가
풍선을 손에 든 채로 잠든 유원지의 아이들 말입니다.
어떻게 저 많은 별들을 만드셨습니까?
하나님, 그리고 저 별을 만드실 때,
처음 바다에 물고기들을 놓아
헤엄치게 하실 때
고통을 느끼시지는 않으셨는지요?
아! 이 작은 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해서 코피보다 진한
후회와 발톱보다도 더 무감각한 망각 속에서
괴로워하는데 하나님은 어떻게 저 많은 별들을
축복으로 만드실 수 있었는지요.
하나님, 당신의 제단에 지금 이렇게 경건한 마음으로
떨리는 몸짓으로 엎드려 기도하는 까닭은
별을 볼 수는 있어도 그것을 만들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용서하세요. 하나님
원컨대 아주 작고 작은 모래 알만한 별 하나만이라도
만들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감히 어떻게 하늘의 별을 만들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이 가슴 속 암흑의 하늘에 반딧불만한 작은 별 하나라도
만들 수 있는 힘을 주신다면
가장 향기로운 초원에 구름처럼 희고 탐스러운
새끼 양 한 마리를 길러
모든 사람이 잠든 틈에 내 가난한 제단을 꾸미겠나이다.
좀더 가까이 가도 되겠습니까?
하나님, 당신의 발 끝을 가린 성스러운 옷자락을
때묻은 이 손으로 조금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아! 그리고 그 손으로 저 무지한 사람들의 가슴속에서도
풍금소리를 울리게 하는 한 줄의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이 시대의 지성인으로 존경받으며 사신 이어령 교수님도 노년에 삶에 대한 허무함과 영적 목마름을 느꼈다고 합니다. 딸의 전도로 믿음을 시작하신 교수님은 이 시로 그 영적 목마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열심히 살다가 문득 찾아드는 삶의 허무함과 공허함 속에 놓일 때가 있습니다. 열심히 교회에 다니지만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자신의 믿음에 의아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우리가 자신의 삶과 신앙을 재점검해 봐야 할 때입니다.
열심히 교회에 다니는데 왜 라는 의문이 들 때, 오늘 본문의 말씀이 우리를 영적 목마름으로부터 회복시켜주는 소중한 말씀이 될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내 영혼에 생수의 강이 흐르게 할 수 있을까요.
1. 먼저 영적인 목마름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혈액 검사를 해보면 건강한 사람의 피는 둥글둘글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건강하지 못한 사람의 피는 뭉쳐져서 덩어리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혈액 속에 물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피가 건강하려면 수분을 충분히 보충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물에 대한 갈증을 느끼지 못해 건강을 잃게 됩니다. 물을 많이 마셔야 건강하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아침에 출근하면 책상 위에 3병의 생수 병을 갖다 놓습니다. 그런데 일에 몰두하다 보면 눈 앞에 둔 생수병도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물이 부족한데도 갈증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목마름을 느껴야 물을 찾고 마셔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영적 건강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 목마름을 느껴야 영혼을 건강하게 만들고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영적 목마름을 느낄 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목마르거든 내게로 오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명절 끝날"에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신 명절은 초막절을 의미합니다. 초막절은 가장 큰 축제일입니다. 많은 사람들, 특히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군중 전면에 모여 있는 축제장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들으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들으라고 하신 말씀은 익숙함에 대한 책망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밤낮으로 예배를 드리는 예배자들, 예배 전공자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 익숙하여 형식에 젖어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익숙함이 영적 목마름에 무디게 만듭니다. 그래서 책망을 통해 목마름을 회복하도록 촉구하신 것입니다.
이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하신 말씀이, 혹 우리에게도 해당되지 않는지 되돌아 봐야 하겠습니다. 1부 예배에 오신 여러분은 특히 예배에 충실한 사람들입니다. 주일 아침만 되면 예배에 참석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싸여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에 열심인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내 마음에 영적인 목마름을 담고, 갈급함을 안고 예배에 참석하시고 있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목마름이 없다면 이 이른 아침의 예배 역시 익숙한 종교의식에 불과합니다.
이어령교수님은 73세가 되어서야 세례를 받으셨다고 합니다. 주위에서 이 시대의 지성인이 뭐가 답답해서 뭐가 부족해서 세례를 받느냐고 하자, 교수님은 남보다 많은 것을 이루었지만 때때로 절대고독을 느낄 때가 있고, 그 갈망 그 목마름 끝에 만난 분, 영원히 배고프지 않게 하시고 목마르지 않게 하시는 그 분, 그 분이 하나님임을 이제야 깨달았다며, 한평생 우물을 파는 심정으로 세례를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삶도 우리의 신앙도 익숙함에 젖게 되면 끝장 납니다. 익숙함에 젖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면 더 큰일입니다. 영적 목마름 없이 드리는 예배는 아무리 열심히 드려도 그 예배는 단지 의식일 뿐입니다. 의식은 우리의 목마름을 채워주지 못합니다. 평생 우물을 파는 심정으로, 목마름으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2. 믿음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 있어야 합니다.
삶의 허무함은 목마름에 기인하여 찾아옵니다. 사람들은 목마름에 지쳐있습니다. 그러나 그 목마름이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향하게 되면, 영원히 영적 목마름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더욱 목말라질 뿐입니다.
이사야 55장 1절과 2절입니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영화 '연가시'를 본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연가시는 뇌를 숙주로 삼아서 탈수 증상을 일으킵니다. 그 고통을 견디다 못해 이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들은 물 속으로 뛰어 듭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연가시만 좋게 만듭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에 목말라 합니다. 권력과 명예에 목말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그 돈 그 권력이 우리 자신을 망치게 만듭니다. 연가시처럼 말입니다. 이같은 잘못된 목마름을 경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37절과 38절입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목마르거든 '내게로'(예수님께로) 오라 하십니다. '나를 믿는 자' (예수님을 믿는 자) 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흐를 것이라고 하십니다. 목마름이 예수님으로 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혹자는 말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 필요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믿는다는 것과 우리가 생각하는 믿는다는 것이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믿음을 히브리서 12장 2절이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 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믿음의 주'는 아르케곤입니다. 아르케곤은 '시작, 창시자' 라는 의미이며 바로 예수님을 말합니다. '온전케 하다'라는 것은 텔레이오텐으로 '성숙케 한다' 라는 의미입니다. '바라보다'는 아프론테스인데 '눈을 고정시키다'라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성경적 믿음은 "다른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초점을 두고 산다"는 것입니다. 항상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 예수님께 초점을 두고 살고 있는지 되돌아 봐야 하겠습니다.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고 삶에 생수가 넘쳐 흐를 것 같지만 아닙니다. 권력과 명예가 내 삶을 뿌듯하게 해 줄 것 같지만 그 역시 잠시 잠깐입니다. 내 삶에 영원한 생수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 예수님을 올바로 믿고 살 때, 우리에게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게 됩니다.
3. 성령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 있어야 합니다.
38절과 39절에서 갑자기 성령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면 충분할 텐데 왜 성령에 대한 말씀이 필요했을까요? 우리는 성령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성령이라는 단어에는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이라는 단어가 붙어다닙니다. 성령세례는 평생 한번 주어집니다. 반면에 성령충만은 한번이 아니라 평생 반복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이 성령충만이 이루어질 때, 생수가 흐르게 됩니다.요한복음 14장 26절을 보겠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성령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보혜사는 한자어인데 '보호해 주시고 은혜를 주시고, 가르쳐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하느지를 가르쳐주시고 붙들어 주십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를 해 보겠습니다. ① 등대와 같습니다. 배에게 항구와 항로를 가르쳐 주듯,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가는 길을 가르치고 인도해 주십니다. ② 충전기의 연결선과 같습니다. 아무리 좋은 Power가 있어도 연결선이 없으면 스마트폰에는 무용지물입니다. 예수님의 Power도 우리와 연결해 주는 성령이 없으면 그림의 떡과 같습니다. 성령은 이런 것입니다. 항상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성령에 대해서도 새로운 자각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성령충만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성령충만은 '하나님의 뜻을 뚜렷하게 보여주며 우리로 순종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의 대표적인 사람이 스데반입니다. 그는 성령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성령충만해서 사람들이 두려워서 도망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뚜렷이 보여 돌에 맞아 죽는 것도 기꺼이 감당했던 것입니다. 목회자로서의 첫 사역을 부천에 있는 교회에서 시작을 했었습니다. 2004년부터 목사 안수를 받기 위해 더욱 열심히 일했습니다. 2년간의 준비로 인해 몸과 마음이 Burn out 초기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뭘 해도 기쁨이 없었습니다. 열심이 부족해서인가 하고는 더 열심히 쫓아다녔습니다. 사역도 열심히 하고 세미나도 열심히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나 회복은 커녕 완전히 Burn out 상태가 되었었습니다. 이 때 다시 눈에 들어온 말씀이 오늘 본문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사역이 생수인줄 알았는데 아니란 것을, 목회가 생수가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란 것을, 열심히 일하는 것이 생수가 될 줄 알았는데 아니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열심히 일하면 모든 것을 이루고, 삶의 생수가 된다고 생각하지만 착각입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생수는 성령으로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 심지를 태우면 그 심지는 타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기름을 끌어올려 태우면 내 심지는 상하지 않고 영원히 불을 밝힙니다. 심지를 태우면 곧바로 Burn out만 하게 됩니다. 예레미야 2장 13절입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이 악을 행하는 자가 되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