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11010_설교정리_내가 주님 일하면 주님은 내 일하신다 (마 6:25~30)

서정원 (JELOME) 2021. 10. 11. 06:04

○ 말씀전문

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 설교요약

한국에서, 한국 학생들에 의해 창립돼 성장한 초교파적 청년신앙단체인 JOY선교회는 국내와 해외에 복음 전도와 제자 훈련을 합니다. 이 JOY는 1958년 5월 대학생 7명이 기독 대학생 교제 모임인 죠이유스클럽으로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이선교회는 예수님을 첫째로, 이웃을 둘째로, 나 자신을 마지막으로 둘 때 참 기쁨이 있다는 죠이 정신 (JOY Spirit : Jesus first, Others second, You third)을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가장 우선에 두어야 하는지를 대표적으로 명확히 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산상수훈 중의 한 대목입니다. 산상수훈은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하는 삶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지금도 만약 예수님이 우리를 앞에 앉혀두고 설교를 하신다면 아마도 이처럼 삶의 우선순위 문제를 가지고 말씀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특별히 이 코로나의 위기에, 당장 신경쓰야 할 문제들에 빠져 정말 해야 할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그럼 코로나 위기 가운데 삶의 우선순위를 바로 세우려면...

 

1. 염려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25절부터 27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 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라고 하시며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가장 염려하는 것으로 ① 먹고사는 문제, ② 건강 문제, ③ 성공에 대한 문제라고 보셨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우리의 가장 큰 걱정은 의식주에 있습니다. 옛 사람들은 산 사람 입에는 거미줄이 쳐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먹고사는 문제는 하늘이 내린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막연히 먹고사는 것을 걱정하며 삽니다. 본문에서 키라는 단어는 글자 그대로의 뜻도 있지만 생명의 길이로도 번역이 됩니다. 영문 성경에서는 'A single hour to his span of life'로 되어 있습니다. 바로 건강에 대한 염려를 뜻합니다. 또한 의복은 복식에 대한 말씀으로, 입고 있는 복식이 신분을 상징하였습니다. 출세를 하면 옷들이 달라지는 시대였습니다. 바로 성공에 대한 문제입니다.

독일어로 '염려'는 '스스로 목을 조른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괜한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염려 덩어리를 머리에 이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일어나지도 않을 염려와 걱정으로 몸을 헤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염려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염려는 또한 전염성이 강합니다. 나 하나의 고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내와 가족에게도 전염되어 똑같이 염려하게 만듭니다. 그것을 알고 계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장 먼저 그 염려를 내려놓으라고 합니다. 

목사도 염려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럴 때 문득 들려오던 찬양 하나가 큰 감동이 되었습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리

아무것도 너는 염려하지 말고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

새로운 한 주를 염려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시기를 기도합니다.

 

2. '하물며'의 은혜를 붙들 수 있어야 합니다

염려는 내려놓겠다고 해서 쉽게 내려놓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염려보다 더 큰 확신을 가질 때 가능합니다. 26절과 30절을 보겠습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아니하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 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이방인들도 하나님이 주시는 이것을 구하거늘 하물며 너희가 구하지 않아서야 되겠느냐고 하십니다.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32절).

이웃을 사랑하고 선하게 살아온 사람들은 어려운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런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내 부모님이라면 하물며 자식인 내 어려움을 못 본듯 하겠습니까?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하물며 하나님의 자식인 나를 내버려두겠습니까? 들풀과 공중의 새까지도 먹이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이 하물며 자식인 우리를 내버려두시겠습니까? 이 하물며의 은혜를 붙드는 자가 염려를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본문을 통해, 하지 말아야 것은 '염려'이고, 해야 할 것은 '기도'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반대로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고, 염려를 기도의 제목으로 바꾸는 삶을 살기를 축복합니다.

 

3.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합니다

33절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목회를 하면서 수없이 읽고 묵상하고, 또 설교 제목으로 삼아온 말씀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번 주 설교 말씀을 준비하면서 하나님이 유독 '그'라는 단어에 주목하게 하셨습니다. 입술로는 이 말씀을 되뇌이면서 정작 우리가 살아온 삶은 '나의 나라, 나의 의'를 구하며 산 것은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 코로나 시기에도 큰 어려움 없이 부흥하는 우리 교회에 대해 많은 교회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비결이 무엇인지 묻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쉽게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의를 구한다'라고 대답하지만, 하나님이 은근히 내게 '네 나라, 네 의를 구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귓속말을 하시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이 말씀 속에 은근슬쩍 나를 끼워 넣지나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의를 위해 일할 때, 하나님이 내 일을 하십니다. 이곳 동탄으로 와서 개척하려고 마음을 먹고 나서,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이 가족들의 의사였습니다. 무엇보다도 두 딸이 반대하지 않을까 하고 마음이 쓰였습니다. 그래서 큰딸에게 조용히 의사를 물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큰딸이 흔케히 동의를 했습니다. 자기의 절친이 동탄으로 이사를 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학교를 동탄으로 옮겼는데 놀랍게도 그 친구와 같은 반에 배정이 되었습니다. 작은딸도 이미 동탄으로 와서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고 있던 후배목사의 딸과 같은 반이 되었습니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하나님이 내 일을 하고 계심을 알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무너진 일상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회복되어야 할 것이 많겠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먼저 바로세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귀중한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