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11121_설교정리_내 삶의 힘은 감사 (민11:4~9)

서정원 (JELOME) 2021. 11. 22. 09:30

○ 말씀전문

[민수기 11장 4절~9절]

4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5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6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7 만나는 깟씨와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은 것이라

8 백성이 두루 다니며 그것을 거두어 맷돌에 갈기도 하며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기도 하여 과자를 만들었으니 그 맛이 기름 섞은 과자 맛 같았더라

9 밤에 이슬이 진영에 내릴 때에 만나도 함께 내렸더라

 

○ 말씀요약

[내 이름은 예쁜 여자입니다], [내 삶의 힘은 감사입니다]로 고백한 이 책은 모반증으로 3살 때 부모님으로부터 버림받고 보육원에서 자라왔으며, 친구들로부터 아수라백작이니 괴물이니 귀신이니 하면서 손가락질 받으며 살아온 김희아씨의 간증집입니다. 그녀의 삶은 원망과 불평이 가득했을 텐데도 그녀의 간증 속에는 감사가 떠나지 않고 넘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녀가 인생을 아름답게 살 수 있었던 것의 원동력은 바로 감사였습니다. 

반면에 오늘 본문은 감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감사를 잃어버린 한 민족의 모습입니다. 감사할 것이 넘치고 넘침에도 불구하고 감사는 커녕 원망과 불만으로 가득합니다. 본문 말씀은 그 이유를 4절에서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라고 합니다. 이방인들의 불만과 원망을 그들도 배우고 따라, 원망으로 가득해졌다고합니다. 혹시 지금 우리의 모습도 이런 모습이 아닐지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주의 은혜와 감사를 잊어버리고 코로나만 바라보면서 원망과 불평만 하고 있지는 않는지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원망하고 불평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들이 감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원망하고 불평한 것은...

 

1. 과거에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5절과 6절입니다.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메마른 광에에서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을 때 하나님이 내려주신 맛나에 그렇게 감사했던 그들입니다. 더 나아가 노예 생활로부터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 추격해 오는 애굽군들을 피해 홍해 바다를 마른 땅으로 건너게 해주셨던 하나님의 보호하심의 감사를 잊어버리고, 이방인들의 불평에 전염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전염성이 강합니다. 조금만 영성이 떨어지면 사단의 유혹으로 이 원망에 넘어집니다. 이 전염성에 감염되면 내 가족들에게도 감염시킵니다. 온 가족이 감사를 잊어버리고 원망과 불평이 가득한 가정으로 변하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오면서 구비구비 마다 고비를 넘기며 지금의 내가 있게 해 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 감사가 내 삶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힘의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서두에 소개한 김희아씨의 간증 중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에게는 보통 2~3명의 후원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얼굴에 커다한 붉은 점이 있는 김희아에게는 단 한 명의 후원자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후원자 1명만 생기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후원자가 되겠다고 찾아온 사람들도 희아씨의 얼굴을 보고 간 후로는 연락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10살이 되었을 때, 미국의 짐 위건 목사님이 후원자로 나타나셨습니다. 그 분의 편지에 쓰인  '사랑하는 희아에게' 라는 그 한 줄이 그녀에게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가 되었습니다. 자기 이름을 불러주고 사랑한다 라고 했던 그 말을 기억하고 감사해 했던 것이 그녀의 삶에 힘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내가 지금 이곳에 있게 된 것, 내가 어려울 때마다 도와주셨던 것, 지금 이 자리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함으로 기억할 때, 우리는 원망과 불평이 아니라, 커다란 힘이 되어 내 삶을 승리의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2. 현재의 하나님의 축복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매마른 광야에서는 먹을 것이 주어진다는 것 만큼 감사할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먹을 것을 만나로 주셨습니다. 그 만나가 어떤 것인지를 7절과 8절에서 잘 묘사해주고 있습니다. "만나는 깟씨와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은 것이라 백성이 두루 다니며 그것을 거두어 맷돌에 갈기도 하며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기도 하여 과자를 만들었으니 그 맛이 기름 섞은 과자 맛 같았더라".

만나는 히브리어로 '만후'라고 합니다. 만후의 뜻은 'What is this?', '이게 뭐지?' 입니다. 놀라워 하는 말입니다. 이처럼 놀랍게 받아들였던 그 맛나를 이제는 그렇게 여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래? 그럼 당해봐라'라는 마음으로 그 맛나들을 불태워버렸습니다. 1절과 3절입니다. "여호와께서들으시기에 백성들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을 그들 중에 붙여서 진영 끝을 사르게 하시매, 백성들이 모세에게 부르짖음으로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지 불이 꺼졌더라. 그곳 이름을 다베라라고 불렀으니 이는 여호와의 불이 그들 중에 붙은 까닭이었더라". 다베라는 '다 태웠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그 맛나를 다 태워버리자 그제서야 그들은 그 만나가 축복임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상이 태워져서야 그 소중함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건강을 잃게 되어야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직장을 잃게 되어야 비로소 일터의 소중함을 알게 됩니다. 현재의 삶이 축복이고 감사임을 잊을 때 우리는 원망과 불평 속으로 빠지게 됩니다. 감사는 영어로 Thank입니다. 이 단어는 생각하다의 Think와 연관성이 있는 단어입니다. 감사는 과거에 내게 주었던 은혜, 지금 내게 주어지는 축복을 기억하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찾아옵니다. 

 

3. 하나님이 주신 미래의 비전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애굽으로 구원해 내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준 비전은 가나안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은 이 비전을 망각하고 매일 똑 같이 먹어 질리게 된 맛나를 원망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메추라기를 내려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평만 하자 진노의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33절부터 35절입니다.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씹하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으니 욕심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백성이 기브롯 핫다아와에서 행진하여 하세롯에 이르러 거기 거하니라". 하나님의 재앙이 이르자 비로소 그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가나안 땅의 비전을 기억하고 다시 행군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브론 핫다아와는 '탐심의 무덤, 욕망의 무덤' 이라는 뜻입니다. 그 욕망의 무덤을 떠날 때 원망과 불평이 사라집니다. 

먹을 것이 풍부하고 잘 입고 잘 사는 우리에게 감사가 없는 것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지난 날 우리가 배고픔과 어려움을 참고 견딘 것은 내일에 대한 꿈, 미래에 대한 비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김희아씨는 꿈이 있었습니다. 큰딸이 엄마가 TV에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을 때, 그 딸을 위해 TV에 나가겠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 흉칙스러운 얼굴에도 불구하고 딸아 소망을 이루어주고 싶었습니다. 드디어 '강연, 100도C' 프로그램으로 TV에 출연하여 많은 사람들의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그 꿈을 꾸게 한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간증했습니다.

비전은 원망할 여지를 주지 않습니다. 꿈은 우리에게 갈 길을 재촉합니다. 이 비전, 이 꿈이 있을 때 우리는 그 비전을 갖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꿈을 향해 도전하며 나아갈 수 있습니다. 열정과 사랑으로 도전할 꿈과 비전을 주십사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이 한 주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