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11030_설교정리_부르심, 내가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은 (출3:10~15)

서정원 (JELOME) 2021. 11. 1. 08:01

○ 말씀전문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13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15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 설교요약

모세는 120년을 살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120년을 3가지 시기로 나누어 표현한 사람의 말을 빌면, 처음 40년은 애굽의 왕자로서의 삶으로 '나는 대단한 사람이다' 라 여기며 살았던 시기입니다. 영어로 표현하면 I am somebody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중간 40년은 광야로 나가 연단받던 시기로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 여긴 시절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마도 I am nobody 쯤으로 생각했을 시기입니다. 마지막 40년은 신실한 하나님의 종으로 살았던 시기로,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라는 I am GOD's body의 삶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여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젊었을 때는 자신감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살다가 노년에는 무기력으로 살고 있으며, 그 무기력함에서 인생을 끝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바쁘게 살면서 미처 하나님을 깨닫지도 못한 채 인생을 마감하는 것이지요. 이제 곧 위드코로나의 시간이 다가올 듯 합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시기 위하여 중간 40년의 광야의 시간을 주셨습니다. 지난 2년간의 코로나 시기 역시 우리에게는 광야의 시기였습니다. 이 광야의 시간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깊이 인식해야만 우리도 광야 이후의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삶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위드코로나를 앞둔 우리에게 오늘의 말씀이 소중한 레마의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럼 우리가 모세처럼 하나님의 뜻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

 

1. '내가 누구이기에'라는 질문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누구인데'라는 생각을 가지고 삽니다. 우리를 왜곡시키는 질문들이 있다고 합니다. ①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사람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자기의 정체성을 확인해보는 말이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는 일류 대학을 나왔는데 이런 일을 할 수는 없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왜곡입니다. 일류 대학을 나오면 일류 인생을 살아야 된다는 착각입니다. ② '나는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인가' 라는 자문입니다. 좋은 스펙, 뛰어난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데 라는 생각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③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며 늘 사람들의 시선을 얽매여서 타인의 인정에 목말라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전, 부르심에 대한 고민을 하며 하나님께 질문을 던지고 있는 모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1절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힘과 권력이 넘치던 애굽의 왕자 시절도 아니고, 짚고 있는 지팡이 하나 밖에 없는 신세인데, 그리고 비록 애굽으로 돌아가더라도 이제는 그들이 옛날 자기의 모습이 아닌 초라한 모습을 보고 어떻게 생각할지, 라며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열심히 직장 생활을 하고, 능력있는 사람으로 평가받고 대우받던 사람도 나이가 차면 현직에서 물러납니다. 그리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함으로써 갑자기 늙어버리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종종 봅니다. 열심히 살았던 과거의 삶도 그 어두운 삶에 묻혀버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의욕을 잃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이런 '내가 누구이기에'라는 생각은 우리의 삶을 무너뜨립니다. 우리는 열심히 살았던 젊었을 때의 영광이 그 빛을 간직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이 생각을 버리고 활기찬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데는 나이는 무관합니다. 이사야 43장 4절입니다.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언제나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긴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위드코로나를 앞 둔, 다시 일어서는 우리의 삶에 소중한 레마의 말씀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2. 강의실이 아닌 실험실용 신앙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강의실용 신앙은 교회 안에서만 아멘하는 이론적 신앙입니다. 삶과 연결되지 못하는 신앙입니다. 반면에 실험실용 신앙은 말씀이 체험이 되는 신앙입니다. 시골 구석에서 오직 농사만 지어오신 제 아버지는 무 씨와 배추 씨를 한눈에 구분하시지만, 저는 몇 번을 들어도 그때마다 구분을 못합니다. 이론과 경험의 차이입니다. 이론은 우리에게 '이렇게 하면 된데' 하면서 남을 설득하도록 합니다. 하지만 경험은 우리에게 '이렇게 하면 돼'라는 확신으로 설득하게 합니다. 이처럼 신앙도 체험의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13절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말하리이까". 하나님의 이름도 모른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진실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이해하기는 하나, 아직 하나님의 능력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해 애굽으로 가는 것이 두렵다는 것입니다. 이 두려움이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에 대해 수 없이 들었지만, 정작 현실 앞에서는 과연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문제가 해결될까 하는 주저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극복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삶에서 체험해야 합니다. 우리가 진짜를 만났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로부터 진짜가 나올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비로소 그 분에게 올 인 할 수 있습니다. 위드코로나가 된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그럴려면 영적으로 깨어나야 합니다.

영적으로 깨어나야 한다는 것은 차에 기름을 넣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차에 기름이 없으면 영적으로 죽은 것이며, 차에 기름이 가득 차 있을 때 영적으로 살아있고 깨어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위드코로나를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지금이 더욱 깨어 기도할 때라고 여겨집니다. 많은 성도들이 금요기도회에 참여해 주셨으면 합니다. 같이 모여 뜨겁게 기도할 때, 우리 교회가 영적으로 깨어나게 되고,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경험의 하나님이 될 것입니다.

 

3. 나를 위한 하나님의 열심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내가 하나님께 헌신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열심히 사역하고 봉사하는 것을 하나님께 헌신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내가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내게 헌신해 주시는 것이 훨씬 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헌신과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결정적 단서를 12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이 말씀을 우리는 히브리어의 결과론적 표현으로 이해 해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증거가 모세가 돌아와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것, 그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선포하실 때 하시겠다는 의지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선포하십니다. 이 말씀, 이 열심을 우리는 반드시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오고 예배드리는 것이 우리 자신의 헌신처럼 보이지만, 고집스런 나를 여기까지 이끌고 오신 것은 하나님의 나에 대한 헌신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오늘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것, 그것은 모세가 돌아와 하나님 앞에 선다는 그 사실과 똑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 하시기 전에 이미 우리를 이 자리에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택하셨고 손바닥에 우리를 새겨두셨습니다. 이사야 49장 15절과 16절입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도 그 하나님이 나를 지키시고 인도하심을 믿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가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